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기술사회와 인간의 조건
2. 기술 시스템의 자율화와 비가시적 통제
인간은 언제나 기술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어 왔다. 그것은 기술이 인간의 손끝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며, 도구는 늘 창조자의 통제 아래 있다는 익숙한 믿음에서 비롯된 확신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인공지능, 특히 딥러닝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기술과 마주한 순간부터, 이 믿음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채 스스로 학습하고 진화하는 기술 앞에서 우리는 당혹감을 느낀다. 처음으로,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낸 기술의 행동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게 되었다.
딥러닝은 데이터라는 원료를 먹고 자란다. 우리가 매일 무심코 클릭하고 검색하는 수많은 행동의 흔적은 조용히 데이터베이스 안으로 흘러 들어가, 하나의 거대한 학습장치 안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이렇게 축적된 데이터로부터 인공지능은 인간이 미처 보지 못했던 규칙과 패턴을 스스로 찾아내며, 자신만의 내적 논리를 만들어낸다. 인간의 명시적인 지시 없이도 최적화 목표를 향해 진화하는 이 시스템은 어느새 하나의 자율적인 생명체처럼 행동한다. 마치 자연에서 생물이 진화하듯, 알고리즘은 스스로 성장하고 변화하며, 그 누구도 정확히 예측하지 못했던 형태와 행동양식을 갖게 된다.
이 자율성은 기술을 단순한 도구에서 ‘자기완결적 구조(self-contained structure)’로 변모시킨다. 도구는 사용하는 자의 의도를 수행하지만, 자기완결적 구조는 그 자체의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 더 이상 인간은 기술을 통제하는 주체가 아니라, 기술이 제공하는 가능성의 공간 안에서만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로 축소된다. 즉, 기술의 논리가 미리 설정한 공간과 규칙 안에서 인간의 행동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 과정은 눈에 보이지 않게, 아주 부드럽고 교묘하게 이루어진다.
플랫폼 인터페이스에서 사용자에게 주어지는 수많은 선택지는 실제로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다양한 길이 펼쳐진 숲속의 오솔길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이 모든 길들은 이미 하나의 목표점으로 수렴하는 좁은 통로일 뿐이다. 클릭과 좋아요, 구매와 공유 같은 사소한 결정조차 알고리즘의 ‘최적화 함수’가 미리 정해놓은 시나리오의 일부이며, 사용자는 그 시나리오 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선택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술이 허락한 만큼의 작은 자유만을 누릴 뿐이다.
이는 마치 어느 마술사의 손에서 이루어지는 환상과 같다. 우리는 그 마술이 환상이라는 사실을 머릿속으로는 이해하지만, 그 환상을 눈으로 보고 있는 순간에는 그것을 현실처럼 믿는다. 알고리즘의 비가시적 통제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가 화면 위에서 만나는 개인화된 추천과 맞춤형 광고는 친절하고 다정하게 우리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서는 우리의 행동을 예측하고, 우리가 나아갈 길을 미리 설계한 보이지 않는 힘이 작동하고 있다. 통제는 강압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부드럽고 매혹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더욱 발견하기 어렵다.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기술을 “세계 내 존재를 조직하는 근본적인 틀(Gestell)”이라 표현했다. 기술이 우리의 삶을 정돈하고 통제하는 프레임이 되어, 우리가 보는 것, 느끼는 것, 선택할 수 있는 것까지 결정한다는 것이다. 딥러닝 기반 시스템이 만든 자율화된 구조는 하이데거가 묘사한 ‘근본적인 틀’을 더욱 심화시킨다. 인간은 점점 더 구조 속에서 허용된 범위 내에서만 의미를 찾고 선택을 수행하게 된다.
이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기술이 스스로를 진화시키고 우리의 선택을 미세하게 통제하는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자유와 통제 사이의 조화로운 균형을 되찾을 수 있을까? 어떻게 기술이 인간을 위한 구조로 설계될 수 있을까? 이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이며, 이 책이 제안하는 ‘조화 균형(Harmonized Equilibrium)’의 중요한 목표이기도 하다.결국, 기술의 자율화가 불러오는 비가시적 통제를 직시하고, 이를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다시 탐구하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기술이 만든 구조 안에 갇힌 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구조를 다시 인간 중심으로 재설계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