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때도 없이 반복되는 고민들
백지 위에서 정지해 있는 막대기가 몇 번을 깜빡여야 글자를 새겨나갈 수 있을지를 계산만 하고 있었다. 한 오백 번쯤 깜빡였을 때가 되어서야 겨우 자판을 두들겨 한 문장을 겨우 채워나가는가 싶다가도 그놈의 '백스페이스병'이 힘들게 때려 박은 문장을 무참히 지워버리기를 벌써 열 번째다. 하고픈 말은 많아도 머릿속에서 전혀 정리가 되질 않으니 그저 이렇게 한 타 한 타 어렵사리 박음질하고 다시 밀어내는 일만 열심이다. 나는 무얼 말하고 싶어서 이리 손을 바삐 움직이는가. 그리고 또 무상하게 멈춰서 있을까.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글쓰기로 먹고살 수 있을지를 여기저기 캐묻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하나같이 대단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더라. 아마도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망상만 가득 찬 얼간이를 연민하는 눈빛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진지하게 소설을 써보기를 권유하는 고마운 분들이 간혹 있었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나는 그 말을 휘발유 삼아서 눈에 풀칠한 것도 모르고 용감히 발을 뻗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누가 알려나. 일에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일은 나를 바깥으로 밀쳐내려고 한다. 아니, 내가 일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건지도.
무슨 일이든 진지한 자세로 파고드는 것은 그 일에 진력이 나서 포기해버릴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수반한다. 남보다 잘 쓸 수 있었기에(그렇게 생각했기에) 글쓰기를 시작했고, 그 글이 어쩌다 한 번 칭찬을 받아서 글쓰기를 즐겼고, 일과가 되고 나서는 글쓰기가 귀찮아졌고, 글쓰기의 어려움을 몸소 느끼고 나서는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경외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글쓰기를 진지하게 시작하려는 차에 나는 글을 쓰는 일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취미가 일이 되어버리는 아이러니는 굳이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어쨌든 뼛속으로 느끼게 될 터이다(물론 이런 고민마저도 전형적인 김칫국물 드링킹의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이제는 취미의 영역에서 자꾸만 뛰쳐나오려고 하는 이 글쓰기라는 놈을 도로 돌려놓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글쓰기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다짐한 시절은 이미 1년 전 일이다. 다짐은 다짐한 순간 무너진다. 나는 그저 공부가 귀찮아서 글쓰기로 도피를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글쓰기라는 녀석은 꼭 내가 글쓰기를 접으려고 할 때마다 자꾸 눈앞에서 나를 희롱한다. 그러니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지금도, 1년 뒤에도 나는 글쓰기의 장난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 이 글을 작성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난 지금, 난 아직도 글쓰기의 장난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