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다낭 - 생초보 여행기 7탄(마지막)

드로잉 기록기

by 케이론

https://brunch.co.kr/@finename/151


여행 마지막 날이 되었다. 지난번 환전해서 칵테일 마시고 편의점 가고 롯데마트에서 1차 쇼핑을 했더니 오늘 쓸 베트남 돈이 모자랐다. 마침 9시 50분이 모이는 시간이어서 환전소를 다시 가기로 했다. 엄마와 조식을 먹은 후 객실에서 쉬시라 하고 나는 다시 거리로 나섰다.

7시 넘어 한시장 가는 길 옆 도로는 한창 출근하는 베트남 사람들의 오토바이와 차로 가득했다. 우리는 관광객이지만 이곳 사람들은 또한 일상이니 당연하다. 나도 내 옆에 가는 베트남 사람과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그 목적은 다르니까.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관광 와서 바라보는 아침 풍경에서 느끼는 생각도 마찬가지겠지. 날이 흐리고 비 올 것처럼 바람도 분다. 한 번 와봤던 길이라고 금세 도착했다.

한시장 같은 금은방에서 환전을 했다. 이것도 경험이라고 지난번 환전하고 나니 금방 미션클리어를 하고 가까운 한시장까지 들를 여유가 생겼다. 아이들이 외국에 다녀올 때마다 기념 마그넷을 모으고 있어서 나도 사려했다. 사실 어제 바나힐에 갔을 때 보았던 마그넷은 너무 비쌌다. 그래서 한시장에 오면 꼭 마그넷을 사야겠다 마음먹었다.

이제 문을 연지 얼마 안 된 가게 사이로 들어갔다. 아직 쇼핑하는 관광객들이 많지 않아 가게 주인들의 눈이 온통 나에게 쏠리는 것 같았다. 가판에 다양한 마그넷이 보이는 한 가게 앞에 멈췄다.

“하우 머치?”

“3만 동.”

“음… 투, 5만 동.”

“노노”

젊은 가게 주인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여러 개의 값을 물었다.

“음… 포, 하우머치?”

“포, 11만 동.”

여러 개여서 그런지 조금 가격이 내려갔다.

“노, 9만 동.”

이렇게 오가며 흥정을 하다 결국 마그넷 4개를 9만 동에 구입했다. 어제 바나힐에서 보고 온 똑같은 마그넷이 한 개에 6만 동이었으니 나로서는 어느 정도 싸게 구입한 느낌이었다. 물론 가게 주인 입장에서 그것도 남는 장사일 수 있겠지만.

기분 좋게 숙소로 돌아와 가방정리를 했다. 어제 샀던 기념품들을 엄마와 내 캐리어에 나누어 담았다. 그리고 그동안 객실 정리를 해준 룸메이드에게 줄 쪽지를 쓰기 시작했다.

‘우리는 오늘 집으로 돌아가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선심 쓰듯이가 아니라 정말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번역기 앱을 열어 베트남어로 번역한 글을 쪽지에 써 내려갔다. 사실 썼다기보다 그렸다가 더 맞을 것이다. 그리고 약간의 팁과 함께 침대 맡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어제 큰 도움을 준 여자 가이드에게도 베트남어로 메모를 남겼다.

‘어제 제가 어려울 때 큰 도움을 주어서 정말 고마웠어요. 아름다운 추억을 안고 돌아갑니다. 항상 행운을 빌어요. 안녕.’

번역이다 보니 조금 어색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분명 진심은 전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핑크성당으로 향했다. 알고 보니 아침에 다녀온 한시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지어진 대성당이라고 한다. 사실 덜렁 이 성당만 있어 그야말로 포토존으로 많이 활용되는 것 같고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연핑크색의 성당 외관이 주변의 풍경과 조금 이질적으로 보였다. 차라리 그 뒤의 높은 고층빌딩인 비에틴 은행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여행의 마지막 날이어서 쇼핑을 할 수 있는 곳을 많이 갔다. 나는 이미 다녀온 한시장, 그리고 롯데마트까지.

“에고, 저는 어젯밤에 다녀왔는데요?”

결국 엄마와 나는 다른 사람들이 쇼핑을 하는 자유시간 동안 마트 1층에 있는 카페에서 쉬기로 했다.

“엄마, 뭐 드실래요?”

“나는 좀 달달한 거 없니?”

그래서 엄마는 캐러멜 마키아토, 나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카페 앞 파라솔 의자에 앉았다. 아침부터 흐려 비 올까 걱정을 했던 날씨는 그저 흐리기만 하고 다행히 비 없이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엄마, 매일 만 보 이상씩 걸었는데 많이 피곤했지?”

나는 무릎이 좋지 않으신 엄마가 다른 여행 일행들과 맞추기 위해 부단히 애쓰셨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남에게 피해 주는 걸 정말 싫어하는 성격을 알기에 힘들어도 힘들다는 말을 안 하셨을 거다.

“그래도 버스 타고 다니면서 조금씩 걸어서 다닐만했어. 네가 고생했지.”

이제 일흔이 훌쩍 넘으신 엄마가 덜 아프실 때 왜 함께 다닐 생각을 못했었는지. 그러면서도 어느 유명한 여행지를 가서 보는 좋은 풍경보다 이렇게 엄마와 마주 보고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시간이 따뜻해서 좋았다. 앞으로 이렇게 먼 곳이 아니어도 엄마와의 시간을 자주 갖고 싶다.


마지막 식사인 저녁으로 불고기 전골이 나왔다. 그동안 현지식도 불평 없이 드시던 엄마도 한국 음식이 많이 그리우셨나 보다. 말씀은 안 하셨지만 불고기보다 함께 나온 상추와 쌈장을 더 많이 드셨다. 아마 딸이 불편할까 봐 많이 참으셨을 거다.

해질 무렵 마지막 일정으로 다낭 한강에서 유람선을 탔다. 더위를 싫어하시는 엄마는 강바람이 시원하다며 편안히 주변 야경을 구경하셨다. 용 모양의 구조물이 인상적인 다리를 지나 한 바퀴를 돌고 다시 선착장에 도착하면서 우리의 일정을 이렇게 모두 끝났다.

밤비행기를 타기 위해 다시 공항으로 왔다. 여자 가이드는 우리가 탈 비행기 게이트까지 알아봐 주었다. 나는 체크인을 하기 전에 가이드에게 아침에 썼던 메모를 약간의 사례와 함께 주었다. 눈이 동그랗게 커진 가이드는

“베트남 말!”

하면서 편지 내용을 읽더니 감동한 것 같은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나는 다시 한번 손을 모아 고개를 숙여 다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올 때처럼 마찬가지로 수하물을 보내고 출국심사를 하고 검색대를 통과했다. 하루동안의 일정과 늦은 밤까지 비행기를 기다려야 하는 강행군에 엄마는 피곤해하셨다. 다행히 게이트 앞에 의자가 여유 있게 많아서 조금 누워 잠시라도 눈 붙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다시 비행기에 올라 드디어 우리나라로 출발했다. 한국 시간 새벽 5시. 구름 위를 날아가는 비행기 날개 사이로 오늘의 해가 솟아오를 준비를 하며 하늘은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새벽의 여명은 일상으로 돌아가는 우리에게 따스함을 전해주는 듯했다.

남들은 몇 번이고 갔을 늦은 나이에 간 첫 해외여행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익숙한 생활을 벗어나 모든 것이 낯선 곳, 그곳에서는 세상을 아직 모르는 아이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 작고 새로운 성공으로 뿌듯해하며 새로운 오감을 깨우고 나를 현재에 살게 한다. 오로지 나, 지금에 단순히 집중할 수 있는 기회. 그곳으로 날아가는 비행기는 오즈의 나라로 데려다주는 열기구 같다.

처음 여행이라 이것저것 챙겨갔는데 안 쓴 물건이 많다. 다음에 또 온다면 단출하게 백팩만 매고 오고 싶다. 딸들이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다시 가고 싶다고 말한 의미를 알 것 같다. 나도 다시 인천공항에 오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니까.

그리고 엄마. 이번 여행에서 나는 오로지 엄마만 바라볼 수 있어 좋았다. 불편한 잠자리도, 입에 맞지 않는 음식도, 피곤했을 일정에도 엄마는 내가 불편할까 배려하셨을 것이다. 그걸 나는 안다. 그 마음을 알기에 엄마를 계속 살폈다. 꼭 해외가 아니더라도 엄마와 단둘이 가는 여행을 꾸준히 하고 싶다.

이번 여행에서 감격스럽게 엄마와의 사진이 남았다. 늘어가는 주름이 싫어 사진 찍기를 거부하셨던 엄마. 이것도 엄마의 양보로 남은 큰 선물이다. 내가 엄마를 위해 간 여행이 아니라 나의 추억을 위해 엄마가 가신 여행이었다.

-엄마와 다낭여행 드로잉 기록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