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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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대로의 여행이 시작되는 첫날이다. 새벽에 도착해 늦게 잠자리에 들어서 늦잠자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일찍 눈이 떠졌다.
“엄마, 피곤하지 않아? “
”괜찮아. 어제 복대를 풀었더니 훨씬 낫네. “
좋지 않은 허리 때문에 하셨던 복대가 비행기를 타고 오는 내내 불편하셨던 모양이다.
일찌감치 일어난 김에 조식을 먹기 위해 호텔 2층에 내려갔다. 양식, 한식, 베트남식 등 메뉴가 다양하게 있었다. 특히 빵 종류가 많았다. 하지만 엄마가 잘 드실만한 게 있을까 싶었다. 그래도 많이 가리시는 게 없어서 가져오신 접시에는 이것저것 담겨있었다.
다행히 엄마는 쌀국수를 잘 드셨다. 처음 드셔보셨다면서 한 그릇 드시더니 입맛에 맞으셨는지 한 그릇 더 드셨다. 조식용이라 양은 작았지만 따뜻한 국물이 있는 메뉴여서 좋다고 하셨다. 어른들이 좋아하실 만한 메뉴가 많지 않아 걱정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결국 엄마는 이 호텔에 머무르는 내내 아침으로 쌀국수를 드셨다.
아침을 먹고 다시 객실에 올라가 엄마는 쉬시게 하고 나는 근처 한시장으로 환전을 하러 가기로 했다. 여행준비를 너무 느긋하게 하는 바람에 한국에서는 달러만 환전해서 소소하게 쓸 베트남돈이 필요했다. 다행히 구글맵으로 보니 환전으로 유명한 한시장 금은방이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엄마, 내가 가서 환전해올 테니까 좀 쉬고 계셔요.”
나는 처음 가는 동네, 처음 해보는 환전을 위해 호텔을 나셨다.
여행에서의 참맛은 이런 걸까? 내 눈에 들어오는 모든 풍경, 사람들, 공기, 햇빛까지 모두 낯설었다. 처음 들어오는 감각들로 나는 열심히 관찰을 한다. 자동차보다 많을 것 같은 수많은 오토바이 출근 행렬과 베트남임에도 한국말로 함께 쓰여 있는 가게의 간판들. 아침이지만 햇살의 열기가 들기 시작하는 공기, 하늘마저 달라 보였다. 그 생경한 풍경 속에 내가 들어가 있다는 게 꽤 신선한 경험이었다.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도착한 한시장은 벌써 상인들이 문을 열었다. 알고 보니 6시면 오픈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대신 저녁에는 6시 반이면 문을 닫을 준비를 한다. 가려했던 금은방이 있는 곳을 바로 찾지 못해 조금 돌아서 결국 찾았다.
“익스체인지 플리즈.”
“달러?”
“노, 코리아 원. 익스체인지 십만 원 투 동(베트남 화폐)?”
“오케이.”
나는 오만 원권 2장을 내밀었고 주인은 계산기를 두드려 환전되는 금액을 알려주고 베트남 돈을 환전해 주었다. 내 손에 호찌민 초상화가 그려진 알록달록한 베트남 돈이 넘어왔다. 이게 뭐라고 뭔가 이루어진 게 뿌듯했다. 그리고 낯선 곳에서 기다리실 엄마 생각에 서둘러 호텔로 돌아갔다.
“엄마, 환전해 왔어요. 아래 카페 있는데 뭐 드실래요?”
“나는 됐다. 너 커피 마실래? 그럼 일찍 내려가 있자.”
엄마는 호텔방에 있는 것보다 밖에 나가고 싶으셨나 보다. 1층 카페로 내려갔다. 야외에 테이블이 있어 시원한 아침 바람을 맞으며 앉았다. 도로 바로 건너편에는 우리나라 한강처럼 큰 다낭 '한강'이 흐르고 있었다. 길가에는 이국적인 풍경을 한 눈에도 들어오는 야자수가 가로수로 줄지어 있었다.
낯선 곳에 오니 나는 새로운 풍경이 신기하고 재미있기도 했지만 엄마는 어떠실까 궁금했다. 다행히 엄마는 음식도 많이 안 가리셔서 다행이었고 다낭 거리의 풍경도 재미있게 보셨다. 특히 출근시간에 자동차들 사이에서도 줄지어 달리는 오토바이 행렬을 보며 신기해했다.
“여기는 진짜 오토바이를 많이 탄다, 얘”
“그러게, 한 차선이 오토바이가 다니는 차선이더라고. 더운 지역이어서 그런지 6시인데도 출근을 일찍 하나 봐.”
우리나라 대도시 같으면서도 낯선 풍경을 보며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여행팀이 모일 시간이 되었다.
함께 여행하는 일행을 모두 태우고 첫 번째 코스인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다낭에 오면 다들 마사지를 받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우리나라에 비해 화폐가치가 훨씬 낮다 보니 우리 입장에서는 저렴한 금액으로 시원하게 받을 수 있었서 보통 여행코스에서 빠지지 않았다.
엄마는 간지럼을 많이 탄다면서 별로 내켜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일행이 모두 하니 그냥 해보지 뭐 하면서 함께 들어가셨다. 마사지는 2시간 가까이 이루어졌다. 먼저 두피를, 그리고는 어깨, 등, 발, 종아리, 배 등등 정말 가린 곳만 빼고는 모두 해주셨다. 가만히 누워 받으니 참 좋긴 한데 마사지하시는 분들이 힘들어서 몇 번 못하시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별로 내켜하지 않으셨던 엄마가 계속 신경 쓰였다.
“엄마 어때, 괜찮아?”
“생각보다 괜찮네. 좋다.”
엄마는 마음에 드셨는지 느긋하게 받으셨다. 나중에는 코를 골고 주무시기도 했다. 다행이었다.
다음은 미케 비치였다. 다낭에 있는 아주 긴 해변이다. 바다만 보면 그냥 우리나라 바다 같지만 주변의 건물들과 가득한 야자수들이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경으로 완성되었다. 우리는 야자수 그늘 아래에 앉았다. 그리고 근처 작은 가게에서 다낭에서 유명하다는 코코넛커피와 망고를 주문했다. 망고를 즉석에서 껍질을 깎아 잘라주셨다. 엄마는 망고만 드셨다. 코코넛커피는 시원한 음료였다. 달짝지근한 코코넛 슬러시와 커피가 어우러져 부드럽고 맛있었다. 아침에 환전해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 바다 쪽으로 가보실래요?”
워낙 바다를 좋아하시는 엄마였다. 한국에서도 형제들과 놀러 갈 때면 산보다 항상 바다를 찾으셨다. 나는 뻥 뚫린 바다도 보시라고 함께 백사장으로 나섰다. 다낭이 아직 우기라 비가 올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흐리기만 했다. 게다가 오늘은 파란 하늘도 보여주어서 바다풍경이 더욱 멋졌다.
“엄마, 여기 좀 봐.”
“에구, 됐다.”
얼굴에 주름이 많다고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으시는 바람에 나는 엄마의 뒷모습만 가득 찍고 있었다. 그래도 이번에 포즈를 취해주셨다.
관광버스는 다시 움직여 마블마운틴으로 향했다. 온 산이 대리석이라는 마블마운틴은 서유기에 나오는 손오공이 500년간 갇혀 있던 그곳이라고 한다. 산이다 보니 항상 무릎이 안 좋으신 엄마가 걱정되었다. 가이드분께 여쭈었다.
“혹시 산에 올라가야 하나요?”
“약간 계단이 있긴 해요. 한 번 보시고 결정하세요.”
도착한 마블마운틴은 커다란 대리석 덩어리였다. 가운데 통로가 있어서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 했다.
“엄마, 계단이 있는데 힘들지? 그냥 저기 벤치에 앉아서 쉬고 있을까? 아니면 엘리베이터 있는데 그걸로 올라가 보실래요?”
”그냥 아래서 쉬자.”
새벽 비행기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여파가 조금 있어 이번엔 엄마 말대로 아래 벤치에 앉아 일행을 기다리기로 했다. 더위도 많이 타시는데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다행이었다.
여행에 와서 여행지를 가지 못하는 게 아쉬울 수도 있다. 무리해서 가자 하면 안 갈 엄마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그렇게 억지로 무리해서 가시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냥 이렇게 쉬는 시간도 좋았다. 앉아서 별거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이 시간도 의미가 있다. 어쩌면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릴 때 마블마운틴에 올라갔던 것보다 이렇게 엄마 얼굴을 보며 엄마 목소리로 수다를 떠는 이 순간이 더욱 마음에 남을 것이다. 엄마는 마블마운틴 절벽에 있는 선인장과 식물들을 보면서 집에서 키우는 화초들 이야기, 애들 이야기, 동네 분들 이야기를 하셨다. 집이었으면 집안살림에 함께 사는 손주들 돌보시느라 제대로 하지 못했을 수다였다.
다음 일정은 바구니배 체험이었다. 다낭 어부들이 바다의 배로 이동하거나 배가 없는 어부들이 물고기를 잡을 때 썼던 전통 배라고 한다. 정말 우리나라의 소쿠리처럼 생겼다. 배가 작다 보니 관광객은 2명만 탈 수 있었다. 기우뚱거리는 배 안으로 우리는 조심히 탔다. 대나무로 바구니 모양을 촘촘히 만들고 그 틈새를 무언가로 메꾼 형태였다. 관광지 사진으로는 한가로워 보였던 강은 실제로 많은 관광객들과 수많은 바구니배들로 아주 북적북적했다.
바구니배는 사공의 노에 따라 야자나무가 빽빽한 강줄기를 따라 움직였다. 유선형으로 생긴 배처럼 날렵하게 쭉 나가는 건 아니지만 나름 운치 있었다. 한국 관광객들이 어찌나 많은지 배를 타는 선착장부터 사공들까지 한국 트로트에 정말 능통했다. 쉴 새 없이 노래를 부르면서 흥을 돋웠다. 엄마나 나나 그런 흥에 낯설지만 나름 재미있었다. 넓은 강으로 들어서자 가운데서 커다란 스피커를 배에 싣고 트로트를 공연하듯 신나게 부르는 이벤트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팁을 받았다. 정말 열심히 흥을 돋운다. 무언가 최선을 다해 일을 하고 대가를 받는 성실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공은 노를 젓다가 우리를 보고 말했다.
“픽쳐? 픽쳐?”
사진을 찍어준다는 말씀이셨다. 엉겁결에 엄마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정말 아주아주 오랜만에 엄마와 찍은 사진이었다. 베트남 전통모자를 쓰고 웃으며 엄마와의 추억을 남겼다.
“하트, 하트”
사공분은 손하트까지 하라 하시면서 여러 장을 찍어주셨다. 그렇게 귀한 둘만의 사진이 남았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돈 바구니배는 서서히 저물어가는 해가 보이는 강줄기를 따라 다시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다음 이야기는 4편에
-위 그림은 여행 다녀온 후 사진을 보면서 간단히 그린 그림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