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리빛 Feb 20. 2021

남해 바래길 돌아 맛보는
쫄깃한 죽방멸치

남해 멸치

남해를 가려거든
시계 반대 방향의 길을 택하라고 누군가 이야기했다. 


  대한민국에서는 남해 멸치가 제일 맛있다. 남해를 가려거든 시계 반대 방향의 길을 택하라고 누군가 이야기했다. 그 말에 따라, 남해대교를 건너 남해 바래길을 돌아 지족 어촌마을로 향한다. 남해는 나비가 날개를 펼친 모양의 지형이다. 쪽빛 바다를 끼고 나비 날개의 끝을 따라 고즈넉이 가다 보면 평온한 평야와 쪽빛 바다를 만난다.      


  바래라는 말은 어머니들이 사용하던 남해의 옛 단어이다. 남해의 어머니들은 갯벌에서 해산물을 채취하여 살림을 꾸렸다. 물때를 골라 갯벌로 가던 좁을 골목길, 미역, 파래를 머리에 이고 오던 그 길을 ‘바래길’이라고 불렀다.


남해 지족해협의 즉방염


  물론 남해의 아버지들도 험난한 바다에서 가족을 위해 일했다. 그중 멸치잡이는 그물에 걸린 멸치를 끌어올리는 고된 일이었다. 지금도 바닷물이 밀고 당기는 바다에는 남해에서만 볼 수 있는 죽방렴(좁은 바다의 물목에 대나무 발 그물을 V자로 세워 물고기를 잡는 어업방식)이 남아있고 그 멸치는 엄지를 들어 올릴 만큼 맛이 좋다.         


  “우리 멸치는 조류가 쎈 게,
파도에 휩쓸린 게 상구(줄곧)로 맛있어.
사람도 운동 많이 하면 건강하듯이 멸치도 그래.
죽방며르치는 쫄깃하게 맛있어.
 탄력이 있고. 며르치 쪼리니까 나오거든.
그거 먹어봐.”   

  



  누구나 마음 편히 들어오라는 여주인의 마음이 담긴 우리식당은 그 자리에서 43년째이다. 꽁보리밥도 해 먹기 힘든 시절에는 멸치가 배를 채워주었다. 그 시절, 어판장에서 배가 들어올 때는 멸치를 산처럼 쏟아부었다. 새벽 6시면 노란 강구(강구리,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매일 죽방에 나갔다. 물살이 센 열물일 때는 리어카를 끌고 가서 멸치를 퍼왔다. 그 많은 멸치를 혼자 손질하여 얼음을 부어놓았다가 장사를 했다. 


  서른 살 무렵이었다. 10평 남짓한 식당을 얻어 연탄불 넣는 식탁 3개가 고작이었다. 손님들이 오면 아이들은 바깥에 내어 놓았고 밤이 되면 다시 들여놓았다. 작은 방 한 칸에서 여섯 식구가 머리를 맞대고 잤다. 동네 우물에서 물을 긷던 그때 배움이 짧았던 그녀는 악착같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옛이야기를 하면서 그녀의 눈시울은 붉어졌고 나도 그랬다. 혼자 앉아 그 많은 멸치의 머리를 떼어내고 내장을 발라내면서 얼마나 울었을까 생각하며 말이다. 멸치 작업한 것을 보여주겠다는 여주인의 말에 뒤란으로 따라 들어갔다. 멸치 한 마리는 은빛이 곱고 귀엽다. 그런데 멸치 떼는 무섭다. 그것을 일일이 손으로 작업을 하자니 넌덜머리가 났을 것이다.   


   

  그녀의 멸치요리에는 나름의 철학이 담겨있다. 냉동시키지 않고 생멸치를 써야 하는 것과 장을 직접 담가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멸치회 무침은 짜지 않고 맵지도, 달지도 않다. 멸치 살의 탱탱함은 혀보다 이에 먼저 닿는다. 그다음은 감칠맛이다. 손을 떼지 못하겠다.      


  “식초도 내가 다 만들고, 갈치와 양파껍질로 잡내를 없애 육수를 낸다. 회는 막걸리 식초로 맛을 낸다. 맛있제? 이 식초가 참 맛있어. 몸에도 좋고 향이 끝내줘. 그걸 갖고 멸치회를 만들어야 해.”     


멸치 찌개
멸치쌈밥
멸치회 무침

  멸치를 졸여 얼큰하게 끓인 쌈밥용 멸치찌개. 필자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벽이었다. 육수는 깊고 향도 좋지만 너무 맵다. 야들야들한 상추에 큰 멸치를 한 마리 올려 겁 없이 먹었다가 세상을 떠나는 줄 알았다. 매운맛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진심으로 권하고 싶다. 호들갑을 떠는 모양이 안쓰러웠는지 물에 희석한 막걸리 식초를 한 잔 주신다. 맙소사! 이렇게 금세 속이 가라앉고 정신을 차릴 수 있다니. 그러고 보니 식당 한편에서 막걸리 식초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구나.        


  성실한 여주인의 손톱 끝에는 멸치 향기가 배어있고 지문에는 빛나는 멸치 비늘이 박혀있다. 돌아오는 길에 삼동면과 창선면을 연결하는 창선교를 건너면서 남해를 담아내는 지족해협의 죽방렴을 담아본다.           



[도움 주신 분]

남해 우리식당 이순심(여, 73세). 남해에서 태어나 43년째 식당을 하고 있다. 


* 위 글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의 지역n문화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s://ncms.nculture.org/food/story/1956?_ga=2.20725368.1559705289.1613814797-477163452.1613098536

매거진의 이전글 덜큰한 바다 꿀 생각에 통영 박신장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