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시대를 읽는 질문들: 철학이 남긴 유산과 공백

2장. 실존은 자유인가, 구조인가

by FIPL

1.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와 주체성의 한계

어느 조용한 카페에서 한 남자가 커피를 홀짝이며 무심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손가락 끝이 화면 위를 서성이다 잠시 망설이고, 곧이어 한 영상을 클릭한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무언가를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는다. “나는 이 영상을 선택했다. 이 선택은 내 취향이고 내 의지다.” 그러나 그의 등 뒤로 보이지 않는 존재가 웃음을 흘리고 있다. 그는 자신이 주체라고 굳게 믿지만, 사실은 그 손가락의 움직임 하나까지도 미리 결정된 무대 위의 움직임이었다.

이 장면은 마치 사르트르(Jean-Paul Sartre)가 상상했던 지옥 속 인물들의 비극적 선택을 연상시킨다. 사르트르는 인간의 삶이란 정해진 본질이 없는 순수한 자유로부터 출발한다고 선언했다.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L’existence précède l’essence).” 이 말은 인간은 태어날 때 정해진 목적이나 의미가 없으며, 오직 스스로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형성해야 한다는 뜻이다. 자유란 인간에게 축복이 아니라 무거운 책임이다. 내가 어떤 삶을 살지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나 자신이며, 그 책임 또한 오로지 나에게만 돌아온다. 인간은 철저하게, 무한하게 자유롭다—사르트르의 외침은 이토록 단호했다.

그러나 오늘날 플랫폼이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인간은 더 이상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적 자유를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화면을 들여다보는 우리는 자신이 무언가를 능동적으로 선택한다고 착각하지만, 실상 우리가 보는 영상이나 콘텐츠는 개인의 취향을 면밀히 예측하고 조작한 알고리즘이 미리 배치해놓은 것이다. 사용자가 이전에 클릭한 영상의 기록과 패턴, 좋아요 버튼을 누른 순간의 미세한 움직임, 화면 위에 머물렀던 그 찰나의 지연된 시간—이 모든 것이 데이터가 되어 시스템에 저장되고 분석된다. 그 결과, 다음에 보여줄 콘텐츠가 이미 결정된다. 우리는 선택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선택된 결과를 승인할 뿐이다.

이제 우리는 사르트르가 선언했던 자유가 플랫폼의 알고리즘 앞에서 무너지는 것을 목격한다. 자유로운 주체로서의 인간이라는 개념은 더 이상 순수할 수 없다. 알고리즘은 개인의 내밀한 욕망과 취향을 너무도 정확히 예측하고 통제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 우리가 보는 영화, 우리가 읽는 책까지도 미리 계산된 개인 맞춤형 목록에 따라 움직인다. 실존적 자유라는 아름다운 선언은 이 데이터의 바다 위에서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배처럼 위태롭다.

그러므로 현대의 플랫폼 시대는 사르트르가 제시한 자유의 개념이 본질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음을 드러낸다. 사르트르는 인간의 삶을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공백 위에 그린 그림이라 보았지만, 현대인은 이미 그림이 절반쯤 그려진 상태에서 붓을 쥐어야 하는 처지다. 우리가 그리는 선 하나조차 미리 정해진 윤곽선 위에서만 움직일 수 있다. 자유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 자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의 제한 안에서만 허용된다. 우리는 자유를 누린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이미 설계된 자유의 범위 내에서만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구조 속에서 여전히 실존주의적 주체로 남을 수 있는가? 진정한 자유를 다시 되찾을 수 있는가?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자유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는 것이다. 더 이상 자유를 외부의 모든 조건에서 벗어난 무한한 가능성으로 보는 대신, 이제 우리는 자유가 항상 어떤 조건과 맥락 속에서 작동함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 제한된 자유의 구조를 보다 인간적이고 윤리적으로 설계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

사르트르의 자유는 여전히 아름답지만, 그것은 이제 불완전한 아름다움이다. 플랫폼과 알고리즘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자유는 그 자체로 완결된 존재가 아니라, 언제나 구조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자유가 구조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이 곧 자유를 되찾는 길이다.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사르트르로부터 배우고 재해석해야 할 자유의 진정한 의미다.

다시 카페의 남자로 돌아가 보자. 그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창밖을 응시한다. 화면 위의 알고리즘이 그에게 줄 수 없는 것, 계산되지 않은 우연한 바람과 햇살,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작위한 웃음과 시선이 그를 잠시 자유롭게 한다. 바로 그 순간, 그는 어쩌면 사르트르의 자유에 가장 가까이 가 있는지도 모른다. 자유란, 바로 그렇게 구조의 틈새에서, 알고리즘이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만 문득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순간을 포착하고, 그 순간을 늘리는 것이 우리의 새로운 실존적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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