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야 나
"다음"
우렁찬 소리에 K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봤다.
양 끝이 뾰족한 선글라스에 잔머리 하나 용납하지 않는 올빽 스타일을 한 여자. 어디서 봤더라...
쓰앵님이랑 미란다가 섞였나...?
"이름 K. 본인 맞아?"
빨리 대답하라는 듯이 쏘아보는 눈빛에 K는 움찔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가 어디지?
K는 도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엄청나게 큰 책장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고, 그 벽장엔 무수히 많은 문서들이 정돈되지 않은 채 쌓여 있었다.
"너 영어 잘해?"
"음... 잘하는 건 아닌데... 못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중간이라는 거네"
뭐 하자는 거지? 혹시 면접장인가? 면접이면 저렇게 얘기하면 안 됐는데, 바보.
"그럼 노래는 좀 하니?"
"음... 잘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못 하지도 않아요"
"이것도 중간이고..."
"운동은? 너 인싸니? 뭐 잘하는 거 없어?"
수없이 쏟아지는 질문에 K는 솔직히 대답했다. 중간.
K의 대답은 전부 '중간'이었다.
이건 늘 K를 괴롭히던 콤플렉스 같은 것이었다.
넌 참 어중간해, 특별한 게 없잖아?
중간만을 타는 삶. 그게 K는 싫었다.
어릴 때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배웠던 운동들은 다 맛보기 정도만 하고 그만뒀다.
덕분에 스케이트를 탈 줄 알고 수영도 할 줄 알지만 그렇다고 잘한다 칭찬받을 정도는 아닌.
공부 좀 한다며 선생님들의 예쁨을 받긴 했다.
하지만 중고등학교 단 한 번도 전교 1등을 해 본 적은 없었다. 중간이라고 말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할지 모르겠지만 K에게 그건 '어중간'이었다.
때문에 K는 늘 특별함을 꿈꿨다.
특별히 잘하는 거, 특별히 튀는 거, 특별한 무언가.
"얘, 뭐 하니? 딴생각해? 집중, 집중!"
벼락같은 호통에 K는 휘휘 고개를 저어 여러 생각들을 떨어뜨렸다.
"그럼 평가를 내리겠어요. K, 종합 결과는... 중간"
역시, 어딘지도 모르는 이곳에서도 중간이다.
절로 고개가 푹 숙여졌다.
"가운데만 밟고 오느라 수고했어. 너 그것도 재능이다"
예상 밖의 대답에 숙여졌던 고개를 들어 K는 위를 바라봤다.
"그럼 다음 생으로 보내줄게. 다음 생에 넌 중간, 센터가 될 거야"
그녀의 말이 아득해지면서 K는 잠시 어지러움을 느껴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뜨자...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환한 불빛들,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
낯선 촉감에 아래를 내려보자 화려한 무대 의상을 입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한 K였다.
그러고 보니 정체 모를 그녀의 말이 아득해질 때, 어디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그렇게 중간 좋아하더니, 아이돌 센터로 다시 태어난다더라?"
그렇게 나는 아이돌 센터가 되었다.
-끝-
(어중간한 삶에 시무룩해하던 필자가 어느 날 꾼 꿈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