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회사동료와 저녁식사. 한명은 함께 있던 그 자리에서, 또 한명은 새로운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중이었다. 광화문 빌딩숲 한가운데 들어선 고깃집에는 양복입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회식자리같아 보이는 곳에선 박수소리가 튀어나왔다. 업계소식, 옛 동료들의 소식, 한때는 나의 회사였던 그 회사 소식, 난 경험해보지못한 이직 초반의 어색한 회사분위기를 들었다. 근황을 이야기하며 웃었지만 왠지 모르게 묘한 기분이었다. "스페인 다녀와서 회사구하면 되죠." 에서 "결혼하시고 회사가는 것도 괜찮죠." 로 취업고민에 대한 답이 바뀌었는데 현재의 나의 생활이 결국은 성취했어야 했던 것에 대한 핑계인걸까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꽉꽉 차 있는 하루하루에 정말 중요한 것들은 생략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한가지 더 느낀 점은 한때는 나의 일이었던 그들의 업무 이야기가 그닥 흥미롭지 않았단 점이다. 그렇구나, 현재 그 건은 이 단계에 있고, 이런 이유로, 이 방식 아래 업무가 진행되고 있구나를 이해할 뿐 그 일을 다시 하고 싶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잘할 자신도 들지 않았고. J에게 이런 맘을 털어놓으니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만큼 아닌 것을 걸러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 말한다. 다시 신입이 될 마음이 있다면 정말 좋아할만한 일을 찬찬히 찾아보고 도전하라 했다. 맞는 말인걸 알면서도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일까 운용사 투자팀을 지원해보라는 헤드헌터의 제안이 그닥 반갑지가 않았다.
오랜만의 늦은 저녁 약속이 피곤했던건지, 아니면 맘이 불편했기 때문인지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도 하루종일 무기력했다. 뭐라도 하면 기분이 나아질것같아 주방정리를 위해 시킨 실리쿡 트레이 배송만 오전 내 기다렸다. 명쾌하고 명량하게 사는 편인데 먹고사는 고민을 떠올리면 늘 흐린 안갯속에 있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