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1. 22.
달리기는 참 좋은 놈이다.
매번 가슴속에 뭉게구름 몽실몽실 피어날 때마다 눈을 감고 숨만 뻐억뻐억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한다. 그러다 참지 못하고 산책이라도 하려고 문 밖으로 뛰쳐나간다. 한 5분 걷다 보면 좀 잠잠해지겠지, 하며 터덜터덜 걷다 보면 좀 가라앉기도 할 때가 있긴 있다. 그런데 걷는 걸로는 몽실몽실한 그것을 완전히 닦아낼 수 없다. 기껏 다 닦았다 싶다가도 한눈 판 사이에 닦은 자국에서 되려 더 크게 몽실대는 것이 사람 마음인 모양이라, 한 시간을 넘게 죽어라 걷는다고 마음속 갑갑한 하늘이 화악 청명해지고 그러지 않는다. 거꾸로 미세먼지까지 빡빡하게 끼어서 더 답답할 뿐이다.
아예 없애버릴 수 없다면 적어도 때마다 환기 정도는 시켜줘야 한다. 그러자면 어딘가서 바람을 씨게 끌어와 먼지며 구름이며 죄다 흩어버려야 한다. 달리기가 하는 일이 그것이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얼마 안 가서 심장이 벌떡벌떡 뛰고 숨이 헐떡헐떡 가빠올 때, 마음은 그 헐떡임에 맞춰 맑은 바람을 펌핑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고 한결 트인 느낌이 든다. 달리기가 끝나고도 이 느낌은 적어도 두세 시간은 거뜬히 이어진다. 몸이 지쳐서 마음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는 탓이다. 사색을 하려면 몸이 편해야 한다지만, 때로는 몸이 지쳐버릴 때에야 생각이 트이는 일도 있다.
이래서 공부에는 유산소 운동이 좋다는 건가 싶다. 시험 전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시험을 쓸데없이 걱정하다가 혼자 방구석에서 질질 짜는 추태를 보일 수도 있었다. 달리기가 아니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거다.
이성을 찾으려면 머리에 바람을 불어넣을 것.
감정을 잠재우려면 대퇴근에 젖산을 가득 채울 것.
날씨가 추워진다고 유산소를 소홀히 한 내게 반성의 철퇴를. 철퇴가 없으니 할로우바디 푸시업으로 대신하자. 으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