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는 자격을 얻었을 즈음에 나는 어린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주부였다. 언제든 취업할 수 있는 면허를 가지고 있는데 집에서 쉬고 있는 주부. 계절이 바뀌거나 시간이 흘렀음을 문 밖에 나설 때 맡아지는 공기냄새로 문득 깨달을 때마다 느껴지던 우울감이 어디서 오는 건지 그때의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나는 '병원'이란 곳이 너무 싫어서 간호사이지만 간호사로 안 살겠다 결심한 나의 선택이 옳다며 살아가고 있었을 뿐이다.
'부캐'라는 새로운 말이 생겨난 요즘 간호사들은 하나같이 개성이 뚜렷한 것 같다. 유투버로 상황극을 하며 또는 직장에서 브이로그를 찍으며 살아가는 젊은 간호사들을 보면 자기 삶에 적극적으로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병원에서 겪는 특수한 상황들을 짧은 쇼츠로 찍어 올리기도 하는데 그런 모습들을 보면 당당하다는 생각까지도 든다. 물론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데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없고 한 번뿐인 삶에 우리는 적극적으로 임해야 하지만 3교대라는 기본 베이스로 움직이는 전형적인 '병원 간호사'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다. 시간과 피로에 쫓겨 잠과 출근을 반복하는 일상을 살아가기 쉽고 병원 이야기를 집에 와서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그것은 13년 만에 간호사로 다시 살아가겠다 결심하고 지금도 간호사로 살고 있는 나 또한 마찬가지다. 이제 더 이상 시간과 계절의 흐름에 영향받지도 않고 찬바람이 불면 마음에 훅 끼치던 공허함도 없지만 나는 생활의 여유로움과 자유를 만끽하지 못하고 항상 잠이 모자라고 허리와 어깨가 아픈 사람이 되어버렸다.
브런치 앱을 다시 열고 나의 이야기를 써본지도 벌써 3년도 더 되었다. 언젠가 병원 이야기를 써달라는 출판사의 제의를 받은 적이 있었지만 그 당시의 나는 편집자님의 원고교정 피드백만 몇 번 받아보다 잠적하기를 반복하였고 결국 책을 써보자는 제의는 그렇게 무산되었다. 그 당시의 나는 이야기가 쌓이기에는 다소 짧은 경력의 간호사였지 않나 싶다. 그리고 직장에서의 에피소드를 집에 와서 다시 복기해 내는 과정이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끄적이기를 좋아하고 내 생각을 다른 사람이 읽어주는 것을 좋아하지만 병원에서 겪은 나의 이야기들은 뭔가 나를 초라하게 만들거나 자존감이 바닥나게 하거나 혹은 자책하게 만들기도 할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이렇게 어느 날 문득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뭔가 이제 나에게도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가 쌓인 것은 아닐까.
어리던 아이들은 벌써 자라 20살이 되었고 각자의 방을 주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나의 책상은 위치를 바꾸고 너저분하던 공간도 정리하기 시작했다. 말끔한 책상에 놓인 노트북을 보니 한결같고 재미없던 나의 인생도 뭔가 새롭게 정리되고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온라인에 있는 얼굴 모르는 사람들에게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간호사의 삶은 이런 거라고 말하는 '부캐'를 만들 수 있는 때가 된 게 아닐까. 그런 과정에서 이제 고통을 느끼는 게 아닌 엉겨 붙은 마음의 해소를 누릴 수 있는 내공이 내 안에도 쌓인 게 아닐까. 자정이 넘은 시간에 퇴근해서 겨우 저녁밥을 먹는 나의 일상에 이런 변화는 한줄기 희망 같았다. 재밌게 살고 싶은 나를 잃어버리지 않은 느낌. 삶의 주도성을 다시 되찾은 느낌이었다. 퇴근하고 조금씩 나의 이야기를 꺼내보자는 지금의 다짐이 언제 금방 좌절될지 모르지만 난 한시도 삶을 재미없게 보고만 있지 않는 적극적인 사람이다.
또 만원을 이유 없이 날리기 싫어 이번 주 로또는 사지 않았지만, 원티드 오프를 쓰라 하면서도 3일 이상은 쓰지 말라는 소리를 파트장님한테 들었지만 내 인생의 자유를 온라인 어디선가에서라도 누릴 수 있다면 나는 아직 멈춰 있지는 않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