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 되면 취업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해야지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것도 벌써 60일이 지났다는 이야기다.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았고 규칙적으로 글쓰기도 계획했었는데. 여행도 가려했고 혼자 어디론가 훌쩍 떠나보려 했었는데. 결국 실현된 것은 가족여행뿐이었다. 두 달의 시간을 나는 밤늦게 잠들고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 등교를 바라본 후 다시 잠들어 점심에 일어나는 생활로 채워갔다.
야금야금 까먹어 가는 퇴직금이 아직 남아서인가 웃을 때 깔깔 소리를 내며 웃어젖히거나 가끔 정성스러운 요리를 하는 여유는 아직 사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에게 남은 9월 한 달은 뭔가 꽉 채워 보내지 않으면 헛헛한 마음으로 출근하게 될 것 같아 쉬는 동안에만 할 수 있는 단기 프로젝트가 없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답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찾게 되었다.
순댓국을 시켜두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점심시간. 블로그에서 문득 내가 이전에 출판했던 독립출판물 제목을 검색해보고 싶어졌다. 등록되어 있는 책자도 아니고 많이 입고시킨 것도 아니어서 과연 있을까 하며 검색한 후 상단에 뜨는 익숙한 노란 책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누군가가 정성스레 후기를 전하며 발췌해 둔 나의 익숙하고도 오래된 문장들. 주책없이 눈물이 나오려 해서 당황한 나는 찬물만 연신 들이켰었다.(나이를 먹어가며 왜 점점 눈물은 많아지는 걸까.)
그날의 행동은 의미 없는 순간이 아닌 계획의 첫걸음을 떼는 발단이 되어주었다. 책방답사기를 만들던 3년 전언젠가 기회가 되면 지방까지 발을 넓혀 책방답사기 2를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다정(첫 번째 출판물 매일의 메일 공동저자)과 나누었었다. 먹고사는 생활에 휩쓸려 살아지다 보면 언제 또 용기가 생겨 등을 떠밀게 될까 막연하긴 했지만 잊고 있던 계획은 아니었다. 처음 책을 만들던 때와는 달리 나는 그간 많이 무기력해져 시동을 다시 거는 데까지 한참이 걸렸지만 그럴 때마다 재미있게 읽었다던 후기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옆자리 조수석에 그 책을 조심스레 놓아두고 함께 짧은 여행을 시작하였다. 혹여 방문한 서점 사장님들과 몇 마디 이야기라도 섞게 될까 싶어 여분의 명함과 집에 남아있는 '매일의 메일' 몇 권을 챙겼다. 여느 때 같았으면 다시 잠들어 시간이 흐르는지도 몰랐을 시간에 운전을 하며 차창밖 풍경에 설레어했다.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아직 마르지 않아 젖어있는 머리가 시원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나는 살고 있는 지역에서 가까운 근방부터 돌아보기로 결심했다. 용인에 도착하여 찾고 있는 서점을 목적지로 설정하였다. 지도를 키웠다 줄였다 해도 도통 어디인지 모르겠다. 독립서점들은 작은 간판으로 건물들 사이에 콕 박혀있을 때가 많아 나 같은 길치는 찾는데 어려움이 있다. 주택가 담장에 차를 붙여댈 만한 곳을 찾아 주차한 후 지도를 유심히 살펴보며 목적지로 가는 수단을 '걸어서'로 바꾸었다. 빌라들이 많은 작은 동네 안에 위치한 작은 책방. 그리고 책방에서 독서모임을 하는 서로 간에 익숙한 얼굴들. 도착하지 않은 책방 안에서의 풍경들을 상상하며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동네 안에도 작은 책방이 있으면 좋으련만. 책을 읽으며 조용한 공간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 있다면 지금 내 삶이 조금 더 풍요로울 것이 확실하다.
드디어 찾아낸 나의 첫 목적지는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이런. 다시 검색해 보니 오후 두 시부터 오픈이었다. 다른 곳과 오픈시간을 착각했나 보다. 나의 두서없는 계획성에 혀를 차며 먼 곳까지 왔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해 본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아주 감성 넘치는 브런치카페가 있었다. 이른 시간이어서 사람도 없고 오래된 주택의 앞마당이 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는다. 입속에 녹아드는 빵의 끝맛이 달아 연어가 비린 것 따위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잠시 쉬면서 친구처럼 동행한 나의 책방 답사기 책을 꺼내 들고 읽는다. 내가 이런 서점들을 갔었구나. 이런 생각들을 했었구나. 과거의 나와 잠시 재회하니 다시 움직일 기운이 났다.
호기롭게 떠났던 출발과 달리 세 군데 허탕을 치고 계획에 없던 안성, 평택까지 돌아보게 되었다. 몇 분 더 걸어가면 다른 독립서점이 있고 분위기를 비교해 보던 서울 방문기와는 많이 달랐다. 모르는 길로 푸른 산과 들을 한참 지나 도심지가 나오기 시작하면 큰 건물들 사이에서 작은 입간판을 걸어서 찾았다. 저수지를 지나 숲으로 들어가며 '앞에서 차가 나오면 난 어떻게 비켜줘야 할까' 걱정하며 들어간 구불구불한 길 끝에는 시간제로 입장료를 받고 운영하는 서점도 있었다.(게스트하우스도 있는 곳으로 내가 원한 서점과는 좀 거리가 멀었다. 예약제여서 문도 잠겨 있었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곳으로 따라가다 보니 논바닥 한가운데 덩그러니 있기도 하였다. (주차장이 따로 없어 이곳이야말로 앞에서 오는 차와 마주치면 난 끝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시골집 같은 운치가 정말 매력적이었지만 그곳 또한 입장료를 받고 운영하는 북스테이(일정시간 동안 책을 읽으며 머물다 가는 곳)여서 내가 계획한 곳과는 거리가 멀어 돌아 나왔다.
책방을 찾아가는 길은 짧은 여행이 되었다
결국 두 곳의 서점을 방문하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지쳐 돌아가는 길에는 빨간 노을이 지고 있었다. 집을 떠난 지 7시간이 지났다. 다행히 수업이 끝나고 돌아온 막내에게서는 전화가 없다. 남편에게 이제야 집에 돌아갈 수 있다고 저녁을 대신 차려달라는 말을 돌려 말한다. 금요일 저녁은 퇴근하는 차들로 가득했고 힘든 하루를 맛본 나는 이 프로젝트를 해낼 수 있을까 걱정한다. 책을 디자인하고 편집해 주던 다정도 이제는 없다. 인쇄를 알아보고 맡기는 것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걱정스러운 결말들이 주는 불안은 모래주머니처럼 나를 감싸 안았지만 일단 써보고 생각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뭐든 어떻게든 되겠지. 시작은 나를 이끌고 갈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