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이론 Apr 15. 2024

나도 모르는 내 모습

몰입의 순간


“선생님! 아까 뵀는데 그림 그리시는 모습이 초집중이시라 아는 척을 못했어요. 대신 사진 찍었는데 보실래요?”

한 분이 다가오시더니 휴대폰 사진을 보여주신다. 나다.


어느 모임이 있던 날, 일찍 도착한 나는 근처 카페에 먼저 가 있었다. 항상 간단한 그림재료들을 가지고 다니던 때였다. 모임 시간까지 여유가 있으니 간단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마침 일찍 왔던 분이 카페에서 나를 보고 아는 척을 하려는데 너무 집중한 상태라 미처 말을 걸지 못했단다. 누가 곁에 와도 몰랐나 보다. 그리고 나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주신 것이다.


낯설었다. 내 모습을, 게다가 그림 그리는 내 모습을 처음 본 것이다.  왼손은 노트를 받치고 드로잉북을 뚫어져라 보면서 오른손을 조심히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입은 어찌나 앙 다물고 있던지 꼭 아이들이 뭔가에 빠져 있을 때의 모습이었다. ​

몰입1. 그림 케이론.


오로지 그림에만 집중하는 나의 모습이 어떨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분께서 전해주신 사진을 보니 온통 신경이 작은 드로잉북에만 가 있는 내 모습이 신기했다. 내가 가장 행복해하는 순간의 모습이었다.


한 번은 친구를 만나 함께 카페에서 그림을 그렸다. 친구는 잠시 그리다가 가져온 뜨개질을 하기도 했다. 아마 그림을 계속 그리는 게 지루했던 모양이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그저 내 시간에 빠져 있었다. 어느 순간 ’찰칵‘하는 스마트폰 카메라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드니 친구는 내 모습을 보여주었다.

“너 진짜 그림에 완전 푹 빠졌구나.”


몰입2. 박스에 그림 케이론.

좋아하는 아이돌을 볼 때 짓는 행복한 표정처럼 온통 그림 그리는 행위에 빠져있는 나의 모습을 남겨준 친구에게 고마웠다. 그동안 다른 이들을 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친구의 시선 끝에서 발견한 가장 행복한 때의 나. 그 모습을 그리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을 상상하니 다시 행복해진다. 몰입이 준 천연 도파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는 봄을 잡지 않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