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입점하지는 않았지만 먼 길을 혼자 온 김에 주변의 모든 서점들을 돌아본다. 스토리지 북 앤 필름에서 나와 언덕길을 오르고 오르다가 찾아낸 고요 서사. 까만 테두리의 창틀이 책방 고유의 간판 문양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책방을 들리기 전에 가끔 상상을 해보는 편이다. 어떤 인상의 사장님이 계실까. 책방이 주는 공기의 냄새는 어떨까. 그곳만의 어떤 특이한 책이 있을까. 꼼꼼한 인상의 안경을 쓰고 단정히 앉아계신 사장님은 일일이 오가는 사람들마다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를 반복했다. 그 자세와 목소리의 안정감마저도 고요했고 그래서인지 책을 구경하는 사람들도 한결같이 숨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사장님의 인상만큼이나 이 곳의 책들은 분야별로 곳곳에 깔끔하게 나누어져 있다. 사진집들은 천장을 보고 누워서, 문예지들은 사장님 옆자리에 빽빽이 꽂혀서, 얇은 소설들은 맞은편에 한 권씩 누워있었고 나는 그곳에서 얼마 전 사고 싶었던 '해방촌 가는 길'을 발견했다. 읽고 왔다면 좋았을까 싶어 몇 번 만지작대다가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섰다.
고요 서사의 책들은 일러스트 책들보다는 글로 된 책들이 눈에 띄고, 독립출판물보다는 서점에서도 볼 수 있는 책들이 주로 눈에 띄었다. 다른 곳에서 보지 못했던 책들이 있다면 사진집인데 이곳의 특징인 듯싶었다. 문예지의 종류도 다른 곳보다는 여러 가지가 구비되어 있었다.
동그란 안경을 끼고 사진을 좋아하며 문예지들을 즐겨 읽는 그녀가 문을 나서는 나에게 안녕히 가시라고 나지막이 말한다. 어디까지나 이건 추측이지만 서점은 운영하는 사람의 색깔과 취향이 스며드는 게 분명한 것 같다. 그러기에 개인서점이 작은 골목에서도 반짝일 수 있는 것 아닐까. 나의 작은 서점이 생긴다면 서가를 가득 채울 나의 취향은 어떤 것일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