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비에 고통받는

by 세필

계획을 세우기는 휘파람 불듯 하고 그것을 실행하는 데는 꼭 변비로 고통받는 내 대장과 같다. 변비에 걸린 내 꼴이 딱 지금 상황하고 맞아떨어진다. 절묘하게도.


변비는 언제 걸리는가? 변의를 느꼈을 때 바로 내보내지 못하고 며칠을 계류시키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걸릴 수 있다. 식이섬유를 충분히 먹지 않아서 똥이 부드럽게 나오지 못하고 안에서 굳어 걸릴 수 있다. 비슷한 이유로 물을 충분히 마시지 못했을 때도 똥을 부드럽게 해줄 수분이 없어서 변비에 걸릴 수 있다. 또 음식을 똥이 나올 만큼 먹지 않아서 변비에 걸릴 수 있다. 운동을 소홀히 해서 걸릴 수도 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걸릴 수도 있다. 치질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설사가 습관이 되어서 그럴 수도 있다. 아무튼 존나게 많은 경우가 있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다음 부분이다. '먹은 게 없어서 변비에 걸린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내가 지금까지 아랫배 힘 빡 주고도 똥을 못 싸는 것처럼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듯하다. 머릿속에 든 게 없으니 소화할 것도 없고, 소화할 것이 없으니 찌꺼기로 나올 것이 없지 않은가. 마광수 선생께서는 배설하기 위해 문학을 한다고 했다. 배설하려면, 그 더러운 찌꺼기라도 내보내려면 일단 처먹은 것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과연 뭐가 나올 만큼 집어넣은 적이 있는가?


글을 쓰려면 일단 써야 한다고 여기저기서 말한다. 그런데 또 어디서는 글을 쓰려면 일단 많이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아직도 그 둘의 선후관계를 알지 못한다. 어쩌면 선후관계 따위는 없는 건지도 모른다. 아마 그게 정답일 것이다. 읽고 나서 쓰고, 쓰고 나서 읽고, 읽다가 쓰고, 쓰다가 읽고 하면서 글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 순서가 어찌 되었든, 일단 내가 쓰려는 것에 대해서는 적어도 충분히 많은 양을 쌓아서 소화를 시켜야 똥이 잘 나오는 것이다. 어중띠게 읽고 어중띠게 쓰면 까만색 토끼똥만 변깃물에 퐁당거릴 뿐이다. 황금빛 바나나를 말아올리려면 삼시 세 끼 꼬박 챙겨먹고 양배추도 좀 먹고 과일도 하나 씻어서 먹고 물도 많이 마시고 뜀박질도 좀 해줘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디서 주워갖고 온 좋다는 것들 마냥 듣고만 있지 말고, 귓구멍 확 틀어막고 일단 해 보시라고. 어쨌든 일단은 싸야 할 것 아니오. 아랫배 부여잡고 토끼똥이든 설사똥이든 일단은 쏟아내야 진단을 할 수 있을 거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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