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runch.co.kr/@finename/135
그렇게 세 명의 제자를 그리고 학교를 옮겼다. 시를 바꿔 옮긴 학교는 너무나 바빴다. 다시 6학년 담임이 되었고 새 학교 적응에, 게다가 초등학교에 한창 다니는 큰 애와 둘째, 어린이집에 다니는 막내까지 챙기느라 시간을 늘 없었다. 한동안 그림을 잊고 정신없이 지냈다.
잠시 숨 고르기 할 수 있는 여름방학이 되었다. 그동안 아쉬움에 쳐다보기만 했던 연필과 스케치북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너무 오랜만인데 예전처럼 그릴 수 있을까?’
스스로 반신반의했다. 한참 그리다 멈춘 지 6개월이 넘었던 시기였다. 수년간 다져진 솜씨도 아니어서 금세 바람이 빠질 수 있는 공백이었다. 그래서 나 스스로도 선뜻 연필을 다시 들기가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리고 싶은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용기를 내었다.
“에이, 뭐 어때. 그냥 연습삼아 해보지 뭐! “
그렇게 그린 우리 반 아이. 굉장히 수줍음도 많고 참 조용했던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하교 전 사진 찍자는 내 앞에서 정말 환하게 웃어주었다. 어느 때보다 더욱 빛나게. 그 눈 속에 또다시 내 모습도 함께 있었다. 잇몸이 환하게 드러난 아이의 미소가 너무 예뻐 기분 좋게 그렸다.
그려진 그림은 생각보다 잘 나왔다. 어? 왜지? 손을 쉰 지 정말 한참 되었는데? 의아해하면서 바로 두 번째 그림을 시작했다.
이 친구는 정말 강단이 있고 씩씩했던 아이다. 웃을 땐 함께 기분이 좋아졌다.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씩 웃는 모습이 매력 있었다. 참 올바른 생각을 가진 아이여서 전학 갈 때 참 아쉬워했다. 그 특유의 입꼬리 미소를 그리면서 함께 미소가 떠올랐다. 자주 입고 다니던 체육복도 함께 떠올랐다.
그렇게 그리고 나니 의문점이 들었다. 6개월 넘게 쉬었는데 걱정보다 괜찮게 그려지네? 왜일까?
생각해 보니 손으로 직접 그림 그리는 건 잠시 쉬고 있었지만 내 관심은 온통 그림에 있었다. 시간이 나면 연필인물화를 찾아보았고 연필화 동호회 카페에서 다른 사람들의 그림을 참 많이 감상했다. 눈으로 보면서 이건 어떻게 그렸을까 이런 표현은 이렇게 했구나 하면서 그리는 과정들을 생각했다. 손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머릿속에서 그리는 모습을 그려본 것이다.
최근에 읽은 ‘마음의 법칙’(폴커 키츠, 포레스트북스)이라는 책에서 그 이유를 알았다. 그 책에서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습관화가 학습능력에 중요한 조건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 상상을 통해 그 행위를 익힐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나도 실제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없었지만 관심을 놓지 않고 계속 찾아 눈으로 보면서 나도 모르게 이미지 트레이닝이 된 것 아닌가 모르겠다.
그 이후로도 나는 그림을 계속 그릴 상황이 안되더라도 계속 관심을 갖고 작품을 찾아 찬찬히 살펴보는 것을 잊지 않고 했다. 사실 관심이 있으니 애써 찾아보려 하지 않아도 자꾸 보인다. 게다가 인터넷 알고리즘은 비슷한 것들을 찾아주니 말이다.
하지만 진짜 안 그려지는 날도 있다. 준땡이를 그릴 때가 그랬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