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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허영감 Dec 22. 2024

4. 은퇴하는 친구와 술자리를 하다

이제 은퇴 할 나이가 된 친구들

은퇴 (retire)

맡은 바 직책에서 손을 떼고 물러나서 한가로이 지냄


어제 이른 저녁인 오후 5시, 연말 은퇴하는 친구를 위한 조촐한 술자리가 있었다

친구는 30년을 넘게 고향을 대표하는 기업에서 일을 했고 평소에도 그 기업에서 생산한 제품만 찾는 애사심이 강한 사람이다. 어제의 술자리에서도 친구는 자사 제품만을 고집했다. "여기 처음처럼 2 병 주세요"


참석자 7명 모두 초등학교 동창생으로 정말 거의 60년 지기 친구들이다. 그중 식당을 하는 여자 친구가 턱을 내기로 해서 모인 자리였는데 본인 식당이 아닌 다른 식당으로 장소를 정했다. 이유인즉 "내 집에 먹으면 분위기가 안나잖아"


나는 작년에 1년 6개월 먼저 명예퇴직을 하였기에 우리 친구들은 올해부터 은퇴를 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은퇴를 하지 않은 친구들은 도대체 나이가,,,

이제는 친구가 아닌 동생으로 불러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우리 친구들은 정말 건강한 것 같다. 모태 비주류인 친구 1명을 빼고는 정말 술을 술술 잘 마신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자체가 그동안 잘 관리하고 절제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술 마시고 이야기할 수 있는 옛 친구들이 있다는 자체가 행복이고 그들과의 술자리처럼 부담 없는 자리가 또 있을까. 술자리 도중 얼마 전 받은 건강검진이 생각나 살짝 걱정하는 마음이 알코올과 함께 들어왔지만 나도 오랬만에 기분이 업되어 연실 술잔을 비웠다.

두주불사 하던 오늘의 주인공도 연일계속되는 이별의 술자리로 술잔을 나누어서 마시고 있었다. "은퇴한다고 다들 자리를 마련해서 요즘 거의 매일이야 어제도 만취했어" 하지만 친구야 많이 마셔두어라 한 달 뒤에는 아마 그리울지도 몰라.



헤어지기가 못내 아쉬운 친구들은 2차를 제안하고 자리를 옮겼다.

아쉽게도 나는 떡이 아닌 인간으로 귀가하고 싶어 살짝 도망을 선택했다



귀가는 어플로 카카오택시를 불렀다. 3분 만에 도착했고 어디 가자는 말도 필요 없고 요금도 바로 카드에서 결재가 되었다. 참 좋은 세상인데 활용할 줄 모르면 절대 누릴 수 없는 편리함 들이다. 나이 들어서도 배워야 됨을 몸소 체험하며 택시 안에서 잠시 우쭐한 마음에 기분이 좋아졌다.



9시 조금 넘어 집에 도착했다. 떡이 되지 않고 귀가함에 나 자신이 뿌듯함을 느끼며

당당하게 아내에게 귀가 신고를 했다. "나 많이 안 취했어, 친구들은 2차 갔는데 나만 도망 왔어" 너그러운 아내의 미소에 긴장이 풀어지며 술기운이 스르르 올라온다.

"고맙소 마님"


잠을 자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침대에 살짝 떡이 된 몸을 눕히고 습관적으로 유튜브를 틀어 놓았지만 술기운에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얼마를 잤을까 깨어보니 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아 아직도 오늘이네"


사실 우리 부부는 각방을 쓰고 있다. 아이들이 출가한 후부터 이니 5년도 넘었을 것이다. 그 당시 아내는 갱년기로 잠을 설치는 경우가 많았고 나 또한 소방관 생활에서 오는 불규칙한 수면패턴으로 인해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어서 그리 하게 된 것이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도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노년의 각방 생활 추천하고 싶다.


긴 밤이 지나고 7시 알람이 드디어 오늘이 왔음을 알린다. 잠을 못 자다가도 아침이 되면 깜빡 잠들어 일어나기 싫게 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내를 출근시키고 평소 같았으면 운동을 할 시간이지만 오늘은 일요일이고 술을 마신 관계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9시 개관할 때까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음악을 듣는 이 시간이 아마도 하루 중 제일 행복하고 편안한 시간인 것 같다.


은퇴 일기를 어떻게 써야 할까 막막했었는데 어떻게 어떻게 하다 보니

잘 써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하나 하나 완성이 되어 홀가분하다. 이제 집에 가서 홀로 먹는 점심이지만 맛난 김치찌개로 해장을 해야 할까 보다


옛날에는 일기장에 선생님이 "참 잘했어요" 하고 도장을 찍어 주신 것 같았는데 내 은퇴일기는 누가 도장을 찍어주나? "아 라이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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