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 우리 집이 생겼다

익숙한 낯섦

인트로.png


고모 부부의 집에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기억으로는 일주일 정도였던 것 같다. 아빠는 우리보다 몇 개월 먼저 미국에 들어와 일을 시작했고, 덕분에 우리 가족이 지낼 첫 집도 미리 구해두었다. 고모 집에서 멀지 않은 같은 동네에 위치해 있었다. 몇 블록만 걸으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공교롭게도 우리가 살게 된 아파트도 고모네와 똑같이 6층짜리였고, 층수마저 동일하게 5층이었다.


아파트 정문을 열고 들어서면 긴 복도가 펼쳐졌다. 그 끝에는 낡고 오래된 엘리베이터가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이제는 왠지 익숙해진 느낌이다.


이 엘리베이터는 이중문 구조였다. 안쪽 자동문이 열리면 바깥쪽 철문을 다시 손으로 열어야 했고,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며 느리게 올라갔다. 그 속도가 때때로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우리 집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한 번은 그 낡은 엘리베이터가 우리를 가둔 적이 있었다. 그날, 나와 동생은 함께 타고 올라가고 있었는데, 4층과 5층 사이에서 갑자기 멈춰 버렸다. 그 안에서 우리는 당황하며 Help me!라는 말만 반복해서 소리쳤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누군가 우리의 소리를 들었는지, 아니면 정말 아무도 없었던 것인지, 끝내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결국 우리는 맨손으로 그 무거운 문을 밀어 옆으로 열었다. 다행히 문이 열렸고, 우리는 가까스로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지금도 동생과 그 일을 떠올리면 웃기고도 어이없는 기억이 된다. 어린 우리에게는 작은 탈출극 같은 사건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집에는 가구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공간이 낯설지 않았다.


“여기가 이제 우리 집이야.”


그 사실 하나만으로 가슴이 묘하게 따뜻해졌다. 방 하나, 거실 하나, 작은 부엌, 그리고 욕실 하나. 작지도 크지도 않은 이 공간은 네 식구가 살아가기에는 충분했다.


미국 아파트에는 천장등이 없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밝히기 위해서는 스탠드 램프를 따로 켜야 했고, 그날 우리가 가진 유일한 램프 하나는 거실의 구석을 희미하게 비췄다. 밥솥 하나, 식기 몇 개, 이불 몇 채, 그리고 그 램프. 그것이 우리가 가진 전부였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거실에 이불을 펴고 네 식구가 나란히 누웠다. 작은 거실이 우리만의 캠핑장이 되었고, 불안보다 더 큰 것은…

이상하게도 설렘이었다.


집 근처의 풍경은 지금도 또렷하게 떠오른다. 아파트 문을 나서자마자 바로 옆에 작은 한국 마트가 있었다. 규모는 작았지만 필요한 물건은 모두 갖추고 있었다. 엄마는 그곳에서 김, 라면, 고추장 같은 생필품을 구입했고, 덕분에 낯선 미국에서도 밥상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마트 건너편에는 피자집이 하나 있었다. 고소하고 짭짤한 치즈 냄새가 항상 퍼져 있었고, 우리는 곧 그곳의 단골이 되었다. 그 피자의 맛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뜨거운 피자 한 조각을 종이접시에 받아 들고 동생과 함께 앉아 먹던 장면이 어린 시절의 미국 일상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우리 집도 변화했다. 하루하루 가구가 늘어갔다.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매트리스였다. 처음에는 거실에 매트리스를 두 개 나란히 놓고 온 가족이 함께 잠들었다. 가구가 늘어나는 속도는 느렸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 삶은 분명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우리가 살던 아파트에는 비상계단이 있었다. 빨간색 철제 구조물로, 창문을 통해 나가면 바로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 계단이 마치 발코니처럼 느껴져 자주 나가 앉곤 했다. 특히 눈이 내리던 날에는 쌓인 눈으로 작은 눈사람을 만들기도 했고, 어느 날은 엄마가 좁쌀과 쌀을 통에 담아 놓으면 새들이 찾아오기도 했다. 그 순간들 덕분에 그 비상계단은 단순한 피난 통로가 아닌 우리만의 작은 아지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정착이 항상 따뜻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우리 바로 아래층에는 백발의 할머니 자매가 살고 있었다. 우리는 어렸고, 체력이 넘쳤다. 조금만 뛰거나 웃어도 천장 아래서 쿵쿵쿵! 막대기로 천장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 번은 할머니 한 분이 올라오셨다. 그리고는 조용히, 그러나 무섭게 말씀하셨다.

“또 시끄럽게 하면 경찰을 부를 거예요.”

그 말은 어린 나에게 큰 공포로 다가왔다. 나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경찰이 나를 데려가려는 걸까? 아빠는 그날 사과를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웃으며 문을 두드렸고, 정중하게 인사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 일은 마음 한 켠에 오래 남아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그 할머니들과 마주칠 때마다 그들의 눈빛은 차갑고, 말없이 무거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들이 단순히 예민한 노인이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조용한 인종차별의 시선을 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아파트의 첫 정문을 열고 들어서면 우편물 수령실이 있었다. 벽에는 각 호수마다 우편함이 정렬되어 있었고, 그 옆에는 방문객이 벨을 누를 수 있는 인터폰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 공간은 평소에는 조용하고 어두웠지만, 겨울이 다가오면 분위기가 달라졌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질 즈음, 누군가 그 공간에 커다란 트리를 설치하고 화려한 전구와 장식으로 꾸미곤 했다. 환하게 빛나는 그 트리는 낡고 차가운 아파트 복도를 잠시 동안 포근한 무대로 바꾸어 주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미국에서 '우리 집'**을 가지게 되었다. 그 집은 작고 낡았지만, 우리에게는 어떤 성보다도 더 단단한 공간이었다. 그곳에서의 밤은 어둡고 소란스러웠지만, 조금씩, 아주 조금씩 따뜻해지고 있었다.


우리집이 생겼다 일러스트.png
우리집이 생겼다 마지막장.png


작가의 이전글EP. 1 두 개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