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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치아 Sep 14. 2024

제목 장사

후배들에게 반복해 말하기 귀찮아서 정리해두는 책 : 기사 제목 쓰기

"기자님 제목만이라도 좀...."


날카로운 기사가 나갔을 때, 회사 홍보실에서는 기사 수정을 요청한다. 홍보실 직원의 핵심 역량 중 하나는 회사에 리스크가 큰 기사를 없애거나 수정해 내는 것이다. 그 한 장면을 위해 평소에 기자들과 밥도 먹고 술도 먹고, 칭찬도 하고, 때로는 강한 모습도 보이는 일련의 작업들을 해둔다. 


실제로 사람이기 때문에 이건 상당히 통한다. 평소에 돈독한 관계를 맺어 둔 홍보실이 있는 회사의 기사를 작성할 때에는 아무래도 '매운 맛 양념'이 덜 들어간다. 그렇다고 기자가 늘 갑은 절대 아니다. 홍보실에 요청할 것들이 많아서다. 여러 회사의 정보와, 인터뷰 등. 아무래도 친할 수록 말이 술술 나오니까. 


아무튼 내용도 아니고 제목만이라도 고쳐달라는 홍보실 직원의 모습만 봐도 제목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나 역시 제목이 마음에 들어야 본문으로 넘어가는 클릭이라는 수고를 한다. 이후 기사를 잃게 하는 건 '리드(기사의 첫 단락)'에 있지만 리드는 다음에 다루도록 해보겠다. 


개인적으로 제목을 쓸 때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제목을 잡아본다. 


질문 1. 독자들이 가장 관심 가질 사안이 뭐지?

질문 2. 주어와 술어만 표현해 드라이하게 쓸까, 재미있는 표현으로 시선을 집중시킬까

질문 3. 기사 속에 등장하는 당사자(개인 또는 기업)에게 미칠 여파는?

질문 4. 관심을 끌만한 단어 또는 표현에 뭐가 있을까.


이걸 실제에 대입해보기 위해 얼마 전 있었던 금융위원장의 브리핑을 소환해보겠다. 2024년 9월 현재, 은행권의 대출 조이기가 난리다. 은행 대출은 부동산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서 은행이 대출을 조이면 전세든 매매든 '내 집'부터 생각나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아무튼 그런 은행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곳이 금융 당국, 바로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다. 여기에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전 회장이 우리은행을 통해 친인척들에게 350억원을 부당하게 빌려준 일이 드러나면서 은행 신뢰도가 무너진 사태까지 터졌다. 티몬·위메프 결제지연 사태 수습도 금융위가 해야 할 사안이다.  


이처럼 이슈가 많은 때에 금융위원장이 브리핑을 열어, 이 모든 주제를 다 다뤘다. 제목은 한 줄밖에 쓸 수 없는데 그럼 뭘 제목으로 써야하나?


이때 앞서 말한 순서대로 답을 해보면 된다.


질문 1: 독자들이 가장 관심 가질 사안이 뭐지? 

-답변 : 일반 대중은 대출에 대한 관심이 가장 클 것이고, 업계에서는 우리금융에 대해 관심을 갖겠다.


질문 2. 주어와 술어만 표현해 드라이하게 쓸까, 재미있는 표현으로 시선을 집중시킬까

-답변: 금융위원장의 발언은 자체로 의미가 크니 쌍따옴표 안에 넣는 형식으로 하되, 흥미를 유발할 만한 단어를 쓰면 좋겠다.


질문 3. 기사 속에 등장하는 당사자(개인 또는 기업)에게 미칠 여파는?

-답변: 우리금융에 대한 내용을 너무 자극적으로 쓰면 괜한 반응이 나올 수 있으니 적당히 드라이하게 처리하자. 오늘은 연휴 전전날이다.


질문 4. 관심을 끌만한 단어 또는 표현에 뭐가 있을까.

-답변: 하지만 금융위원장이 쓴 표현 중 '환골탈태'라는 표현은 은행권에 대한 경각심도 환기하고, 실제로 그분의 강조한 바도 드러나는 표현인 것 같으니 써야겠다. 


개인적으로 제목을 잡고 리드를 작성하면 기사를 거의 다 썼다고 보는 편이다. 제목과 리드를 작성하고 나면 기사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바와 주요 내용이 대략 정리되기 때문이다.


간혹 수습기자들에게 기사쓰기를 가르치다 보면, 기사 내용이 정처 없이 중구난방으로 의식의 흐름대로 작성된 경우들이 있다. 그때 후배들에게 되묻는다. 


"도대체 야마(주제)가 뭐야?"


그런데 이 때, 십중팔구는 제목을 큰 고민 없이 작성해둔 경우가 많다. 제목을 멋있게 썼더라도 내용과 매치게 안 되게 썼거나. 제목과 내용이 맞지 않으면 '낚시 기사'를 만든 것과 다름 없다. 


하지만 스스로도 너무나 잘 안다. 좋은 제목을 쓰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것을. 그래서 언론사 기사의 컨트롤타워인 데스크(국장)에게 부여된 주요 권한 중 하나는 '제목 수정 권한'이다. 기자가 만들어 올린 제목과 내용, 특히 제목은 데스크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뀐다. 보통은 일반 기자들보다 연차 높은 데스크의 내공에서 우러 나와 지어 준 제목이 낫기 때문에 기자들은 수용하게 된다. 


기사 제목을 잘 잡으려면 결국 경험치다. 경험치는 많이 보는 데서 나온다. 기사 제목들을 주르륵 보면서, '이 단어를 쓰는구나' '이렇게 표현하는구나' '이거 재밌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제목을 발견하면 메모를 해 두는 것이 도움된다. '나만의 제목 노트'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딱 필요할 때 쓰면, 그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는 데서 오는 쾌감이 있다. 그리고 그 표현은 비로소 내 것이 된다.  


제목의 중요성은 기사글에서만 통하는 게 아니다. 100만 유튜버 신사임당의 유튜브 강의를 돈 내고 들은 적 있는데, 무엇보다 '썸네일'을 최우선으로 강조해, 수십시간의 강의 내용 중 썸네일 이야기만 기억에 남을 정도다. 물론 썸네일은 기사 제목과 달리 이미지 요소도 함께 어우러지는 기획이 요구되지만, 텍스트의 역할이 빠질 수 없다. 또 책을 고를 때에도 그렇다. 베스트셀러를 보기도 하고,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고르기도 하고, 추천받은 책을 고르기도 하지만, 그런 이유가 다 없을 때에는 수천권의 책 중 '제목'을 보고 마음에 들면 책을 짚는다.  


결국 제목은 장사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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