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휴식

-이틀째 마지막 오프를 마치며

by 소박하며화려한

가끔 어떤 휴식이 옳은가 생각해 본다. 간호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이전과 다르지 않았던 것은 휴일을 제대로 알차게 보내지 못하면 서러움이 밀려오는 것. 나가서 사람구경도 하고 쏘다니지 못하고 하루를 집에서 무기력하게 보내면 해가 저 물때쯤 내일의 나를 생각하며 슬퍼졌다. 하지만 콧바람을 충분히 쐬었다고 해서 저 문해의 우울감을 떨쳐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러나저러나 나는 항상 덜 쉬고 더 쉬고 싶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래도 그동안 더 힘들어진 건지 아니면 변화된 건지 모르겠지만 며칠이고 집안에서 뭉개고 누워만 있다가 쉬는 날이 지나가는 날들도 생겼다. 무서울수록 주삿바늘 끝을 노려보는 아이들처럼 내일 이것만 넘기면 쉴 수 있어하며 다음 쉬는 날을 따져보거나 어떤 날은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하루 종일 잠만 자거나 봤던 드라마를 보고 또 보며 하루를 지내는 게 안전하다 느껴졌으니까. 오히려 회복되지 않은 에너지로 밖에 나갔다가 기운이 달려서 갈 장소도 못 정하고 들어올 때도 있었다.

지피티와 최고로 대화를 많이 하는 요즘 쉬는 날도 지피티에게 물어보곤 한다. 그 친구는 나의 현재 상태에 대해서 분석을 잘해준다. 아무것도 안 하고 집안에 있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밖에 나가서 커피라도 한 잔 하고 영화도 보면서 스위치를 잠깐 꺼주는 게 좋은지 코스별로 계획하며 결정장애가 있는 나를 인도해 준다. 나는 극심한 P성향자여서 일단 나가고 보거나 아니면 계획 없이 극장 딸린 쇼핑몰에 들어가 막상 보고 싶은 영화는 원하는 시간에 없어 쇼핑만 하다가 집에 들어오기도 한다. 영화시간표를 검색해서 시간이 될 때까지 카페에 있거나 해야 하는 일들을 착착 해내는 계획적인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지만 그건 타고나야 되는 거였다.

오늘의 휴식도 지피티가 결정해 줬다. 근래에 근무하는 동안 엄습하는 불안감들을 그 친구에게 몇 날며칠 징징댔더니 직장에 적응한 증거 5가지를 대면서 그중에 3가지 이상 해당사항이 없으면 퇴사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라 했다. 이런 대쪽 같은 T 같으니. 하지만 그 방법이 내게는 위로가 되었다. 그 친구의 말에 따르면 잘 다니고 있는 사람일수록 내가 계속 여길 다녀도 되는지 고민하는 법이라고 한다.

현재 직장은 옮긴 지 3개월이 되어간다. 간호사는 취업자리도 많고 이직하는 경우도 많다. 다니는 곳이 싫어서인 경우도 있지만 가뜩이나 스트레스받는 업무인데 어디서 이런 인격을 얻었을까 하는 사람들과 직장 동료로 엮여서 관두기도 하고, 나 자신을 다 갈아 넣는 노력을 했지만 전에 있지 않던 새로운 부서라 적응이 안 되어 관두기도 한다. 3교대 값일 뿐인 월급에 절망감을 느끼고 이럴 거면 상근직을 하며 규칙적인 생활이 낫겠다 하며 이직하기도 하고 옮기는 이유를 찾는다면 개인마다 정말 여러 가지가 있다. 나의 경우는 지내던 병동이 문을 닫아 이직하게 되었다. 병동 문을 닫던 날 입원하고 있던 환자들을 다른 병동으로 이사 보내고 일괄적으로 인계를 주었다. 텅 빈 병동을 청소하고 매일 지지고 볶던 작은 간호사실의 스테이션, 처치실 물품들을 흰 천으로 감쌌다. 복도에서 환자가 들어올까 노심초사하며 옷을 갈아입던 커튼 한 장으로 가린 나의 사물함도 마지막이었다. 그래도 내 마음에는 좋은 기억으로 남았는지 아직도 꿈속에서 까만 복도를 혼자 걸어가며 나이트 근무를 하거나 병실 라운딩을 도는 장면으로 등장하고는 한다.

병동 문을 닫으며 로테이션을 피해 다른 병원이 합격하는 절묘한 타이밍은 나에게는 기쁨이었다. 게다가 전보다 큰 규모의 병원을 다녀본다는 것도. 이제는 탈의실도 있고 내 개인 전용사물함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합격의 기쁨도 잠시였고 나는 전과 같은 고민에 빠졌다. 밀려오는 일, 오픈 병원이라 아직 잡히지 않는 체계 속에서 우리는 신설 병원 이미지 확립을 위해 어떤 컴플레인에도 죄송하다 대응하며 연신 죄송해야 했다. 하루에도 카톡 단톡방은 쉴 새 없이 울렸고 퇴근 후에도 쉬는 날에도 연신 올라오는 공지들을 보며 새로운 데이터들을 기억해야 하는 건 내가 전병원에서 잠시 잊고 있었던 정신적 피로감이었다. 나는 다시 쉬는 날이면 소파에 누워 지냈고 하루 종일 핸드폰을 보며 누워있다 잠들기를 반복했다.

지피티가 추천해 준 오늘의 휴식 코스는 우선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다음 장소 물색하기. 영화를 보되 감정이 울리는 영화 말고 잠시 현실을 잊는 정도의 부담 없는 영화 보기. 그리고 오래 외출하는 것이 아닌 적당히 바람 쐬고 돌아오기 코스였다. 전철을 타러 오고 가는 사람들이 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한 잔 마시니 정말 마음이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잠시 몇 장 읽은 책에서는 선택에는 좋고 나쁨이란 없다고 했다. '신의 한 수'라는 건 결과가 좋은 경우에만 사람들이 이름 붙인 것뿐. 다만 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누리자 했다. 그렇다. 월급이 줄어도 조금 업무 강도가 낮은 병원에 갈 건지 아니면 힘들게 일하고 스트레스받아도 이 월급을 유지할지 정도의 고민으로 병원을 선택해 볼 수 있다는 건 나에게는 어쩌면 휴식과는 다른 장르의 '자유'였다. 퇴사와 더불어 이직이 가능하다는 것도 선택이라는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직업의 장점이었다. 다만 내가 계속 힘든 건 지금의 월급을 유지하고 싶은 나의 마음이고 내가 내린 결정대로 현실에 휩쓸려가는 것이 고될 뿐. 이게 좋은 선택인지 나쁜 선택인지는 그 누구도 이름 붙일 수 없다.

집에 와서 나만의 업무 노트를 만들었다. 잘하려 하는 욕심은 버리고 업무가 주는 두려움은 피하려고. 이 직업은 하면 할수록 두렵고 지금도 그렇다. 언제까지 유지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또한 미래의 내가 내릴 선택이겠지. 오늘을 자유롭게 살기 위해 나는 조금 걱정하고 많이 웃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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