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시대를 읽는 질문들: 철학이 남긴 유산과 공백

2장. 실존은 자유인가, 구조인가

by FIPL

2. 알고리즘 기반 경제 시스템 하에서의 선택

알고리즘 기반 경제 시스템은 개인이 행사하는 선택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한다. 과거 인간의 선택은 정보의 부족과 불확실성이라는 한계 속에서 이루어졌고, 그로 인해 선택이 곧 주체의 실존적 자유를 상징했다. 그러나 빅데이터와 머신러닝 기술의 등장으로 선택의 성격은 급격히 변화하였다. 이제 개인은 더 이상 선택을 무한히 열린 가능성 속에서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제한적으로 제공한 옵션 세트 내에서 이루어진다.

알고리즘이 작동하는 방식은 명확하다. 먼저 사용자의 과거 행동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유사한 행동 패턴을 가진 다른 사용자들의 데이터와 결합하여 집단적 통계로 환원한다. 이후 알고리즘은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특정 사용자의 미래 행동을 확률적으로 예측하고, 그 예측에 부합하는 콘텐츠나 제품 등을 미리 배열하여 사용자에게 제시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용자는 자신이 고유하고 자율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미리 예측된 범위 안에서만 선택을 수행하는 것이다. 즉, 사용자의 자유 의지는 실질적으로 알고리즘이 설계한 구조적 경로 위에서 제한된다.

이는 사르트르가 주장했던 실존주의적 자유와 명백히 충돌한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자유로운 존재이며, 어떠한 외부적 구조나 본질도 인간의 자유와 책임에 선행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대의 알고리즘 경제 체제 하에서는 이와 같은 자유의 개념이 약화된다. 개인의 선택이 자신의 내적 결정에 따른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에 의해 사전 설계된 예측적 옵션에 불과하다면, 이는 더 이상 진정한 자유라고 보기 어렵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예측된 자유(predicted freedom)’라 명명할 수 있다. 예측된 자유란, 선택의 범위가 외부의 알고리즘에 의해 이미 정해진 상태에서 사용자가 그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결정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취향과 관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효율적인 최적화를 수행하지만, 동시에 사용자의 사고와 행동의 폭을 점점 더 좁히고, 편협한 방향으로 고착화할 위험을 내포한다.

알고리즘 기반 경제 시스템에서 문제는 이와 같은 구조적 제약이 거의 인지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용자는 자신이 완전히 자율적이고 자유로운 선택을 한다고 느끼지만, 사실상 시스템의 비가시적인 제약 속에서만 움직이는 것이다. 사용자 자신이 선택의 제한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구조의 존재 자체를 자각하지 못할 때, 실존적 자유라는 개념은 심각하게 손상된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용자가 알고리즘의 구조적 제약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사용자는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선택이 제한적이고 예측된 범위라는 사실을 깨닫고, 구조적 제약을 넘어설 수 있는 비판적 사고와 의식적 결정을 수행해야 한다. 나아가 알고리즘의 설계 단계에서부터 사용자의 자율적 선택과 자유의 범위를 확대할 수 있도록 투명성과 개방성을 강화하는 윤리적 기술 설계가 필요하다.

결국, 알고리즘 기반 경제 시스템 하에서의 선택 문제는 자유와 구조 사이의 균형을 다시 고민하도록 요청한다. 기술이 구조적으로 인간의 선택을 제한하는 현실을 인정한 채로, 그 제한성을 어떻게 최소화하고 실질적 자유의 범위를 넓힐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현대의 윤리적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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