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해외 혼자여행- 11. 현생을 버틸 무언가 필요하다

돌아온 나의 자리, 다시 버티기

by 케이론

돌아가는 비행기 안이다. 이륙 전, 인터넷이 끊기기 전에 가족들에게 출발 소식을 전했다.

“몇 시에 도착이야?”

“11시. 너무 늦어서 공항버스도 없네. 그냥 공항에서 있다가 새벽 첫 차 타고 들어갈게. 오기에는 너무 멀고 늦어.”

“아니야. 데리러 갈게.”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조용히 예약해 두었던 공항버스를 취소했다. 가슴 한편에 더위와 다른, 따스함이 퍼졌다.


드디어 떠오르는 느낌과 함께, 저 아래 마카오가 멀어진다. 꿈같은 3일이 멀어져간다. 비는 그쳤지만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이 여전히 묵직했다. 구름 사이로 서서히, 육지의 불빛들이 사라진다.


마지막 만찬인 듯 기내식이 나왔다. 한 입 한 입 천천히 음미했다. 커피로 마무리하니, 편안해진다. 3일 동안 만난 음식들 모두 비싸고 대단하진 않았지만, 나만을 위한 식사들이었다. 이 또한, 여행에서 나를 다독이는 방법이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뒷좌석의 사춘기 남자애가 등받이를 자꾸 쳐서도, 계속되는 기류변화와 안전벨트를 꼭 하고 이동하지 말라는 기내 방송때문도 아니었다. 이젠 불빛도 사라진 창밖을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해 본다. 마음을 이토록 편하게 만들어 준 건 뭘까?


사람은 스스로를 살리는 방법을 본능처럼 알고 있는 듯하다. 마지막까지 치닫기 전, 나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여행을 시작했다. 물론 상황은 변하지 않은 채 여전하고 다시 마주해야 할 일들도 그래로 남아있다. 하지만 나는 분명, 가벼워졌다.


중요한 건 내가, 나에게 절실히 필요했던 브레이크 타임을 과감히 주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과감한 판단을 한 과거의 내가 기특하다. ​이번 여행은 나에게 그 ‘멈춤’의 시간이었다. 누군가의 엄마도, 아내도, 직장인도 아닌 나 자신으로서 숨을 고르고, 순간을 살아낸 3일이었다.


게다가 드로잉이라는 나만의 치유 방법까지 곁에 있었다. 여행이 익숙한 세계를 벗어나 낯선 환경에 집중하게 만든다면 그림은 지금 만나는 이 선, 색, 구도에 몰입하게 만든다. 둘 다 결과나 완성보다, 그 자체와 하는 동안의 감각과 감정이 중요하다.


여행은 내 바깥으로 향하는 시간을 주었다면, 그림은 내 안의 소중한 것들을 볼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그 둘을 동시에 했던 3일. 나는 그동안 너무 멀리 가버렸던 ‘나 자신’을 돌보고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어느새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휴대폰을 켜니 벌써 도착했다는 남편의 문자. 길 건너, 그가 보인다. 순간, 영화 ‘인셉션’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주인공이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왔을 때 느끼던 혼란. 3일 간의 단절이 주는 비현실감. 꿈에서 현실로 들어가는 순간이 더 꿈같다.


“잘 다녀왔어?”

남편이 조심스레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함께 돌아오는 길, 창밖의 서울 거리는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떠나고 싶었지만, 결국 다시 돌아오고 싶었던 곳. 일상으로, 우리 집으로, 나는 다시 들어간다.

다시 인셉션.


잠깐,

그래서 다음 혼자 갈 여행지는 어디라고?




다시 일상이다.

휴대폰 갤러리를 보며 여행의 잔향을 맡는다.

이번 여행의 마무리로 펜 스케치만 한 드로잉북에 채색을 한다. 미처 그리지 못한 장면들을 추가로 그린다.

진정한 여행의 마무리다. 행복했다.




PS.

평소의 나였다면 상상조차 하지 않았을

이번 ‘도전의 문‘을 열도록 용기를 준 나의 아티스트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