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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nja Feb 08. 2018

헬싱키의 회사원

핀란드 헬싱키에서 잘 먹고 잘 사는 회사원의 일기


눈이 참 많이 내렸다. 지난주에는 며칠 연속으로 눈이 하루 종일 내렸고 그 눈이 꽝꽝 얼어버린 위에 며칠 동안 눈이 계속 내리고 있다. 녹을 새도 없이. 서울에 있을 때는 눈 내리는 게 그렇게 싫었는데 (동심 부재와 구정물 바닥 콤보) 여기에선 눈 내리는 게 너무 좋다. 


눈이 아주 많이 내린 날 아침 출근 길. 넘나 아름다워 홀로 감동.


아름다운 풍경은 둘째고 사실 해가 늦게 떠서 엄청 일찍 지다 보니, 주변이 하야면 그나마 더 밝아 보이고 보기에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에선 눈보라가 휘몰아쳐도 사람들은 좋아한다. 우와!!! 눈이닼!! ㅋㅋㅋ (물론 이렇게 격하게 좋아하는 핀란드 사람은 없다. 있다면 외국인일 듯)


나는 얼마 전부터 핀란드 헬싱키에 위치한, 크다면 큰 유럽계 글로벌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업계에 따라 또 그 기업 문화에 따라 회사 내 분위기와 업무 방식은 아주 많이 다르겠지만 지극히 주관적이고 사적인 헬싱키에서의 사회 생활기를 전하고자 한다. 이곳에 포스팅할 내용들은 회사 생활에서 겪은 가벼운 에피소드들이 되지 않을까 한다. 팀 사람들과 함께 한 잡담부터 점심 식사나 휴가, 야근, 그리고 다른 친구들과 나누는 핀란드 헬싱키에서의 직장 생활에 대한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담아볼 예정이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회사를 다니면 어떤가요?
 
자유롭고 독립적이고 노잼. (신입사원, 출근 한 달 차)



나는 한국에서 대기업에서 근무해본 경험이 없다. 서울에 위치한 다수 외국계 기업에서 일을 한 경험은 있기에 잘 알려진 한국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친구들에 비해 나는 늘 비교적 자유롭고 편한 회사생활을 했던 것 같다. 위계질서나 근무태도에 대한 규율이 그나마 적고 융통성 있는 분위기. 게다가 상사가 외국인이었을 때는 나도 너도 핏대를 세우면서 미팅을 하거나 회식 날짜조차 모두의 스케줄을 고려해서 잡을 만큼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그런 분위기에서 일을 해본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사정은 더욱 자유롭다. 상하구조가 정말 느껴지지 않는 평등한 구조에서 일한다고나 할까. 물론 직급 상 저마다의 보스가 있지만 졸병이라고 해서 눈치 보며 기어야 하는 분위기와는 굉장히 멀다. 심지어 이곳에서의 첫 출근 날, 다른 부서의 매니저들과 함께하는 워크샵에 참여하게 되었다. 업무를 1도 모르는 신입이었지만 모두들 내 의견에 귀를 기울여주었고 내가 하는 소리가 나도 모르는 멍멍 소리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음에도 좋은 아이디어라며 내게 따뜻한 눈빛을 보내주었다. (feat. 착한 핀인들….) 하지만 어느 구역에나 미친 x은 존재하기 때문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친 자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알아내게 되면 다음에 소개하도록 하겠다. 



자유로운 출퇴근


매일 아침, 출근하면 출퇴 카드를 찍어서 근무 시간을 체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회사 프로그램에 출퇴근 시간을 따로 입력하고 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 디폴트 값이 적혀 있는데, from 8:00 to 15:30이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나름 권장하는 근무시간은 총 37.5 시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이 시간에 출근하지 않는다. 절 대. 일찍 온 사람들은 일찍 퇴근하고, 늦게 출근한 사람들은 늦게 퇴근한다. 팀 자체 분위기가 독립적이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누가 언제 출근하는지는 아침 인사로만 알 수 있다. 누군가 Huomenta! (핀어로 굿모닝) 하면서 들어온다. 그럼 다 같이 후오멘따~~~~~ 하며 답해준다. 나도 어느 순간 굿모닝에서 후오멘따로 멘트를 바꾸었다.


나는 보통 8시 30분쯤에 도착하는데 그럼 절반 가량의 팀 사람들이 출근해 있다. 눈이 너무 많이 내리거나 월요일이라거나 하는 날에는 다들 조금씩 늦게 오는 것 같긴 하다. 그리고 오후 세시가 되면 사람들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한다. 역시 이때도 내일 보자~~~ 하는 인사로 알아챈다. 이 퇴근 시간은 아이들 교육기관 운영 시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 네시가 안돼서 퇴근하는 사람들의 주된 이유는 초등학교 입학 전에 아이들을 맡기는 데일리 케어나 학교에 있는 아이들을 픽업하러 가기 위해서다. 물론 예외적으로 일찍 출근해서 늦게까지 일하는 할 일이 많아 보이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 하지만 네시 반 정도 되면 텅텅 빈 회사에 혼자 있고 싶지 않다는 기분이 불쑥 들곤 한다. 자유로운 출퇴근 시스템이 아주 잘 자리 잡혀 있어서 원하면 일찍 출근해서 일찍 퇴근하고, 할 일이 많으면 더 일하기도 하고 늦잠 자고 늦게 출근해서 늦게 퇴근해도 된다. IT회사에 다니는 핀란드인 친구의 말을 빌자면 그곳은 대체적으로 직원들 나이가 어린 편이고 더 자유로운 분위기라서 대부분 9시나 조금 더 늦게 출근하고 본인은 10시에 출근한다고 한다. 8시 출근은 애 낳기 전까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며. 


독립적인 일처리

https://youtu.be/P3gsg04DBiw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 알아서 척척척 스스로 어린이

한국에서 일했던 다른 외국계 회사에서도 그랬듯이 이곳에서도 주어진 자유만큼이나 독립적으로 스스로 알아서 재능 교육을 해야만 한다. 물론 개인적으로 이미 직장생활 경험이 있어서 기본적인 시스템이나 업무 방식에 대해 딱히 배울 건 없지만, 분위기 자체가 그냥 나를 방생해버린다. 나의 사수라면 사수인 나의 보스라는 사람도 내게 몇가지 일을 주고선 그냥 내버려둔다. 그러다 갑자기 문득 날 찾아와 맡겨 놓은 꿀단지가 어딨는지 묻는 마냥 눈을 반짝이면서 '그때 내가 말한 거 다 했엉?' 물어본다. 


당연히 다했덩!! 이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야 함


신입이기 때문에 이래저래 해야 한다는 식의 무언의 질서가 없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아무도 눈치주지 않는다. 하지만 독립적으로 나 스스로 알아서 업무를 잘 해내야 한다. 밥값은 알아서 하고 연봉도 알아서 키운달까. 나에게 준 일을 언제까지 어떻게 하라는 말도 없고, 일단 시키고 본다. 모르는 것은 알아서 공부하고 찾아보거나 용기 내어 다른 사람들을 달달달 볶아야 무언가를 잘 해낼 수 있다. 


대기업에서나 보통 중견기업에서 하는 트레이닝 시스템이나 사수가 붙어 일을 가르쳐주는 일이 내가 겪었던 외국계 기업에선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이것 역시 업종과 업계와 회사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또 한 번 이야기해본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비추어 봤을 때 비교적 아주 주체적인 자세로 스스로 해 나가야 하는 것들이 많다. 오늘도 나의 보스는 내게 말한다. 용기를 가지고 뭐든 좀 물어보라고. 음. 알았덩... 


노잼
어떠한 농담과 웃음도 내게 미소를 주지 못해


이건 사실 내가 핀란드어를 못해서 노잼일 수도 있다. 


늘 그렇듯 수다와 뒷담화는 편한 언어로 떠는 게 최고다. 아무리 영어를 잘하는 핀란드 사람들일지라도 그들만의 수다는 핀어로만 이어진다. 또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건 콘텐츠를 단순화시키거나 순화시키는 좋은 효과들이 있다. 그런 효과가 굳이 달갑지 않은 수다 세계에서는 핀어만을 사용하는 것이다. 나는 아주 기초 핀어만 할 줄 알기 때문에 그저 몇 단어로 대화의 주제를 추측을 할 뿐이지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다. 그리고 분위기라는 게 있다. 그 분위기가 지금까지 겪은 바로는 아주 노잼이다. 물론 이것도 이 회사의 거대 자본이 주는 안정감 때문일 수도 있다. 스타트업이나 IT업계 쪽을 가면 아마 다를 거다. 근무하고 있는 오피스 내 주변 사람들의 나이대가 나보다 연장자들이다 보니 우리는 밥 먹을 때도 종종 아이들 이야기나 정치 혹은 외교 이야기를 많이 한다. (주로 애 없는 삶이 얼마나 윤택한지에 대해… 그리고 마무리는 아이들이 주는 사랑을 잊지 말아요! 오호호…) 


물론 정치 외교 이야기는 나 때문에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아, 내가 노잼의 원인인 건가…? 


그랬구나....


내가 한국인이라 요즘은 올림픽 이야기를 자주 하곤 한다. 평창 올림픽에 대한 모든 정보를 핀란드인들을 통해 듣고 있다. 겨울 스포츠 강국 국민들답게 겨울 올림픽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아니면 아시아 내에서 한국이 그렇게 서양화되어 있더라, 태국 베트남이랑 다르더라, 등등 본인이 경험한 아시아와 도시화된 동북아시아에 대한 개인적 비교 분석을 내게 확인받는다던가. 가끔 여기 사람들에게 한국의 역사를 설명해줘야 할 때가 있어서, 아니 많아서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 그리고 한국 밖에서 비춰지는 한국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노잼 파트는 앞으로 개선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출근 한 달 차, 나는 아직도 적응 중이다. 시간이 해결해 줄 부분들이 아주 많이 남았다. 그동안 이곳에 나의 적응기를 옮겨보면 어떨까 싶다. 다른 회사를 다니는 핀인들을 많이 만나서 소식을 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그들의 회사 생활엔 잼이 존재할 것인가……….


소개글 마침.

핀자* 씀.


( 핀자*: 필명 Finja는 핀란드 친구들에게 형식이 석호 훈민이 수정이 등등의 한국 이름을 지어주고 얻은 핀란드 이름이다. 핀란드어로는 '휜냐' 혹은 '퓐냐' 라고 발음한다. 물론 이 이름을 사용해본 적은 없다. 여기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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