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다낭 - 생초보 여행 6탄

드로잉 기록기

by 케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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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히 알고 있지만 사람의 마음은 참 간사하다. 급했던 순간을 넘기자 다시 여유로워졌다. 점심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우리는 영흥사로 향했다. 바다를 오른쪽에 두고 달려가는 동안 날도 다시 맑아졌다.

영흥사는 다낭시 바다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었다. 긴 백사장 마지막에 언덕 같은 산이 있고 그 꼭대기에 있는 사찰이다. 바다를 바라보며 서있는 67m짜리 해수관음상이 멀리서도 보였다. 아름다운 풍경과 달리 영흥사는 다낭 앞바다에 빠져 죽은 수많은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한다.

엄마의 보폭에 맞추어 사찰 내로 들어갔다. 풍성하고 아름답게 꾸민 나무로도 초록이 가득했다. 관광지를 꾸미기 위해 직원들이 나무들을 분재처럼 꾸미고 있었다. 꽤 큰 사찰도 보였다. 우리나라의 사찰보다 훨씬 크고 분위기가 다르지만 나는 한국사람, 그냥 우리나라의 산속의 작은 사찰이 더 편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하얗게 서있는 해수관음상은 실제 보니 정말 거대했다. 가까이에서는 목을 있는 대로 꺾어서 올려다보아야 한다. 전체 모습을 보기 위해서 좀 더 앞으로 나갔다. 비가 와 진해진 산과 이제 푸른빛이 도는 하늘을 배경으로 해수관음상은 빛처럼 서있다. 불교를 믿으시는 엄마도 사진을 찍으시면서 한참을 보셨다. 마음속으로 무엇을 소원하셨을까. 누군가를 향한 바람과 위로가 가득한 공간이었다.

몇 가지 일정을 더 한 후 숙소인 호텔에 도착했다. 나는 편의점에서 임시로 샀던 3개들이 생리대를 더 사야 했다. 절박함이 용기를 부른 것인지 나는 혼자 슈퍼마켓을 찾아 나섰다.

“엄마, 저 편의점 좀 다녀올게요.”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할 텐데 낯선 여행지에 오니 꼭 어린아이가 처음 심부름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 블록 옆의 편의점을 찾아 직원에게 번역기를 들이밀었고 나는 다시 물건 구입에 성공했다.

유창한 언어가 아니어서 통한다는 점이 신기했다. 이곳이 경기도 다낭시라고 불릴 정도로 그야말로 한국 관광객들이 많아 베트남 상인들이 어느 정도 통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낯선 장소와 시간이 나를 어린아이처럼 만드는 생경한 경험이 의외로 기분 좋았다. 한국 사람들이 많았다면 신경 썼을 완벽한 영어문장도, 내 나이와 직업, 체면 등 한국에서는 신경 쓰일 배경도 여기서는 마음 쓰지 않아도 된다. 부족하나마 그저 적절한 단어의 조합으로 소통이 된다는 것도 용기를 주는 부분이었다. 우리가 주위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었다. 나만 생각하고 현재를 살 수 있는 방법, 여행인 것이다.

이 외국에서 하나하나 새로운 느낌의 경험에 고무된 나는 숙소에 돌아와 엄마에게 말해다.

“엄마, 내일 관광하다가 기념품을 못 살 수 있으니까 우리 큰 마트에 다녀올래요?”

“그래, 그러자.”

“오늘 많이 걸으셨는데 괜찮으시겠어?”

“괜찮아 이 정도는.”

나는 여행자들이 꼭 들른다는 롯데마트를 가기 위해 처음으로 '그랩'이라는 서비스를 이용해서 차량을 불렀다. 그랩 기사는 우리가 모녀처럼 보였는지 영어로 물어보았다.

"내일도 엄마와 함께 여행을 계속하시나요?"

"아니요. 우리는 내일 한국으로 돌아갈 거예요."

별거 아닌 대화도 할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어졌나 보다. 익숙한 사람은 자연스러울 이 모든 경험이 나에게 처음이었고 하나씩 이루어지는 것이 뿌듯했다.

마트 안은 현지인들보다 기념품을 사려는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인기 있는 기념품들은 구석구석에 높이 쌓여있었다. 딸들과 조카들에게 줄 젤리와 건망고, 과자, 코코넛칩, 마카다미아, 여행 경비를 도와준 남편에게 줄 원두커피 등을 골라 카트에 담았다. 이미 10시 가까이 되는 늦은 시간이라 하루종일 많이 걸으신 엄마가 걱정되었다.

“엄마, 괜찮아?”

“아직은 괜찮아.”

다시 그랩으로 차를 불러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휴대폰의 만보기앱을 보니 오늘 만 사천보 이상을 걸었다.

“엄마, 오늘 너무 많이 걸었다. 고생하셨어요.”

“이 정도는 괜찮아. 쉬어.”

말씀은 그리 하셨지만 씻고 나신 뒤 침대에 누우신 후 바로 코를 고셨다. 괜히 밤늦게 마트까지 다녀왔나 싶어 죄송했다.

호텔 한쪽의 테이블에 작은 스탠드를 켜고 그동안 못했던 기록을 정리했다. 바깥 한강의 조명, 아늑한 빛 아래 고단한 몸으로 주무시는 엄마, 그리고 한쪽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일기를 쓰는 내 모습까지. 별거 아닌 이 풍경이 마음속에 오래 남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음 7탄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