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기예보로는 분명 새벽부터 하루종일 비가 내릴 것이라고 했다. 며칠 동안 일기예보만 믿고 우산을 들고 다녔는데 단 한 번도 편 적이 없다. 하긴 부산 어느 동네에 손바닥만 한 구름아래로만 비가 내렸다는 만화 같은 이야기도 실제 있던데 신이 아닌 이상 기상청인들 맞지 않는 날씨를 어쩌겠는가.
스스로 우산을 들 수 있기 시작했을 무렵, 어린이용 노란 우산을 사 준 후부터 막내는 비가 오기만을 고대했다. 매일 날씨를 물어보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한동안 비소식이 없었다.
어느 주말 아침, 비가 내릴거라는 소식에 신나게 우산을 들고 산책을 나갔다. 하지만 산책을 다녀오는 동안 결국 비가 오지 않았다. 다시 구름이 걷히는 하늘과 그걸 보며 원망이 가득했던 그때의 막내 얼굴을 떠올리니 웃음이 난다.
알록달록 원색을 좋아하고 비 오는 날을 좋아했던 꼬맹이가 어느새 무채색의 옷만 입고 얼굴에 짜증이 잔뜩 묻어있는 사춘기 아가씨가 되었다. 방금도 엄마의 잔소리가 귀찮다는 듯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딸아, 그나마 이렇게 그림으로 너의 빛나던 순간을 남겨 다행인 줄 알아라. 너의 사춘기를 너의 어린 시절로 상쇄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