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시대를 읽는 질문들: 철학이 남긴 유산과 공백

3장. 해석과 해체 사이에서

by FIPL

2. 데이터 시대의 신화 재작성

앞서 볼트만은 신화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 ‘비신화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맹목적이고 절대적인 믿음에서 벗어나 인간 존재의 실존적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날 디지털 사회는 그와 정반대로 나아가고 있다. 이제는 신화를 벗겨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데이터를 통해 더욱 강력하고 집요하게 ‘재구성’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데이터 시대의 신화 재작성'이라고 부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데이터 시대의 신화 재작성’이란,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정보들이 빅데이터 분석과 알고리즘에 의해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반복되면서, 마치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사실인 것처럼 굳어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처음에는 단지 의견이나 해석의 하나였던 정보가 데이터의 반복적인 제공과 강조로 인해, 사용자에게 절대적 진리처럼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소셜미디어에서 발생하는 ‘가짜 뉴스’다. 예컨대, 한때 인터넷에서 급속도로 퍼졌던 “5G 전파가 코로나19를 유발한다”는 가짜 뉴스를 떠올려보자. 이 주장은 처음엔 근거가 빈약하고 과학적으로 전혀 입증되지 않은 음모론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특정 사용자가 이와 관련된 콘텐츠를 한번 클릭하거나 관심을 표하면,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관심을 즉시 인지하여 유사한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추천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사용자는 반복적으로 동일한 내용에 노출되면서 무의식적으로 이 주장을 하나의 진실로 믿게 된다. 처음에는 비합리적으로 느껴졌던 이야기도 알고리즘의 반복적인 제공을 통해 서서히 그럴듯한 이야기로 굳어져 결국 하나의 ‘디지털 신화’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단지 가짜 뉴스뿐 아니라 인터넷 밈(meme)이나 온라인에서 빠르게 전파되는 ‘디지털 전설’ 같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예컨대, "요즘 젊은 세대는 노력하지 않고, 쉽게 돈을 벌려고만 한다"는 주장이 처음엔 단지 농담조의 밈으로 유통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이 콘텐츠가 SNS에서 반복적으로 공유되고, 알고리즘이 사용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콘텐츠로 판단하여 더 많은 사람에게 추천하게 되면,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이 메시지에 노출되게 된다. 처음엔 별 의미 없이 가볍게 소비된 이 메시지는 반복 노출을 통해 마치 실제 현실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객관적인 사실인 것처럼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자리 잡는다.

결국 사람들은 실제로 청년 세대와 마주했을 때 이미 머릿속에 형성된 이 편견을 바탕으로 그들의 행동과 태도를 평가하게 된다. 예컨대 채용 과정에서 기업의 인사담당자는 자신도 모르게 젊은 지원자들을 성실하지 않거나 쉽게 포기할 사람으로 미리 판단할 수 있다. 부모나 교사들 역시 반복적으로 노출된 이런 밈을 통해 젊은 세대를 평가하고, 그들에게 실망하거나 비판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다. 이는 단순한 온라인 농담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실제 세대 간 갈등과 사회적 편견으로 이어지는 심각한 사회적 결과로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특정 이미지나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강조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것을 현실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판단과 행동에 무의식적으로 반영하게 된다. 따라서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이러한 반복적 노출과 강조가 결국은 사람들의 세계관과 가치관에까지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사용자가 실제로 해석과 판단을 수행하는 주체는 맞지만, 그 해석의 ‘재료’와 ‘구조’를 제공하는 주체가 바로 데이터와 알고리즘이라는 것이다. 사용자는 자신이 스스로 독립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알고리즘이 미리 정해둔 정보와 해석의 틀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현상은 볼트만이 비판했던 과거의 신화적 믿음과 근본적으로 동일한 문제를 지니고 있다. 과거의 신화가 인간의 상상력과 두려움에서 비롯된 이야기였다면, 오늘날의 신화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의해 구조적으로 만들어지고 재생산되는 것이다. 그 결과 사용자는 점점 더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편협한 세계관에 갇히게 된다. 따라서 데이터 시대의 신화는 비신화화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해체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기존의 ‘신념 기반 윤리(belief-based ethics)’는 작동하기 어려워진다. 전통적으로 윤리는 개인이 독립적으로 사고하여 신념을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판단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데이터 시대에는 개인이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과정 자체가 이미 데이터의 반복적 제공과 알고리즘의 편향적 추천으로 심각하게 제한된다. 따라서 데이터 시대에 적합한 윤리는 더 이상 단순히 개인의 판단과 신념에만 의존할 수 없다. 오히려 데이터를 다루는 방식, 알고리즘 설계의 윤리성, 그리고 그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감독하는 사회적 제도 같은 구조적 요소까지 함께 고려되어야만 한다.

결국 데이터 시대의 신화 재작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용자 스스로가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정보와 자신의 사고 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벽’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벽을 넘어설 수 있도록 데이터의 편향성을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알고리즘을 투명하게 운영하며, 균형 잡힌 정보 제공이 가능하도록 사회적 제도를 설계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볼트만이 말했던 비신화화의 정신을 디지털 시대에 다시 한번 구현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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