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닮은 공예, 공예적인 삶
요즘은 크고 작은 박물관, 미술관이 참 많다. 독특한 테마를 가진 박물관도 있어 박물관을 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시간만 나면 박물관으로 향하는 버릇이 있다. 그중 유독 역사관이나 공예 관련 공간을 먼저 찾게 된다. 물질문화를 전시한 것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어찌 보면 공예라고 할 수 있는데 만들어진 당대를 생각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것이 좋은 모양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어릴 적 갖고 싶은 물건이 있을 때 잠을 설친 기억이 있다. 눈앞에 그것이 아른거려 그에 대한 생각들이 실타래를 만든다. 결국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나의 욕심의 결과는 기쁨으로 충만하거나 화를 불러 혼이 나는 것으로 끝이 나게 된다.
그동안 모아 놓은 물건들을 들여다보면 나를 닮은 것이 그 안에 앉아 있다. 작가의 작품은 대체로 자신을 닮는다는데 그렇다면 내가 좋아하는 물건을 만든 이가 나와 같거나 비슷한 취향을 지녔다는 의미인가? 사실 만든 이의 손에 담긴 기본 정신이 내 마음과 공감을 갖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히 공예라는 것이 그렇다.
공예는 인류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것은 인류의 공유 유산으로서 인간과 세계를 연결하고 정체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즉 공예품은 시대적인 사회의식 아래 탄생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공예의 실용성에는 아름다움이 있고 그 아름다움에는 사회·문화적인 가치가 내재되어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은 그것을 만든 장인의 몫이다. 장인은 평생을 두고 숙련하는 동안 나름의 철학과 당대의 사회·문화적인 가치를 공예에 담아낸다. 이것이 장인의 공예와 그 기술을 보존해야 하는 이유이다. 본받아야 할 것은 바로 자연을 담아내는 경건한 마음가짐이다.
공예란 자연에서 얻어 온 재료로 만든다. 자연은 견줄 상대가 없는 아름다움을 지녔지만 경건하며 넘치지 않는다. 그렇기에 자연을 담은 공예는 정숙하다. 소란하지 않다.
공예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사람이 있다.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悦 | Yanagi Muneyoshi)와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이다. 야나기 무네요시의 ‘공예와 공예의 미’, 특히 ‘민예’에 대한 그의 저작은 방대하다. 야니기에게 기계는 공예미의 말살자로 인식되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윌리엄 모리스도 같은 이론이다. 그는 사회주의 실천가일 뿐만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길드를 조직하고 디자인을 통해 그의 사상을 실천하였다. 윌리엄 모리스는 공동체성과 종합성이 산업화의 기계 생산에 의해 파괴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서는 사람들의 손으로 물건이 생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다음의 글은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론>에 근간을 둔 “장인십장”이라는 글이다.(이 글을 누가 만들었는지 아직 정확하지는 않다.)
1. 만듦에 있어 아름다운 것이 되게 하라. 하지만 미를 배우지 말라. 작위는 미를 죽인다.
2. 쓰임새 없이는 만들지 말라. 용도를 떠난 물건은 미를 해친다.
용과 미가 상반한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3. 반드시 마음의 봉사여야 한다. 제작한다는 것은 자연에 순응함이며 미에 바치는 것이다.
거기 경건한 자세가 있어야 한다.
4. 싫증 없이 만들어라. 그것은 즐거움이요 노력으로 얻지 못하는 것이다.
5. 이름을 빛내려 만들지 말라. 사념에 빠지지 말라.
6. 물건에는 정숙이 있어야 한다. 조용한 미보다 더 아름다운 게 없다.
숙은 견줄 바 없는 경지이다.
7. 기교에 빠지지 말라. 기교를 편법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치명의 병은 대개 여기서 생기는 것이다.
8. 지식에 빠지지 말라. 지가 부족하면 보충하고 지가 과잉하거든 신중하라.
9. 건실함을 대본으로 삼으라. 진정한 미는 건전한 미이다. 그 미는 병들지 아니한다.
10. 값싸게 함을 마음에 두라. 민중의 씀씀이에 적합지 않은 것은 완전치 못한 것이다
우리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디터 람스’(Dieter Rams)의 <좋은 디자인 10대 원칙>을 알고 있다. <좋은 디자인 10대 원칙>과 <장인십장>은 시대와 국가를 초월하며 ‘디자인(제품)’과 ‘공예 장인(제작자)’이라는 다른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공통된 요소가 있다. 즉 아름다움과 실용성, 정직함(혹은 정숙함)과 단순함 그리고 자연에 순응하는 친환경적 마음가짐이 디자이너와 장인의 정신에 깃들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중 가장 나의 마음에 드는 것은 ‘정숙(情熟)함과 자연에 순응함’이다. 어느 정도 연습을 해야 정통한 기술로 능숙히 물건을 다룰 수 있을까? 얼마큼 재료를 다루면 자연의 이치를 이해하여 순응하는 방법을 알 수 있을까? 아마도 이 모두를 이해하는 장인이라면 머리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손이 이행하는 경지에 이른 장인 중의 장인일 게다. 하워드 리사티(Haward[i.e. Howard] Risatti)가 이야기하는 ‘사고하는 손(Thinking hand)’. 내가 지금까지 알게 된 장인들은 모두 그러한 손을 지녔다.
그래서 공예다운 공예는 여러 번 고민하더라도 욕심을 내어 사야 한다. 내 마음과 같은 장인의 공예품을 만났다면, 내 아이와 그 아이의 아이에게 물려줄 수 있고 자연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 정숙(精熟)한 공예는 사용하는 이의 마음을 정숙(靜淑)하게 하여 좋다.
위 글은 2016년 넥스트데일리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