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기술사회와 인간의 조건
3. 자크 엘륄의 기술결정론 재해석
프랑스의 사상가 자크 엘륄(Jacques Ellul)은 기술이 본래 인간이 의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우리 삶의 중심부를 차지하게 되리라고 일찍이 경고했다. 엘륄은 기술을 단지 편리한 도구나 수단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에게 기술이란 효율성이라는 논리에 의해 스스로를 끝없이 진화시키는 하나의 독립적 총체였다. 즉, 기술은 가치 중립적이거나 인간의 선한 의도에 따라 움직이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의 목적을 가지고 인간과 사회를 재구성하는 적극적인 힘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엘륄은 기술의 가장 큰 특징을 '효율성(logic of efficiency)'이라 불렀다. 기술은 언제나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결과를 얻고자 하는 하나의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발전한다. 이 효율성은 기술적 진보의 원동력이 되지만, 동시에 모든 인간 활동을 그 효율성이라는 유일한 기준 아래 놓이게 한다. 엘륄의 예언은 현대 플랫폼 경제 속에서 선명하게 실현되고 있다. 오늘날 데이터는 마치 호흡처럼 우리 생활의 곳곳에서 끊임없이 생성되고 수집되며, 그것을 분석하는 알고리즘은 효율성이라는 절대적 기준 아래에서 작동한다. 데이터의 수집에서 분석, 그리고 실행으로 이어지는 이 끊임없는 순환 구조는 하나의 독립적인 생태계를 형성하며, 인간의 개입 없이 자율적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작동하는 알고리즘은 단 하나의 목표, 즉 효율성의 극대화만을 추구한다. 이는 곧 기술이 사회·문화적 맥락과 가치적 판단을 점차 우선순위에서 배제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예컨대 알고리즘은 우리가 무엇을 좋아할지, 어떤 콘텐츠를 소비할지 결정할 때 우리의 문화적 맥락이나 도덕적 기준이 아니라 오로지 클릭 수와 조회 수, 즉 효율성에 따라 판단한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은 효율성이라는 좁은 창문을 통해 본 세상으로 제한되고, 다른 모든 가치들은 배제된 채 조용히 잊힌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기술은 더 이상 사회의 외부에서 인간의 삶을 돕는 수단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기술은 어느새 인간과 사회 그 자체를 구성하는 구조로 자리 잡았다. 기술적 구조는 단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돕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규정하는 규칙이 되었다. 우리의 관계와 소통 방식, 노동과 소비 습관, 심지어 우리의 생각과 감정까지 기술적 구조의 틀 속에서 재구성된다. 이제 인간은 기술이라는 보이지 않는 건축물 안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 구조는 은밀하지만 압도적이다. 마치 우리가 숨 쉬는 공기처럼, 기술은 우리 삶의 모든 구석에 스며들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에게 새로운 사고와 행동 양식을 부여한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알고리즘이 미리 계산하고 설계한 효율성의 틀 안에서만 움직이고 있다. 이렇게 엘륄의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기술은 더 이상 인간의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 자체를 규정하는 구조가 되었다는 명제는, 더 이상 미래에 대한 상상이 아니라 이미 현실이다.
하지만 엘륄의 통찰을 단지 비관적인 기술결정론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이 구조를 다시 인간 중심으로 재설계할 가능성 또한 가지고 있다. 기술의 효율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다시 담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효율성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하지 않고, 형평성과 자율성이라는 가치도 함께 고려할 때, 비로소 기술은 인간과 진정으로 조화로운 균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엘륄의 기술결정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 책의 출발점이자 궁극적 목표이다.
결국, 엘륄의 경고는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과제가 된다. 기술의 구조 속에서 어떻게 인간적 가치와 윤리를 다시 확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할 때, 우리는 기술이 만들어낸 구조 안에서 길을 잃지 않고, 오히려 그 구조를 다시 인간 중심으로 변화시킬 힘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