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그림 성장기 11- 제자를 그리다

by 케이론


https://brunch.co.kr/@finename/72​ (지난 글)​


어설픈 연필놀이로 시작해 소소하지만 전시회라는 것을 맛본 나는 그 기세로 가족도 연예인도 아닌, 우리 반 아이들을 그려보기로 했다.


지인을 그린다는 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혼자 볼 게 아니라면 말이다. 게다가 나는 이제 연필인물화를 조금 맛본 아마추어가 아닌가. 가족이야 내 사람들이니까 부담이 덜하다. 연예인이야 너무 알려진 사람들이고 그들을 예술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 나는 발톱밑의 먼지만큼도 존재감이 없을 테니 그 또한 부담이 없다. 하지만 지인은 다르다. 실제처럼 그려져도 실물과 다르게 그려져도 신경 쓰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전시회를 하면서 나름 늘었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 기분에 고무되어 또 누군가 내 그림의 희생자(?)를 찾았고 그 대상을 우리 반 아이들로 삼은 것이다.


대단한 그림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그린다는 것은 대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없으면 쉽지 않다. 당시 6학년 담임이었던 나는 얼마뒤에 있을 졸업식 후에 헤어지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누굴 먼저 그릴지 생각해 보았다. 모든 아이들을 그려준다는 것은 시간과 에너지가 정말 많이 드는 거라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중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중국으로 유학을 가는 창땡이를 먼저 그리기로 했다.


창땡이는 참 착실한 아이였다. 순수하고 착했다. 반 아이들과 윤독하면서 나온 교과서 글의 ‘제기랄’이라는 말도 차마 못 했던 아이였다.(진짜 나온 낱말이다!) 창땡이는 졸업 후 바로 부모님과 중국으로 유학을 간다고 했다. 눈빛보다 똘똘하고 인사성이 밝아 좋은 에너지를 많이 받았던 아이라 첫 제자 그림 모델로 정했다.


나는 인물화를 그릴 때 눈을 그리면서 가장 정성을 쏟는다. 관찰도 더 많이 하고 연필 터치에 더욱 조심성을 담는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진부한 말이 진짜 진실임을 그림을 그리면서 진심으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눈 속에는 사진을 찍던 내 모습도 함께 들어있다.


창*이. 그림 케이론 (초상권을 위해 일부 가렸습니다)



제자가 기억에 남는다는 건 좋은 추억도 있어서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오래 남기도 한다. 땡훈이가 그랬다. 참 똑똑한 아이였다. 숫기가 없어 친구들과의 관계 맺기가 너무 힘들었던 친구이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쉽지 않았던 나도 너무나 이해되었던 아이. 그래도 땡훈이는 나름 자신만의 방법으로 친구들에게 다가가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리고 조금씩 나아지기도 했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소리 없이 응원했던 아이다. 지금은 26살의 멋진 청년이 되어 있겠지.



*훈이. 그림 케이론 (초상권을 위해 일부 가렸습니다)




정땡이는 지금 생각해도 정말 마음이 아프다. 심한 아토피 때문에 밤새 긁느라 잠도 못 자고 새벽 6시에나 간신히 잠드는 아이였다. 학기 초에는 조금 늦게 온다 싶었는데 너무 힘들어 보였다. 그래도 수업시간에 졸지도 않고 항상 눈이 반짝거리던 아이. 그러면서도 공부는 어찌나 잘했는지.

어머니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차라리 아침에라도 푹 재우고 늦게 보내시라고 했다. 이 아이에게 그깟 공부가 중요하랴. 한창 자랄 나이에 아토피에 괴로워하고 먹을 것도 잘 못 먹어 2학년정도의 키밖에 안되고 게다가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잠도 푹 자질 못하니 항상 측은했던 아이였다. 늦은 등교도, 결석도 잦은 아이였지만 가장 오래 기억하고 계속 용기를 주고 싶은 아이였다. 아이가 점점 나아져 좋아하는 일을 맘껏 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렸다. 어른이 되어서도 포기하지 말길. 거칠거칠한 피부대신 뽀얀 피부가 되길 바라며.


정*이. 그림 케이론 (초상권을 위해 일부 가렸습니다)


그 해는 학교를 옮기는 해여서 업무 정리와 인수인계, 짐정리로 정신없는 와중에 조심씩 그린 거라 마무리가 조금 부족한 채로 지금까지도 있다. 모든 아이들을 그리지 못해 차마 주지 못한 그림이었지만 우리 반 아이들을 그리면서 또 다른 깊은 사랑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그리는 시간이 긴 만큼 연필이 종이 위를 스치는 순간순간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고 그 해의 추억들이 떠올랐다. 어느 드라마에서 덕후의 보정은 사랑이라는데 그림 또한 사랑이다.


그렇게 제자들을 그리는 감동을 맛본 나는 모든 우리 반 아이들을 그려 선물로 주는 꿈을 꾸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