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보다 중요한 건 함께
엄마는 여섯 남매 중 셋째다. 시골에서 농사일로 무거운 걸 너무 들어 크시지 못한, 작은 나보다 더 작은 엄마다. 큰 이모도 다르지 않다. 팔순이 넘으신 지금도 혼자 농사를 지으신다. 엄마는 몸이 아픈 언니에게 ’ 아유, 좀 그만해도 돼!‘ 잔소리했지만, 엄마는 늘 이모의 몫을 챙겨두셨다. 그건 이모도 마찬가지였다.
"엄마, 어디 바람 쐬러 갈까?"
오랜만에 혼자서 친정을 갔다. 바깥 활동을 못 하셨을 이모도 함께 가자고 전화를 드렸다. 처음엔 집에 있는 누렁이 밥걱정에, 농사일에 걱정 가득했던 이모도 엄마의 성화에 마음을 바꾸셨다.
"허리가 너무 아파 몇 발자국 못 걷어. 내가 가면 니들이 제대로 못 구경할 텐데……."
걱정하시는 이모의 손을 엄마는 잡아당겨 차에 태우셨다.
“괜찮아요. 천천히 다니시면 되죠.”
"그냥 바람 쐬기만 해도 좋잖수."
출발과 함께 엄마와 이모의 수다는 시작되었다.
산책길이 좋다는 청남대로 향했다. 경사도 별로 없고 느긋하게 시원한 바람을 쐬며 산책할 수 있는 곳이어서 걷기 불편하신 이모한테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나무터널을 한참 지나 드디어 청남대 입구에 도착했다. 한 여름이었지만 초록잎 사이로 바람이 불고 새소리 들리는 편안한 곳이었다. 두 분의 시간을 드릴 수 있어 설렜다. 하지만 첫 건물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모가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게 되었다.
이모는 정말 백 미터가 아니라 오 미터도 한 번에 걷지 못하셨다. 이모는 몇 발도 못 옮기시고는 멈추시고 숨을 몰아쉬셨다. 다시 몇 발자국 걸으시다 멈추고 허리를 펴셨다. 엄마는 수시로 멈춰 기다렸고 이모는 아픈 몸 이끄시고 애써 따라가셨다.
30m 쯤 걸었을까?
"얘, 엄마는 돌아다니면 덥기도 하고 그냥 여기서 이모랑 얘기나 하면서 쉬련다."
엄마는 영 따라오지 못하시는 이모를 보고 근처 평상에 눌러앉았다. 근처 매점에서 사 온 음료수를 두 분께 건넸다.
“너라도 가서 구경하지.”
“괜찮아요.”
신선한 바람 사이로 음료수를 마시면서 두런두런 이어지는 엄마와 이모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결국, 청남대 입구만 찍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별로 한 것 없지만 따뜻했던 여행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이모 댁에 모셔다 드리기 전에 근처 도담삼봉에서 들렀다. 두 분은 강을 바라보며 한동안 얘기를 나누셨다. 그동안 나는 일부러 조금 떨어져 앉아 두 분을 지켜보았다.
엄마도 나의 엄마이기 전에 존재하는 한 사람이다. 본인으로, 동생으로, 친정 언니한테 투정도 하소연도 맘껏 이야기하셨으리라. 모든 둘러싼 의무들은 잠시 잊고 엄마 자신으로 잠시나마 느끼시지 않을까. 두 분의 낮은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나무 그늘 아래 함께 앉은 모습만으로도 충분했다.
엄마와 이모의 구부정한 뒷모습에서 고단함과 세월이 느껴졌다. 너무 늦기 전에 조금이나마 두 분이 이렇게 나란히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만들어 드려야겠다. 불혹이라는 나이가 넘어서야 그녀들의 뒷모습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