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말에 첫 번째 시집을 냈다. 아직 서류상으로 대학생이었을 시점이다. 그 사이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했고, 사무실에 내 이름으로 된 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막내는 우리 곁을 떠났다. 1년이 조금 안 되는 기간 사이 많은 것이 바뀌었다.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최근 두 번째 시집을 완성할 수 있었다. 출간 과정에서 부침이 많아 힘들었지만, 그래도 무광으로 코팅된 표면을 만져보니 실감이 난다.
예전에는 펜으로 시를 썼다. 그래서 첫 시집에 실린 작품은 일기장에 있던 것들이 많다. “나는 오늘도/물결치는 하늘을 가로질러/너에게로 간다//”라는 문장으로 끝나는「항해」는 스무 살 무렵 사용했던 초록색 일기장 한켠에 적어두었던 것이다. 그중에 「과연 그럴까?」나 「게릴라」 같은 이미지시도 많이 있다. 「게릴라」는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작품이다. 무거운 군화 소리를 ‘□■□■’의 반복으로 표현했는데, 워드 파일로 변환하려니 원래 의도했던 느낌이 살지 않아서 결국 싣지 못했다. 지금도 여전히 펜을 쓰지만, 타이핑을 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디어를 잊어버리기 전에 빨리 쓸 수 있고 편집하기도 쉬워서다. 그렇게 브런치 앱에 저장해 둔 글이 이만큼 있다. 쓰다가 잊어버리고 영원히 묻혀 있는 것도 그만큼 있다는 게 문제지만.
즉흥적으로 장면에서 장면으로 흘러가며 쓰는 사람을 ‘팬서(Pantser)’라고 하고, 미리 구조와 줄거리를 설계해놓고 쓰는 사람을 ‘플롯서(Plotter)’라고 부른다. 나는 전자에 가깝다. 한 페이지를 쓰고, 그 다음 페이지를 쓴다. 결국 디테일과 흐름 중에 어떤 것을 고르느냐의 문제인데, 미리 많은 것을 정해두고 쓰면 틀에 박힌 글이 나오기 쉽기 때문이다. 좀 어설픈 구석이 있어도 앉은 자리에서 한번에 쭉 쓰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그런 점에서 쌍계사 삼성각에서 쓴「산신각 도랑도랑」은 몇 없는 작품이다. 혼자 절 꼭대기 삼성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 보았을 때, 마고 할미와 할미를 태우고 다니는 호랑이의 시선으로 치성을 드리러 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시는 이렇게 진행된다. 어린애 하나가 높은 산을 오르는 모습을 호랑이가 본다. 아이는 섬돌에 앉아 그림을 한참 쳐다보다 내려간다. 호랑이가 소원을 이뤄주고 올까 물어보니, 할미가 그럴 필요 없다고 대답한다. 아이가 소원을 철회하고 자기 주변 사람들의 건강을 빌었기 때문이다. 물끄러미 불화를 응시하던 아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신데렐라를 꾸며주는 요정 할머니 같은 신이 있어서 그 마음을 알아주면 어떨까? 이게 「산신각 도랑도랑」의 출발점이었다.
두 번째 시집은 첫 번째보다 여러 면에서 나아졌다. 우선 2부로 간단하게 구성했다. 입에서 입을 거쳐 전해져 내려오는 오래된 이야기, 전설과 신화에 관한 것들을 앞에, 단절과 외로움이라는 현대적 이야기는 뒤에 배치했다. 그래서 부제가 설화와 신호다. 완성도도 전반적으로 낫다. 이전 경험 덕분에 어떤 것을 넣고 어떤 것을 뺄 지 결정하는 데에 시간을 덜 쓸 수 있었다. 여전히 아쉬운 점은 있지만 그래도 또 하나를 마무리했다는 게 어딘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