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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론 Apr 07. 2024

딸이 고구마 스틱을 사 오라고 했다

저녁마다 남편과 산책을 한다. 요즘 벚꽃이 하루가 다르게 피어오르고 있어서 매일 새롭다. 길 양옆으로 팡팡 터져있는 꽃들에 대해 어제의 기억과 견주며 이야기를 나눈다. 한참 걸어가 한 편의점에서 1500원짜리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나누어 마시는 게 산책의 마무리였다.

오늘도 이른 저녁 후 산책을 나섰다. 어제보다 더 활짝 핀 꽃이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어 환했다. 기분 좋게 걷는 동안 어느새 우리들의 길거리 카페에 다 왔다.

커피 한 잔을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둘째 딸한테서 메시지가 왔다.

‘엄마, 어디야?’

‘왜? 산책 중인데?’

‘그럼 맥도널드 지나가나? 요번에 고구마 스틱이 나왔던데 좀 사다 줄 수 있어?’

‘그래? 그럼 그러지 뭐.’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이 말한다.

”그냥 지가 사다 먹지 무슨 엄마를 시켜. “

나는 웃다가 얘기했다.

”땅콩버터식빵 알아? “

”알지, 어렸을 때 먹고 싶었는데 못 먹었지. “

”어렸을 때 아빠가 퇴근해 오시면서 가끔 그 빵을 사 오셨거든. 너무 맛있어서 그날 이후로는 퇴근하시는 아빠 손에 뭐가 들려있나 기대가 되었어. “

”당신은 그런 추억이 많네. “

“난 그냥 애들이 작은 부탁을 하는 건 들어주고 싶어. 애들이 매번 나를 시켜 먹는 것도 아니고 산책한 후 들어가면서 간식을 주면 왠지 아이의 추억이 하나 쌓이는 것 같거든.”

“하긴 막내도 예전에 월급날마다 동네 문구점에서 장난감 샀던 걸 기억하더라.”

“맞아. 내가 생일마다 주었던 쿠폰도 가지고 있잖아.”

“그러네.”

처음 투덜거리던 남편의 목소리가 많이 부드러워졌다.

마시던 커피는 어느새 식었고 우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아까 보지 못했던 벚꽃길을 찬찬히 보면서 걸었다.

어느새 맥도널드로 가는 길이 나왔다.

“여기서 나가면 돼.”

“그건 잊지도 않네.”

남편은 여전히 귀찮은 생각이 들어 그냥 지나치길 바랐나 보다.

맥도널드에서 둘째가 원했던 고구마스틱을 주문하고 나오길 기다렸다. 영수증을 보던 남편이 말한다.

“겨우 2500원짜리 때문에 여기 온 거야? 참. “

”새로 나온 메뉴여서 먹고 싶었나 봐. “

작고 가벼운 봉투에 담긴 둘째의 간식을 들고 설렁설렁 걸어갔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 여는 소리가 나니 둘째가 나왔다. 청소를 해놓고 저녁으로 먹은 된장찌개의 냄새 때문인지 환기를 시키고 있었다.

”집에 냄새가 다 사라졌네. 네가 부탁한 거 여기.”

”고마워, 엄마!”

둘째는 방으로 들어가더니 바로 나와서 봉투를 내민다.

“이번에 새로 나온 건데 고구마맛탕 맛이 난대. 한 번 드셔보세요.”

진짜 달콤하면서 고구마맛탕 특유의 끝에 남은 바삭함이 느껴졌다.

”진짜 맛탕 맛이 나네? “

”그렇지? 양이 좀 작은 게 흠이지만.”

혼자 먹기에도 많지 않은 양을 맛 보이면서 둘째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둘째는 고구마스틱 부탁을 하고 나름 기분 좋게 청소도 환기도 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받은 고구마스틱이 얼마나 맛있었을까. 만약 부모한테 심부름시켰다고 괘씸하다고 생각하면서 사가져 가지도 않고

‘네가 먹고 싶은 건 네가 사다 먹어!’

하고 잔소리라도 했으면 서로 얼마나 기분 상했을까. 본인도 엄마의 수고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청소도 했는데 그런 취급을 당했다면 너무 서운할 것 같다. 이야기의 끝이 훈훈해서 다행이었다.

살아갈수록 이런 작은 행복들이 아이들이 살아가는 삶의 큰 재산이 될 거라는 믿음이 더욱더 깊어진다. 나름 강경했던 남편도 세월을 지나오면서 손을 놓지 않았던 나의 마음이 고맙다고 했다. 본인도 조금씩 유연해지고 있다.

친구가 놀러 와 함께 쿠키를 굽는 큰 아이가 설거지를 한다. 이리저리 물이 튀어 한강을 만들었다.

”아이고, 이게 뭐야, 물 좀 덜 튀게 하지. “

그새 참지 못한 잔소리가 나오면서 설거지 한 그릇을 정리한다. 옆에 보고 있던 친구가 웃는다. 여전히 수양이 필요한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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