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나의 자리, 다시 버티기
돌아가는 비행기 안이다. 이륙 전, 인터넷이 끊기기 전에 가족들에게 출발 소식을 전했다.
“몇 시에 도착이야?”
“11시. 너무 늦어서 공항버스도 없네. 그냥 공항에서 있다가 새벽 첫 차 타고 들어갈게. 오기에는 너무 멀고 늦어.”
“아니야. 데리러 갈게.”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조용히 예약해 두었던 공항버스를 취소했다. 가슴 한편에 더위와 다른, 따스함이 퍼졌다.
드디어 떠오르는 느낌과 함께, 저 아래 마카오가 멀어진다. 꿈같은 3일이 멀어져간다. 비는 그쳤지만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이 여전히 묵직했다. 구름 사이로 서서히, 육지의 불빛들이 사라진다.
마지막 만찬인 듯 기내식이 나왔다. 한 입 한 입 천천히 음미했다. 커피로 마무리하니, 편안해진다. 3일 동안 만난 음식들 모두 비싸고 대단하진 않았지만, 나만을 위한 식사들이었다. 이 또한, 여행에서 나를 다독이는 방법이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뒷좌석의 사춘기 남자애가 등받이를 자꾸 쳐서도, 계속되는 기류변화와 안전벨트를 꼭 하고 이동하지 말라는 기내 방송때문도 아니었다. 이젠 불빛도 사라진 창밖을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해 본다. 마음을 이토록 편하게 만들어 준 건 뭘까?
사람은 스스로를 살리는 방법을 본능처럼 알고 있는 듯하다. 마지막까지 치닫기 전, 나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여행을 시작했다. 물론 상황은 변하지 않은 채 여전하고 다시 마주해야 할 일들도 그래로 남아있다. 하지만 나는 분명, 가벼워졌다.
중요한 건 내가, 나에게 절실히 필요했던 브레이크 타임을 과감히 주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과감한 판단을 한 과거의 내가 기특하다. 이번 여행은 나에게 그 ‘멈춤’의 시간이었다. 누군가의 엄마도, 아내도, 직장인도 아닌 나 자신으로서 숨을 고르고, 순간을 살아낸 3일이었다.
게다가 드로잉이라는 나만의 치유 방법까지 곁에 있었다. 여행이 익숙한 세계를 벗어나 낯선 환경에 집중하게 만든다면 그림은 지금 만나는 이 선, 색, 구도에 몰입하게 만든다. 둘 다 결과나 완성보다, 그 자체와 하는 동안의 감각과 감정이 중요하다.
여행은 내 바깥으로 향하는 시간을 주었다면, 그림은 내 안의 소중한 것들을 볼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그 둘을 동시에 했던 3일. 나는 그동안 너무 멀리 가버렸던 ‘나 자신’을 돌보고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어느새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휴대폰을 켜니 벌써 도착했다는 남편의 문자. 길 건너, 그가 보인다. 순간, 영화 ‘인셉션’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주인공이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왔을 때 느끼던 혼란. 3일 간의 단절이 주는 비현실감. 꿈에서 현실로 들어가는 순간이 더 꿈같다.
“잘 다녀왔어?”
남편이 조심스레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함께 돌아오는 길, 창밖의 서울 거리는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떠나고 싶었지만, 결국 다시 돌아오고 싶었던 곳. 일상으로, 우리 집으로, 나는 다시 들어간다.
다시 인셉션.
잠깐,
그래서 다음 혼자 갈 여행지는 어디라고?
다시 일상이다.
휴대폰 갤러리를 보며 여행의 잔향을 맡는다.
이번 여행의 마무리로 펜 스케치만 한 드로잉북에 채색을 한다. 미처 그리지 못한 장면들을 추가로 그린다.
진정한 여행의 마무리다. 행복했다.
PS.
평소의 나였다면 상상조차 하지 않았을
이번 ‘도전의 문‘을 열도록 용기를 준 나의 아티스트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