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기술사회와 인간의 조건
1. 기술은 인간을 확장시키는가, 축소시키는가
기술이 인간에게 처음으로 다가왔을 때, 그것은 희망이었다. 인류 최초로 불을 다룬 어느 먼 과거의 밤, 흔들리는 불꽃 앞에서 우리의 조상은 신의 권능과도 같은 새로운 힘을 발견했을 것이다. 어둠이 지배하던 숲에서 불길은 안전과 온기, 그리고 끝없는 가능성으로 보였을 터다. 그렇게 기술은 인간에게 끊임없이 손을 내밀었고, 인간은 기꺼이 그 손을 잡았다. 불에서 도구로, 도구에서 기계로, 기계에서 다시 네트워크로 이어진 그 길 위에서, 우리는 기술을 통해 끊임없이 우리 자신의 존재를 바깥으로 확장시켜 왔다.
하지만 기술이 우리를 확장시키는 만큼, 또 다른 어둠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확장은 곧 축소라는 역설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차가운 화면 위에서 우리 손끝은 무한히 펼쳐진 가상세계의 가장자리까지 닿을 수 있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는 불과 몇 인치의 화면 안에 갇히고 만다. 이 작은 세계의 안쪽에서 우리의 모든 선택과 생각은 데이터로 번역되고, 알고리즘이라는 투명한 감옥 속에서 다시 우리 자신에게 돌아온다. 결국 우리의 자유는 점점 기술이 허락한 만큼만 허용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것은 어쩌면 인간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기술이란 본래 그렇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도구가 우리의 손을 떠나 독자적 생명을 얻는 순간, 그것은 단지 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힘으로 변모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엘륄(Jacques Ellul)은 기술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을 가진 구조’로 묘사한 바 있다. 기술의 논리는 효율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스스로 진화하며, 인간은 이 효율성이라는 불가항력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휩쓸려 가게 된다. 오늘날 플랫폼 경제의 알고리즘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세상은 정확히 이 원리로 작동한다. 이 구조 안에서는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거나 꿈꾸는 삶이 아니라, 우리가 과거에 원했던 것과 비슷한 삶만이 반복적으로 제시된다.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기술이 인간을 확장시키는가, 축소시키는가. 하지만 이 질문은 단순히 확장과 축소라는 대립 구도로는 답할 수 없다. 왜냐하면, 기술은 확장과 축소를 동시에 수행하기 때문이다. 더 먼 곳까지 손을 뻗을 수 있게 만드는 동시에 우리의 손을 잡아두고,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해주면서도 우리가 보는 세계를 좁게 만드는 것이 기술의 이중성이다. 우리의 욕망을 읽고 원하는 바를 알아맞히면서도, 그 욕망을 스스로 창조하고 통제하는 아이러니한 존재가 바로 기술이다.
결국 기술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설계하고 다루느냐에 따라 우리 자신을 확장하거나 축소하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단지 기술을 사용하는 존재에서, 기술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 더 나아가 기술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존재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우리의 삶과 선택은 이제 기술이 미리 정해놓은 길을 따라 걷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설계 단계에서부터 우리의 욕망과 윤리를 함께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 책에서 제안하는 ‘조화 균형(Harmonized Equilibrium)’의 출발점이다.
인류가 불을 처음 손에 쥐었던 그 순간처럼, 이제 우리는 다시 한번 새로운 기술을 손에 쥐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불이 우리의 눈을 멀게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 따스하고 위태로운 불꽃이 어둠을 밝히는 희망의 등불로 남아 있을지, 아니면 우리의 시야를 좁히는 빛나는 감옥으로 변해버릴지는 오직 우리의 손길과 설계에 달려 있다. 기술은 우리가 창조한 것이지만, 결국 기술이 우리를 창조한다는 역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다시 한번 진정한 인간의 조건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