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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so 8시간전

성취를 했는데 왜 담담할까요

 오늘부로 영어회화 어플 스픽을 통해 영어공부를 한지 딱 100일이 됐다. 100일은 곰이 마늘을 먹고 웅녀가 된 시간인만큼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꽤 상징적인 숫자이다. 그런 관점으로 과거에 100일 글쓰기를 했었다. 100일 글쓰기를 주도하시던 선생님이 쓰신 책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사람들을 글을 잘 쓰기를 바란다, 그러나 쓰지 않는다. 실제로 하지 않으면서 잘할 수 있게 되는 일은 없다. 글쓰기를 잘하고 싶다면 묵묵히 100일을 써라.' 선생님은 있었지만 별다른 첨삭은 없었던 그 활동을 통해 글쓰기가 점점 자연스러워지는 것을 느꼈었다.


 영어 공부에 대한 나의 동기부여는 넓은 세상에서의 원활한 소통이다. 기본적인 소통이 안 되는 것은 아니나 좀 더 내 생각을 잘 전달할 수 있다면 하는 아쉬움이 항상 있었다. 그러던 중 홍콩 출장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던 J에게 스픽 어플을 소개받았고 재미로 시작해 100일의 시간을 채운 것이다. 하루라도 강의를 듣지 않으면 불꽃이 꺼지기에 스페인 여행을 가서도 아침준비시간이나 차량 이동시간에 꼭 한 강의씩을 들으며 회화 연습을 했다. 오늘 100일의 불꽃을 채우고 통계를 확인해 보니 지난 100일 동안 2653분, 그러니까 44시간 하고도 13분 정도를 온전히 스픽 영어회화 공부에 썼다.


 하루에 한 번 강의를 들을 때마다 활성화되는 그 불꽃을 꺼트리지 않으면서, 100일이 올 날을 고대했는데 정작 100일이 된 오늘은 생각보다 담담하다. 어떤 결과를 마주하거나 마지막 성취를 했을 때 나는 이런 담담한 느낌을 자주 받고는 한다. 끝나서 너무 좋다거나, 개운하다거나, 기쁘다거나 이런 감정이 들어본 적이 있나를 생각해 보면 사실 별로 없는 것 같다. 뭔가를 오래 꾸준히는 하는 것은 나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에게 동기부여는 아주 작은 실마리면 되고 그냥 그 일을 하는 그 순간을 즐겨버리는 편이다. 수영 배우기가, 영어회화 공부가,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게 즐겁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일까? 어렵지 않은 만큼 거기서 이룬 성취가 나 스스로에게 크게 다가오지 않는 것 같다. 그저 했을 뿐인데,라는 결론에 이르고 만다. 한 회사를 8년이나 다닌 것도 이런 성향이 분명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한 일이 없지 않은데 거기서 이런 가치와 성과를 얻었다고 잘 포장해 이야기해야 하는 자기소개서나 인성면접이 어려운 것도 그런 이유인 것 같다.


 이번주에 집중해 보기로 한 '나 알기, ' 그 1단계로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생각해 보고 거기서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생각해 보라는 가이드를 들었다. 1단계부터 어렵다. J는 100일 영어공부, 수영 개근하기 등을 하는 나를 보며 동기부여가 없어도 행위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어젯밤 이를 곱씹으며 그보단 작은 것에도 동기부여가 되고 남들보다 지구력이 좋은 게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오늘 100일 영어공부의 성취와 과거의 나를 돌아보며 나는 남들이 어려워하는 일(=남들이 보기에는 대단해 보일 수 있는 일)을 하면서도 거기서 가치부여를 하고 이를 설명하는 걸 잘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우선 나 스스로가 거기에 흥분되지 않고 그렇기에 필요성을 알면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연습이 잘 안 되어있다는 결론이다. 좋게 말하면 담백하고, 비틀어 말하면 단순한 생각회로다.  


 나는 이렇게 나의 활동과 성취에서 남들에게 설명할 수 있게 가치를 뽑아내는데 약한 사람이다.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하고 싶은 것, 추구하는 가치 등을 찾아보겠다고 한 상황에서 첫 번째 질문에 답을 하다가 그 답을 찾는 게 내가 약한 부분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도돌이표다. 그래도 약간의 희망을 갖는다면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과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은 천지차이라는 관점에서는 이것도 진전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럴 거라고 믿고 싶다.      


내 마음의 불꽃도 타올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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