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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치우 Oct 15. 2023

[8/10] 미로, 스테레오그램, 직관

색맹


8. 색맹인 사람은 색맹이 아닌 사람의 시야를 이해하기 어렵다.

    

8.1. 반대로 색맹이 아닌 사람은 색맹인 사람의 시야를 이해하기 어렵다.

        

8.1.1. “당신에게 나뭇잎은 어떻게 보이나요?”, “초록색으로 보입니다”. 이와 같은 대화는 색맹인 사람에게 색맹이 아닌 사람의 시각을 결코 설명해주지 못한다. 색맹이 아닌 사람은 색맹인 사람에게 자신이 그것을 어떤 이름으로 부르는지만을 설명해줄 수 있다.

    

8.2. 다시 스테레오그램을 보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우리가 처음에 스테레오그램을 접할 때 우리는 그것을 유의미한 정보가 없는 소음으로 본다. 그러나 우리가 그 그림에서 무언가를 보아내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비우고 초점을 - 멍한 사람처럼 - 뒤에 맞추고 있으면 그 그림은 자신이 내포하고 있던 의미를 보여준다. 우리가 한 번 스테레오그램에 감추어져 있던 형태, 질서를 보고 나면 우리가 잠시 눈을 깜빡거린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어떻게 이것을 보지 못했는지 의문하게 될 정도로 숨겨진 질서는 자신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8.2.1. 스테레오그램을 보고 있는 사람은 스테레오그램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이해하기 어렵고, 스테레오그램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스테레오그램을 보고 있는 사람을 이해하기 어렵다.

            

8.2.1.1. “도대체 뭐가 보인다는건데?”

            

8.2.1.2. “이게 안보인다고?”

    

8.3. 직관하는 사람과 직관하지 못하는 사람간의 대화도 이와 같다(엄밀히 말해 직관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어떤 사람은 다른 어떤 사람에 비해 더 명료하게 직관한다).

        

8.3.1. 직관하는 사람은 직관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직관을 설명하기 어려워한다. 이것은 색맹이 아닌 사람이 색맹인 사람에게 자신이 보는 색을 설명하기 어렵고, 스테레오그램을 보는 사람이 스테레오그램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보는 질서를 설명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이다.

            

8.3.1.1. 우리는 색맹인 사람에게 초록색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위해서 <초록색>이라는 이름을 알려주고 무엇무엇이 초록색을 띄고 무엇무엇은 초록색을 띄지 않는지 열심히 설명한다. 색맹인 사람은 그와 같은 설명을 통해서 무엇무엇이 초록색이고 무엇무엇은 초록색이 아니며, 그렇기에 색맹이 아닌 사람과 대화할 때에는 이러저러한 용례에서 초록색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8.3.1.2.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색맹인 사람에게 초록색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8.3.2. 우리는 우리의 직관을 설명하기 위하여 - 이때의 설명에는 타인에게 설명하는 경우와 자신에게 설명하는 경우가 모두 포함되어 있으며, 우리의 직관을 우리 자신에게 설명하는 것은 검증 내지 검산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 논리를 사용한다. 보다 엄밀히 말해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범주, 언어, 개념을 사용한다.

            

8.3.2.1. 또한 우리는 여러가지 비유를 든다. 이 글에도 미로, 스테레오그램, 색맹과 같은 몇 가지 비유들이 포함되어 있다.

            

8.3.2.2. 그러나 그와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우리의 직관을 전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색을 보는 것, 스테레오그램을 보는 것, 직관하는 것은 모두 범주, 언어, 개념을 통해서는 전달되기 어려운 부분을 가지고 있다. 다만 우리는 최선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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