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시대를 읽는 질문들: 철학이 남긴 유산과 공백

3장. 해석과 해체 사이에서

by FIPL

1. 볼트만의 비신화화와 해석의 자기 반복

신화화(mythologization)란 특정한 이야기가 마치 유일한 진실인 듯 굳어지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절대적 믿음으로 자리 잡게 되는 과정을 뜻한다. 고대의 사람들은 천둥이 칠 때마다 하늘의 신이 분노했다고 생각했고, 바람이 불 때마다 보이지 않는 영혼이 지나간다고 믿었다. 이처럼 신화는 본래 불확실하고 두려운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였다. 독일의 신학자 루돌프 볼트만(Rudolf Bultmann)은 이런 신화적 서술에서 벗어나 진정한 의미를 찾으려 했다. 그는 이를 '비신화화(demythologization)'라고 불렀다. 볼트만에게 비신화화란, 맹목적으로 믿어온 이야기의 외피를 걷어내고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실존적 고민과 의미를 밝혀내는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디지털 사회는 흥미롭게도 이와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오히려 더 많은 신화를 생산하고, 더 깊숙이 그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과거 신화가 종교나 초자연적인 이야기였다면, 지금은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데이터와 콘텐츠를 통해 일상의 평범한 이야기조차도 신화로 변모한다. 사용자는 특정한 이야기나 관점에 갇혀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인다. 이것이 현대적 의미에서의 ‘재신화화(re-mythologization)’ 현상이다.

이러한 재신화화는 알고리즘이 개인에게 제공하는 정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한 사람이 본래 정치적 성향이 뚜렷하지 않았다고 하자. 그는 어느 날 우연히 호기심에 이끌려 우파 성향의 뉴스를 클릭한다. 알고리즘은 즉각 이 클릭 하나를 단서로 삼아 그 사람의 관심을 읽고 비슷한 뉴스들을 계속해서 제공한다. 처음에는 우연이었으나 반복된 노출 속에서 그는 점차 특정 정치적 관점에 익숙해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관점을 절대적인 진실처럼 믿게 된다. 결국 그는 스스로 자신이 정치적 선택을 자유롭게 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알고리즘이 마련한 좁은 길 위에서만 움직이고 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은 정치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일상에서도 반복된다. 음악, 영화, 쇼핑에 이르기까지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한번 선택한 것을 기준으로 계속 비슷한 것만 추천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좁은 세계관 속에 갇히고 만다. 어느새 우리는 스스로 만든 신화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즉, 과거에 볼트만이 벗어나고자 했던 신화의 족쇄가 디지털 시대에 더욱 단단하게 우리를 감싸고 있는 셈이다.

이것이 디지털 시대에 벌어지는 '해석의 자기 반복' 현상이다. 사용자는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정보 속에서 계속해서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접하고, 결국은 그 좁은 이야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이처럼 같은 이야기를 계속 듣고 같은 생각만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스스로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잃게 된다. 사용자는 마치 자신이 무한한 정보를 가진 것처럼 착각하지만, 실상은 알고리즘의 좁은 틀 안에서만 계속 맴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볼트만이 말했던 '비신화화'의 정신을 다시 한번 되살리는 일이다. 오늘날의 비신화화는 우리가 믿는 이야기가 알고리즘에 의해 구성된 제한적이고 편향된 것임을 스스로 깨닫고, 그 너머의 진정한 의미와 가능성을 찾아나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갇혀 있는 정보의 틀을 인식하고 그 밖으로 걸어 나갈 수 있는 힘, 즉 독립적인 사고와 비판적 해석 능력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디지털 시대에 가장 중요한 과제다.

결국, 디지털 시대의 진정한 비신화화란 알고리즘이 제공한 좁고 제한된 정보 세계를 넘어서서 더욱 넓고 다양한 관점을 능동적으로 찾아 나서는 것을 의미한다. 사용자가 알고리즘에 의해 형성된 세계관에 갇히지 않고, 보다 넓은 시각과 비판적 사고를 유지할 때만 비로소 진정한 자유와 의미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볼트만이 꿈꾸었던 진정한 실존적 해방이며, 우리 시대가 풀어가야 할 새로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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