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살, 내가 만난 첫 번째 미국의 밤
1998년 7월 3일.
처음 밟은 미국 땅은 신기하고 낯설며, 이상하리만치 어두웠다. 비행기 창밖을 보며 상상했던 것은 뉴욕의 화려한 불빛과 따뜻한 공기였다. 그러나 비행기가 활주로에 내려앉았을 때,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검고 낮은 하늘, 밝지 않은 공항 조명, 그리고 무언가 차가운 공기였다.
나는 열 살이었고, 여동생은 여덟 살이었다. 그때의 우리에게 '미국'이라는 단어는 너무나도 거대하게 느껴졌고, 도착한 순간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다. 게이트를 빠져나오자, 공항은 익숙하지 않은 냄새와 색으로 가득 차 있었다. 표지판에 적힌 영어 문장들, 빠르게 걸어가는 키 큰 외국인들, 그리고 엄마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는 조용히 당황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나는 엄마의 손을 꼭 잡은 채 동생 옆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빠는 공항에 계시지 않았다. 우리는 도착장에 서 있었고, 그곳에는 아빠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낯선 언어가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빠는 보이지 않았다.
그 몇 분이 얼마나 긴 시간이었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아빠는 곧 도착했다. 정확히 왜 늦었는지, 정말로 늦었던 것인지조차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빠를 본 순간의 안도감, 낯선 나라에서 처음 마주한 익숙한 얼굴이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던 것은 분명하다.
아빠와 함께 사촌오빠의 차를 타고 고모와 고모부의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거리의 풍경은 크고 조용하며 색깔이 다양했다. 사촌오빠는 신호등의 모양이 다르다는 것과 간판의 색이 한국과 다르다는 점을 설명해 주었지만, 나는 말보다는 창밖의 도시를 조용히 바라보는 쪽을 선택했다.
고모와 고모부의 집은 써니사이드에 위치한 6층짜리 아파트였다. 우리는 낡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갔다. 그 엘리베이터는 좁고 오래되어, 까만 플라스틱 버튼이 둥글게 튀어나와 있었다. 버튼을 누를 때마다 딸깍 소리가 나고, 1초가 1분처럼 느껴질 만큼 느리게 올라갔다.
아직 시차에 적응하지 못한 우리 가족은 거실에 이불을 펴고 누워 조용히 밤을 보냈다. 말이 많고 웃음이 넘치던 동생도 조용했고, 나는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를 들으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꿈에 그렸던 '미국'과는 너무 다른 밤이었다. 그것이 나의 첫 번째 미국의 밤이었다.
다음 날 아침, 고모와 고모부가 말씀하셨다. “미국에 왔으니, 미국 아침을 먹어야지.” 우리는 함께 맥도널드에 갔다. 처음 보는 메뉴판, 낯선 카운터의 향기, 그리고 그보다 더 낯설었던 팬케이크 아침 식사. 팬케이크와 소시지, 달걀, 해시브라운이 함께 나왔다. 시럽을 뿌리자 팬케이크 위로 천천히 흘러내렸고, 그 모습을 보니 괜히 웃음이 났다. ‘이런 걸 아침으로 먹는다고?’ 익숙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맛있었다. 종이 트레이 위에 담긴 미국식 아침은 한국에서 먹던 밥과 국과는 모든 것이 달랐고, 그 낯섦이 묘하게 설레기도 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고모와 고모부의 집 옆에 있는 놀이터로 갔다. 철제 미끄럼틀, 그네, 그리고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는 분수대가 있었다. 물놀이가 가능한 놀이터는 처음이었다. 낯선 언어 속에서도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어디서나 똑같았다. 동생과 나는 쭈뼛쭈뼛하다가 금세 물에 뛰어들었고, 옷이 다 젖은 줄도 모르고 신나게 놀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개를 보았다. 갈색 털을 가진, 산처럼 거대한 개였다. 그 개는 조용히 소화전 옆에 앉아 있었고, 눈은 둥글고 순한 모습이었다. 무섭기도 했지만, 한참을 바라보다가 '나도 언젠가 저런 개를 키우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떠오른 것도 기억난다.
집에 도착해 옷을 갈아입고 TV를 켰다. Nickelodeon이라는 어린이 채널이었고, 파란 강아지가 단서를 찾아다니는 프로그램인 'Blues Clues'가 방영 중이었다. 나는 TV 앞에 엎드려 그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빨간 'thinking chair'와 파란 개가 등장했다. 영어는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상하게도 재미있었다. 말은 몰라도 표정은 알 수 있었고, 나도 따라 웃고 있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익숙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해가 지고 나자, 밖에서 '펑! 펑!' 하고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무심코 창밖을 바라보았을 때, 고모가 말했다.
“오늘이 7월 4일이야. 미국의 독립기념일이거든.”
우리는 처음 듣는 그 말의 의미도 모른 채 TV를 켰다. 화면에는 폭죽이 하늘을 수놓는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빨강, 파랑, 초록, 금빛… 다양한 색의 불꽃이 어둠을 가르며 별처럼 흩어졌다.
엄마와 아빠는 우리를 데리고 근처의 7번 전철역으로 갔다. 지상 2층 높이의 역 위에 올라서자 멀리 맨해튼의 불빛이 조용히 반짝이고 있었다. 그 순간, 하늘 위로 또 하나의 불꽃이 솟구쳤다. 폭죽이 새처럼 날아올라 펑! 하고 터졌다. 그리고 그 순간, 미국의 두 번째 밤이 내 눈과 심장 속에 천천히 스며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미국의 시작은 이렇게 두 개의 밤으로 나뉜다.
첫 번째 밤은 무섭고 낯설며 어두웠다.
두 번째 밤은 반짝였고 조용하면서도 감동적이었다.
그 두 밤 사이에서, 나는 내 삶이 이전과는 달라졌다는 것을 서서히, 아주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