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자주 느낀다. 좋은 와인을 마시기에도 생은 너무 짧다는 것을.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은 그 짧은 생에 더 많은 것을 쑤셔 넣으려 한다.
SNS는 나에게 끝없이 보여준다 — 누군가의 좋은 와인, 완벽한 일상, 잘 다듬어진 문장과 얼굴.
그 모든 ‘좋음’의 폭격 속에서, 나는 점점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게 된다.
이건 단순한 피로가 아니다.
이건 과잉의 피로, 즉 ‘너무 많은 좋음’이 만들어낸 감각의 마비다.
좋은 것도 싫고, 나쁜 것도 싫다.
심지어 ‘좋아보이는 것’조차 피로하다.
아마 이 지점에서, 인간은 다시 한 번 절제의 철학으로 돌아가야 한다.
1. 과잉의 미학과 감각의 소진
과거의 인간은 부족함 속에서 의미를 찾았다.
그러나 현대의 인간은 넘침 속에서 방향을 잃는다.
SNS는 매 순간 ‘좋은 것’을 업데이트하고,
그 결과 우리의 감각은 점점 더 자극에 둔감해진다.
이건 일종의 감각적 인플레이션이다.
좋은 것이 너무 많으면, 그중 어떤 것도 더 이상 좋지 않게 느껴진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의 감각을 잃어버린다.
2. 유럽의 히피들이 선택했던 탈출
1960~70년대 유럽과 미국의 젊은 세대가 산업사회에서 등을 돌린 것도 같은 이유였다. 산업화와 소비문화가 극에 달하면서 젊은 세대가 “너무 많은 것”에 질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풍요 속에서 오히려 공허함과 피로를 느꼈고, 그 반작용으로 “소유보다 존재”, “속도보다 경험”을 택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났고, 공동체를 만들고, 음악과 예술로 자신을 회복하려 했다.
너무 빠르고, 너무 많은 세상 속에서 그들은 “다른 길”을 원했다.
그들은 도시를 떠나 자연으로 갔다.
그들은 ‘갖기’보다 ‘느끼기’를, ‘속도’보다 ‘멈춤’을 선택했다.
히피의 여행은 방황이 아니라 회복의 여행이었다.
소유의 피로에서 벗어나, 다시 존재로 돌아가려는 시도였다.
지금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내면의 여행’이 필요하다.
다만 그 여정은 유럽의 시골이 아니라,
디지털의 파도 속에서 자기 자신으로 향해야 한다.
3. 정보 금식(Information Fasting)의 윤리
이제 우리는 정보와 감정의 절식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배고파서가 아니라, 너무 배불러서 굶어야 하는 시대.
‘좋은 정보’를 소비하는 일조차 때로는 감정의 독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
무엇을 보지 않을 것인가, 무엇을 느끼지 않을 것인가.
이건 회피가 아니라 감각의 재정립이다.
절제는 금욕이 아니라, 다시 느끼기 위한 준비다.
4. 과유불급
“과유불급”은 옛말 같지만, 지금만큼 절실한 시대가 없다.
우리는 더 많이 알수록 덜 느끼고, 더 많이 볼수록 덜 감동한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좋은 것’이 아니라 ‘덜 좋은 것의 회복’이다.
좋은 와인을 천천히 음미하듯,
하루의 한 장면을 천천히 바라볼 수 있는 감각.
그게 다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