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걸어야 할 길이라는 착각
어떤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다.
그 타이밍은 누구도 알 수 없으며, 진정으로 타이밍을 알아채야 할 본인마저도 도저히 정확하게는 알지 못하고 그저 뿌옇게 깔린 안갯속에서 동네 뒷산의 음영만을 보듯 그렇게 어렴풋이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그때가 왔음을 느끼는 순간, 소명은 싹튼다. 그리고 그 소명이 안개가 걷히면서 서서히 윤곽을 드러낼 때 비로소 깨닫는다. 이 길뿐이 없다고.
그러나 그 길이 우리를 반드시 성공으로 이끈다거나, 예컨대 막대한 부를 쌓게 해 준다거나 명예를 드높여준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길의 끝에 그런 것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아무것도 얻지 못할 그 길은 온갖 함정과 지뢰로 가득한 황천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명을 깨친 이상, 걸어야 할 길은 그 길밖에 없다. 주위를 둘러봐도, 이 길밖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사람의 착각이 아닐까 싶다. 그런 소명이 분명히 있다고 여기는 것. 내가 가야 할 길이 이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저 그 길을 걷고픈 자가 그 의지를 어떻게든 끌고 가기 위해 건 최면 같은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나도 그런 최면 상태에 빠진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최면이면 어떠랴. 내가 바라서 내게 건 최면이다. 누굴 탓하는 것이 멍청하고 미련한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