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실어 보내는 편지 10. Havana, Cuba.
안녕 자기야
나의 남편이자, 우리 딸의 아빠이자, 나의 여행 친구인 당신.
신혼여행으로 그리스 아테네, 산토리니, 터키 이스탄불 그리고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까지 3개국을 다녀온 걸 시작으로 이후 호주, 태국, 프랑스, 네덜란드를 함께 여행했지.
그리고 당신의 영국 런던 3개월 파견으로 나는 런던 곳곳을 여행할 기회를 누렸고
또 당신의 브라질 주재 발령으로 우리 함께 아르헨티나, 멕시코, 쿠바, 미국 그리고 브라질을 누비고 다녔지.
그런데 그 많은 여행 중에 특히 자기에게 미안했던 여행이 있어.
바로 쿠바 아바나 여행이야.
쿠바 여행은 준비 과정부터 쉽지 않았어. 비행기는 파나마 경유로 바로 예약할 수 있었는데 호텔이 문제였지. 평소 이용하던 호텔 예약 사이트 어디를 뒤져도 쿠바는 나오지 않았어. 검색에 검색을 거듭한 결과 캐나다 사이트를 하나 알게 되었고, 우리가 가려던 쿠바의 휴양지 ‘varadero(바라데로)’의 올 인클루시브 리조트를 예약할 수 있었지.
그런데 문제는 아바나였어. 한국인 여행자들의 리뷰를 아무리 찾아봐도 아바나에서 호텔에 머문 사람은 거의 없었거든. 대부분의 한국인 여행자들은 다 똑같은 이름의 casa(까자)를 추천했어. ‘H 아줌마네 까자’. 쿠바에선 게스트하우스를 ‘까자’라고 부르더라고. 그중 H 아줌마네 까자는 배낭여행자들의 성지 같은 곳이었어. 한국인 그리고 일본인 배낭여행자들이 그곳에서 많이 묵어서 그곳에 가면 온갖 여행 정보들이 넘쳐나는 그런 곳. 게다가 값도 엄청나게 쌌어. 그래서 쿠바니까, 나도 그런 곳에 가볼까 싶어서 찾아보았지. 그런데 그곳은 안타깝게도 도미토리룸 밖에 없었어.
우리는 아이까지 세 식구니까 도미토리에서 자긴 그래서 대안을 찾고 있는데, 사람들이 H 아줌마네 방이 없을 때 찾아간다는 Y아줌마네 까자가 있었지. 근데 그 Y아줌마네 까자가 사진을 보니까 너무 좋은 거야. (아 물론 가격 대비) 일단 10층 높이에 있어서 전망이 좋고, 무려 그 전망이 아바나의 까삐 똘리오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이었거든. 방도 깨끗해 보였고 무엇보다 2인실이 있었어. 우리 돈으로 삼만 원 정도에 그 정도 숙박이면 너무 괜찮아 보였지. 그래서 Y 아줌마에게 메일을 보냈어. 방이 있냐고. 그런데 우리가 비행기를 탈 때까지 아줌마는 메일 확인을 안 했지. 우리는 쿠바 아바나에 도착해서 2시간 거리 휴양지 바라데로에서 2박 3일 머물다가 왔고, 그때까지도 방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태였지. 그냥 무작정 그 까자를 찾아갔어. 예전에 인도 여행할 때랑 그다음 첫 유럽 여행 때를 제외하고 호텔을 예약하지 않고 여행을 떠난 건 참 오랜만이었어.
그만큼 불안감이 컸었지.
아줌마를 만나서 바로 말했어.
“메일 보냈는데 방 있나요?”
그러자 아줌마가 매일 봤다면서 방이 10층에 있다며, 그런데 오늘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다고 걸어 올라가야 한다고 했어. 일단 저렴한 그 방을 얻게 되어서 기뻤지만 10층까지 세 살 아기와 큰 여행용 가방을 들고 왔다 갔다 하는 게 가능할까? 게다가 유모차까지 있는데? 우리는 둘이 눈을 마주치며 고민을 했지.
그런데 워낙 방이 깨끗했던 걸 사진으로 봤던 터라, 또 다른 방을 찾으러 다닐 힘도 없고 해서 그냥 그 방으로 하기로 하고, 자기가 방에 짐을 올려놓고 오겠다며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들고 올라갔지. 그리고 숨을 헐떡이며 돌아온 자기가 말했지.
“방이 엉망인데?”
나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어. 자기는 얼굴이 영 안 좋았지. 방이 엄청나게 낡았고 안 좋다고. 지금 생각하면 그때 방 사진을 찾아서 보여 줬어야 했는데. 방 사진을 미리 확인한 건 나 혼자였고, 방을 직접 본 사람은 자기 혼자였으니 우리는 서로 본 방을 비교할 수가 없었지.
그래서 나는 그렇게 생각한 거야. 까자가 수준이 원래 높지 않은데 자기의 기대치가 높아서 안 좋아 보인 걸 거라고. 내가 블로그에서 본 방은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자기가 보기엔 그게 안 좋아 보일 수도 있다고. 아주머니가 엘리베이터가 없으니 원래 삼만 원인데 2만 5천 원에 해주겠다고 하셨지. 아 그때 깨달았어야 했는데…
그래서 우리는 잠깐 고민하다가 그곳에서 묵기로 하고 시내 구경에 나섰지. 그날 마침 우리 결혼기념일이었던 거 기억나? 헤밍웨이가 자주 갔다는 술집에 가서 다이끼리도 마시고, 호텔 옥상 레스토랑에서 (그 호텔에 묵었어야 했는데!) 랍스터도 먹었지. 정말 완벽한 결혼기념일이라고 생각했어. 쿠바 아바나 호텔 루프탑 레스토랑에서 랍스터라니! 근데 그 랍스터가 1인분에 10,000원이라니!
그런데 그날 저녁 식사를 마치고 10층 방에 우리 딸 손을 잡고, 자기는 유모차를 들고 힘겹게 올라간 후 나는 경악했지.
방은 정말 자기 말대로 엉망진창이었어.
투숙객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관리가 전혀 안 된 상태였지. 청소도 안 되어있었고, 에어컨도 없었고, 정말 지저분했어. 2인실에는 작은 침대 하나가 놓여있었는데 너무 좁아서 셋이 눕기엔 역부족이었지. 그래서 옆에 비어 있는 도미토리룸을 가봤더니 거긴 정말 침대가 너무 더러워서 누울 수가 없었어. 그래도 이 밤에 어디 다른 곳을 갈 수 없으니 일단 씻으려고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화장실은 불이 안 들어왔었지. 사실 나 좀 울고 싶었어.
왜 진작 말하지 않았냐고 이렇게 심각한데 왜 여길 보고도 여기서 자겠다고 했냐고 자기에게 말했지. 자긴 내가 이런 줄 알고 있었는 줄 알았다고 했고.
여하튼 너무 늦어서 어떻게든 잠을 자 보려고 셋이 누웠는데 자기는 덥다고 선풍기 틀자고 하고 나는 잘 때 선풍기 트는 거 싫어해서, 애도 감기 걸릴 수 있으니까 끄자고 하고 서로의 짜증이 극에 달했었지. 그때 화가 잔뜩 나 있던 자기 얼굴이 생각난다.
덥고 화나고 서로가 한심했던 그 순간. 우리는 잠들지 못하고 지금이라도 나갈까? 주인아주머니가 1층에 계실까? 짐 들고 내려갔다가 안 계시면? 맨몸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서 짐을 가져갈까? 밤이 늦었는데 호텔을 구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냥 너무 늦었으니 키를 문 앞에 두고 그냥 갈까? 이런 방 내주고 돈 받기도 민망할 거야. 안 내도 뭐 할 말이나 있겠어? 온갖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다가 아무래도 이 밤에 짐 들고 아기랑 헤매는 건 아닌 거 같아서 포기하고 잠이 들었지. 최고의 결혼기념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날을 그 좁은 침대에서 더위를 견디며 보내게 될 줄이야.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부리나케 짐을 싸서 또 낑낑대면서 들고 내려갔잖아. 조식으로 아주머니가 내 주신 에그 스크램블과 빵을 먹으며 우리는 오늘 방을 옮기겠다고 말했고, 아주머니는 예상이라도 한 듯 알았다고 했지.
그 아침을 먹으면서 만난 한국인 부부랑 이야기하는데 모든 비밀이 밝혀졌잖아.
그 부부의 방은 우리 방의 위층인가 그랬는데 에어컨도 나오고 깨끗하다는 거야. 다만 엘리베이터 때문에 너무 불편해서 방을 다른 까자로 옮기려고 한다고. 그래서 우리 방 상태를 말했더니 깜짝 놀랐지. 알고 보니 내가 블로그에서 본 방은 그 부부의 방이었고, 우리 방은 안 쓰던 방이었는데 갑자기 찾아오니 그 방을 준거고, 내심 미안해서 깎아준 거였어.
그때부터 우리의 호텔 찾기가 시작됐는데, 나 지금 또다시 사과할게.
그때 너무 미안했어.
그때 차라리 그 부부처럼 다른 까자를 찾아볼 걸 그랬나? 까자에 한 번 데고 나니 굳이 까자는 찾아가기 싫었고 우리는 호텔을 찾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 아바나에서는 비싼 호텔을 못 가겠더라고. 평소에는 10만 원대 호텔이면 저렴하다고 좋다고 가면서, 왜 아바나의 10만 원대 호텔은 너무 비싸다고 느껴졌는지. 까자가 워낙 싸기도 했고, 또 그 전날 시내 구경하면서 느낀 것 때문이었던 것 같아.
아바나에 현지인 화폐와 외국인 전용 화폐가 있는 것도 이상하고, 외국인 전용 화폐로 살 수 있는 건 다 비싸고, 현지인 화폐와의 차이는 엄청나고, 그냥 외국인이 정말 호구 같이 느껴지더라고.
그래서 가까이에 있는 호텔 몇 군데 가보고는 15만 원 정도 하는 걸 도저히 거기 그 돈 주고 못 가겠다며 이곳저곳 자꾸 둘러봤지. 그사이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들고 따라다니는 자기의 불쾌지수는 자꾸만 올라갔고, 사실 시내 중심가의 예쁜 호텔이 15만 원이면 정말 좋은 가격인데 나 왜 그랬을까?
그 와중에 가까스로 가이드북에서 추천하는 5만 원짜리 호텔로 가보자 했는데 거기가 좀 멀었지. 그리고 그 순간 하늘은 비를 뿌리기 시작……. 미안해.
비 맞으며 그곳을 찾아가면서 이 호텔이 상태가 어떻든, 5만 원이든 10만 원이든 이제 돌이킬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도착한 호텔은 호텔이라기보다는 여관이었고, 우리는 4층에 방을 받았어. 다행히 5만 원이었고, 방도 나쁘지 않았어. 지친 자기에게 사과했었는데. 기억나? 자기는 애써 괜찮다며 쿨하게 답했었지.
그렇게 우리의 아바나 호텔 문제는 해결이 된 줄 알았는데 역시 아바나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어. 다음 날 체크아웃할 때 역시! 아바나답게 정전이 되었지. 자기는 또 그 큰 여행용 가방을 들고 4층에서 내려와야 했지…….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나 그렇게 구두쇠 아닌데,
나 그렇게 돈 아끼는 사람 아닌데,
아바나에서 나는 좀 상태가 이상했던 거 같아.
그래도 아바나는 좋았어.
이층 버스에서 본 말레콘을 잊을 수 없어.
그때 말레콘을 보면서 갑자기 그런 생각 했었어.
까자가 엉망이면 어때!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데!!!!
아, 내가 이 풍경을 보려고 어젯밤에 그 난리를 쳤구나!
그런데 그것도 좀 미안해.
자기는 마침 잠든 딸 때문에 버스 1층에서 유모차에 자는 아기 보면서 말레콘을 봤잖아. 내가 교대해 주려고 했는데 자기가 괜찮다고 해서.
그런데 자기야, 말레콘은 2층에서 보는 게 진짜야.
1층에서는 그 장관이 다 안 보이더라니까.
그래서 말인데 우리 아바나 다시 갈까?
이번엔 내가 그 중심가에 있는 제일 큰 호텔로 잡아줄게.
거기 호텔 얼마 하지도 않잖아.
제일 큰 방으로 잡아줄까 어때? 다시 갈래?
우리 딸 이제 커서 유모차도 필요 없고, 이층 버스에서 소리 지르며 함께 말레콘을 볼 수 있으니 말이야. 우리 아바나에 다시 가자.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