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로또 다섯 게임에 가슴이 잔뜩 부풀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분명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지금 유일하게 만나는 친구 녀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언제나 로또 1등 당첨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결론으로 끝난, 지극히 속물적이고 허황된 말들을 거리낌 없이 쏟아내던 날이었다. 세상에 돈을 벌 수 있는 일들이 수천수만 가지임에도 결국 우리가 원했던 것은, 운만 정말로 따라 준다면 세금 33퍼센트를 떼고도 대략 억 단위의 돈을 남겨먹을 수 있는, 그래서 남은 돈을 전부 예금에 꼬라박아도 예금에서 나오는 이자로만 생활이 가능한, 고작 10억 남짓의 로또 1등이었던 걸지도.
아무튼 요상하게도 그날에는 갑자기 복권에 마음이 동해서는 홧김에 로또를 다섯 게임, 연금복권을 세 장 지르고야 말았다. 로또야 어차피 하나하나의 숫자 조합들이 모두 독립 시행이기 때문에 자동으로 찍든 수동으로 찍든 별 의미는 없고, 다만 연금복권은 1등 당첨번호의 앞뒤 번호가 바로 2등 당첨번호라서 세 장을 모두 연속된 숫자로 구매하려고 했는데 하나가 완전 다른 수라서 좀 아쉬웠다. 어쨌든 그렇게 8천 원을 시원하게 탕진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어찌나 가볍던지. 물론 내 가벼운 발걸음과 같이 내가 가진 로또 종이도 추첨 날짜에 휴지조각처럼 쓰레기통으로 날아가 버렸지만. 그럼에도 전혀 아쉬운 기분은 들지 않았다. 당첨 번호 여섯 중 다섯이 아주 다섯 게임에 골고루 분포해 있던 것만은 좀 짜증이 났지만 말이다.
살면서 복권을 사 본 일이 열 손가락으로 세고도 손가락이 남지만, 아무래도 복권이라는 것은 그걸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환상에 젖게 만드는 듯하다. 특히 복권 구매일과 추첨일 사이의 간격이 길면 길수록 그 환상도 커지는 것 같다. 그런데 그 환상이 정말로 덧없는 것임을 알기까지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 로또는 일주일, 연금복권은 이 주일마다 또다른 1등을 추첨하고, 나는 고작 유통기한 일, 이 주일 남짓의 환상을 돈을 지불하며 붙들고 있다. 그러면서 매주 똑같은 개꿈을 꾼다. 로또 1등 당첨금을 가족과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그리고 매달 390만 원을 어떻게 쓸 것인지.
개꿈은 당첨번호 플러스 하나만으로 거품이 되어 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