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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so Sep 28. 2024

동기사랑 나라사랑

 자주 보지는 못해도, 만나면 정말 즐거운 사람들이 있다. 구회사의 동기들이다. 동년배의 주제에 대해, 어떻게 사는 게 좋을까에 대해, 예전에 함께 알았던 사람들에 대해, 또 어떨 때는 그저 일상의 소소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덧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그래서 이들과 만나면 언제나 마감 안내를 듣고 나서야 식당을 나서게 된다. 즐거움, 슬픔, 화남 등 다양한 감정이 담긴 이야기가 나오는데 어떨 때는 새로운 접근이라 흥미롭고, 어떨 때는 너무도 공감되어 신기하다. 어제는 이야기 막판에 J와 다툰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내 편을 들어주겠지란 나의 기대와는 달리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상황을 객관적으로 정리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두 사람이 해야 할 것에 대해 이야기해 줘서 놀랐다. 결혼 선배로써 본인들의 경험을 예시로 들며 성난 나를 가라앉히면서 서로의 대화방식에 대한 합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단 이야기를 해주는 그들을 보며 그 자리에서는 '왜 내편은 없는 거야'라며 우는 척을 했지만 속으로는 성숙한 그들의 조언에 사뭇 놀라기도 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알고 지낸 친구들도 있고, 대학시절 죽고 못살던 친구들도 있지만 근래 들어서 만남이 제일 즐거운 건 이들인 것 같다. 회사는 나에게 95번의 월급을 주었고, 웃음도 울음도 많은 기억들을 남겼지만 무엇보다 이런 인연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사실은 내 인생에 중요한 장소일 것이다. 작지만 나름 공채 기수가 있었던 그곳에서 우리 말고도 다음 기수나 그다음 기수들도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마음을 나누는 걸 보면 그래도 신입을 뽑는 데 만큼은 사람 보는 눈이 있었구나 싶다. 후배 결혼식에서 이미 옛적에 회사를 떠났던 그녀의 동기들이 모여 플라워샤워 꽃잎을 던져주는 모습을 보면서도 저들도 참 애틋하구나 싶었다.


 동기라는 게 원래 유대감이 생기는 관계긴 하지만 모든 동기가 이렇게 오래, 좋기도 어려울 일이다. 본체 워낙 좋은 사람들이자 서로 결이 맞는 이유도 있겠지만 대화의 주제나 방향이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 현재와 미래이기에 더 즐겁다고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이상하게도 어떤 현재와 미래 이야기를 할 때 어색해지는 관계들이 있다. 자연스레 공통적으로 할 수 있는 아주 피상적인 이야기나 과거 이야기로 주제를 선회하게 되는데 이런 대화 패턴이 반복되면 만남의 즐거움이 떨어지곤 한다. 그리고 그 관계를 대하는 내 마음도 조금씩 서먹해진다.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인생은 선택과 관계라 했다. 아직 인생을 잘은 모르겠으나 그 두 가지가 손에 꼽을 만큼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이 간다. 예전에 읽은 책에서도 아이를 잘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좋은 이웃을 만드는 거라 했다. 좋은 사람들을 보고 자라게 하라는 말이다. 정말 오랜만에 자정이 넘어 집에 돌아오는 저녁, 새삼스레 소중한 사람들의 얼굴들을 떠올리며 그들이 내 곁에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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