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가 들려준 이야기

무슨 이야기인지 모를 이야기

by 세필

꿀벌과 천둥이 눈보라 체이스를 하는 전쟁터의 요리사들은 노르웨이의 숲 너머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가 받은 죽은 자에게서 걸려 온 전화의 내용을 네 이웃의 식탁에 올려 달라는 개소리에 대해서 이방인과 논리적 추론과 증명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이방인은 자기를 그리스인 조르바라고 소개했다. 채식주의자인 조르바는 말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에로스의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그러나 스나크 사냥에 갔다가 돌아온 스무 살 먹은 알제리의 유령들은 외쳤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배우는 법을 배우기 위해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을 수학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고민하던 아르테미스는 생명창조자의 율법에 따라 예술과 중력가속도 사이에 끼어 있는 열등의 계보에 대한 문제를 역사의 역사를 거슬러 연구했다. 아르테미스는 그 밖에도 시대의 소음을 이용해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이나, 소리와 분노로 높은 성의 사내를 변두리 화과자점 구리마루당에 취업시키는 법, 또 제0호 일반 기호학 이론을 활용해 기억술사가 시간의 향기를 맡게 하는 법 들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 많은 것들을 연구하는 와중에 아르테미스는 결코 틀리는 않는 법을 잊어버리지 않았다.


기억술사는 선술집 <오버 더 초이스>에서 종의 기원에 예술과 중력가속도가 어떤 직관 펌프를 이용해 날마다 글쓰기에 성공했는지를 단단한 독서를 통해 알고 있었다. 괴델의 증명에 따르면, 레버넌트는 옥스퍼드식 개념 사고법을 일방통행로를 통해 투명사회에 전파함으로써 투명사회에서 피로사회로의 획기적인 전환을 꾀했으며, 그는 심리정치를 통해 권력이란 무엇인가 알게 되었고 이어 타자의 추방을 통해 아름다움의 구원을 꾀했다. 그러나 레버넌트는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을 읽지 못해서 아니, 교사 임용 합격생의 시크릿 노트를 확보하지 못해서 수포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알지 못했고, 그 때문에 기초 정수론과 이산수학, 무엇보다도 수학교육과정과 교재연구에 대해 통달하지 못했다. 그래서 레버넌트는 진정성이라는 거짓말을 믿고 대리사회에 길들여지는 아이들을 데리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갔다.


우파니샤드는 그 아이들 중 한 명이었는데, 우파니샤드는 언제나 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이 데리다와 푸꼬,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을 괴롭히는 것이 최고의 공부이며 웹의 기본이라고 설파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환상, 실재, 그리고 문학을 가지고 반박하였으나, 우파니샤드가 원했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얇은 지식을 배우는 데는 실패하고 독방에 갇혀 여행의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형벌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다행히도 비슷한 말 꾸러미 사전을 챙겨왔기에 그 독방에서 공부 공부를 할 수가 있었다. 우파니샤드는 말했다.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나의 일 년, 내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가 동사의 맛이 무엇인지 고민하던 때, 꿀벌과 천둥이 눈보라 체이스를 하는 전쟁터의 요리사들이 노르웨이의 숲 너머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에게 받아온 라이트 노트와 그린 라이트 노트를 펼쳤을 때, 알제리의 유령들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외쳤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알제리의 유령들을 피해 높은 성의 사내가 취직한 변두리 화과자점 구리마루당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아무도 우파니샤드의 말을 귀기울여 듣지 않았다. 레버넌트와 나머지 아이들은 우파니샤드를 버리고 선술집 <오버 더 초이스>에 머물렀으며, 우파니샤드는 결국 홀로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공부 공부를 하지 못하여 그만 잘못된 길로 들어섰는데, 그곳은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곳이 아닌 에로스의 종말로 가는 길목이었으며, 그들이 <오버 더 초이스>라고 생각했던 곳은 사실은 <그림자 자국>이라는 곳이었다. 그리하여 레버넌트와 아이들은 에로스의 종말에서 괴델, 에셔, 바흐와 노자 혹은 장자가 기계비평들을 적어낸 이지 드로잉 노트에 깔려 유년기의 끝을 맞이하고 말았다. 그러나 우파니샤드만은 변두리 화과자점 구리마루당에 무사히 당도하여 기억술사를 만났다. 우파니샤드는 기억술사가 내린 시련, 즉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고, 그 보상으로 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의 시작을 맡게 되었다.


판도라의 희망을 안고 철학자의 사물들을 품은, 그러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알지 못했던 월든은 기억술사와 함께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쩌면 글을 잘 쓰게 될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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