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영어일기를 쓰고 있다. 거의 매일 쓰고 있다. 5월 19일에 처음 시작했으니까 벌써 한 달이 넘었다. 내 블로그의 영어일기 카테고리에는 어느새 46개의 영어일기가 쌓였다.
영어를 잘 쓰는 사람은 전혀 아니다. 거의 25년 만에 다시 써보는 영어다. 모르는 표현도 너무 많고 써놓고도 자신이 없는 경우도 많다. 쓴 내용을 번역기의 도움으로 수정도 많이 한다.
처음부터 영어일기를 써야지 하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다. 마음이 복잡한 일이 있었다. 며칠 동안 멍하니 유튜브 영상만 보았다. 그러다 스스로 그 모습이 안쓰러워 나 자신에게 뭔가 효능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좋아하는 드라마의 영어 스크립트 따라 쓰기였다. 뭔 내용을 집중적으로 공부한다기보다 그저 따라 쓰는 무상무념이 시작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아는 표현이 나왔다.
‘어, 이럴 때 이런 표현을 썼었지?’
그러다 예전 영어를 좋아했을 때의 기분 좋은 느낌이 떠올랐다.
’ 맞아, 나 영어 좋아했었어.‘
갑자기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학창 시절도 떠올랐다.
그 주체할 수 없는 마음속에서도 영어를 쓸 때만큼은 내가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 내 기분을 영어로 쓰고 싶었다.
‘When I’m stressed I like to focus on something.’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뭔가에 집중하는 걸 좋아해요.‘
이게 내 영어일기로 가는 첫 문장이었다.
영어일기는 매력적이었다. 우선 나처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게 어려운 사람이 영어라는 필터를 하나 끼우니까 뭔가 투명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솔직한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것 같은 안도감이 조금 들었다. 물론 부족한 영어실력으로 적나라한 느낌과 생각을 쓸 수 없다는 것도 이유지만 말이다. 조금 아쉬운 실력은 요즘 잘 나온 번역기의 도움이 있으니까 괜찮다.
나는 평소 잠자기 전에 하루 일과를 떠올려 간단히 메모한다. 하지만 영어일기는 또 다른 표현이었다. 그날 떠오르는 생각이나 경험을 바탕으로 쓰기도 하고 평소 생각한 주제를 쓰기도 한다. 그냥 지나쳤을 상황에 대해 영어로 표현하지만 차분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야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니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이다.
짧지만 하나의 일기를 완성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초벌로 써보고 모르는 표현 찾아 쓰고, 어느 정도 되면 올바른 표현인지 틀린 곳은 없는지 번역기 도움도 받고. 그렇게 완성된 일기를 게시글로 올린다. 내 블로그에도 올리고 영어일기 쓰는 모임에도 올린다. 그리고 그 내용을 여러 번 읽어 익숙해진 발음으로 다시 녹음본도 올린다.
오늘도 방금 영어일기를 완성했다. 읽고 게시글로 올렸다. 낮동안의 힘들었던 경험이 쓰는 동안 희석되고 완성한 영어일기를 보며 하루가 뿌듯함으로 마무리된다.
공부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회화실력을 높이기 위해서도 아닌 순수하게 나를 위로하기 위해 시작한 이 시간, 느리겠지만 더불어 실력 향상이라는 사은품도 가져다주지 않을까 조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