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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풀잎 Mar 03. 2023

[책리뷰]그 시절 내가 사랑했던.....

 오유정 <아무튼, 장국영>


지난번 도서관에 갔다가 '아무튼' 시리즈를 만났다.

그중 읽고 싶은 책을 골라

리더스 앱에 담아뒀다.

그리고 어제 도서관 간 김에

앉은 자리에서 읽기 적당해 보여

그 시리즈 중 한 권을 골랐다


<아무튼, 장국영>

       


  <아무튼, 장국영>

저자오유정 출판코난북스 발매2021.04.01.


장국영의 팬으로서

그의 통역사가 되겠단 꿈을 안고 공부해

지금 중국어를 가르치는 교수님이 되었다는

성덕 오유정님의 글을 읽으며

그를 사랑했던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학교에서 영화를 보여줬는데

<영웅 본색 2>였다.

나는 고작 11살이었지만,

내게 장국영의 공중전화 씬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당연히 나는, 그의 팬이 되었다.



부산에 놀러 갔다가 사촌 언니 책상 위에 있던 그의 사진을 보고 내가 눈독을 들이자

언니가 쿨하게 내게 줬을 땐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다.


그 사진은 A4만 한 두꺼운 종이에 세 번 접어서 세워놓을 수 있게 만들어진 사진이었는데 위아래

한 장씩 삼 면이어서 총 6장의 다양한 사진이 담겨 있었다

그 사진에 있던 해맑은 그의 표정이 지금도 기억난다.

나는 그 사진을 책상 위에 세워놓고 매일 보고 또 보았다.


그리고 얼마 후, 그가 투유초콜릿 cf를 찍었다.

나는 그때부터 용돈을 모아 초콜릿을 하나씩 사먹었다.

초콜릿의 금색 포장지를 모아서 보내면 선물(뭐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을 보내주는 이벤트를 한다는 것을 신문을 통해 보았기 때문이다.

돈이 생기면 초콜릿을 사서 포장지를 모았다.

밀크 초콜릿의 부드러운 달콤함에 반함과 동시에 폭발적으로 살이 찐 것도 그때였다.


그때의 나는 투유초콜릿 cf 주제곡을 비롯해 그의 노래도 즐겨들었다.

특히 투유초콜릿 주제곡은 영어로 불렀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었다

매일매일 들었다

테이프가 늘어지게 들었다


<아무튼, 장국영>을 읽고 생각나서

유튜브에서 장국영 노래 리스트를 클릭했다가

순식간에 중학교 1학년 그날로 돌아갔다

듣자마자 다음 구절이 머릿속에 자동 재생되는 느낌.



중학교 1학년 때 국어 샘께서 시화전에 낼 시를 한 편씩 써오라고 하셨었다.

나는 시를 두 편을 썼고 어떤 것을 제출할지 망설이며 등교를 했다

친구 P가 시를 써왔냐며 자기는 못 썼다고 했다. 난 뭘 내야 할지 모르겠다며 친구에게 보여주었고

친군 A가 훨씬 낫다며 그걸 낼 것을 권했다

내가 보기에도 그게 나아 보여서 그걸 내기로 했는데 친구가 말했다

그 다른 시를 자기에게 달라고. 자기 안 써왔으니까.


그래서 별생각 없이 친구에게 주었고

친구는 자신의 이름으로 시를 제출했다



얼마 후,

시들이 시화전에 걸리게 됐다

그리고 일부 작품에 대해 시상식이 있었는데

운동장 교단에서 친구 P의 이름이 불렸다.

친구는 교단에 올라 상장과 부상을 받았다.

나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빨리 뛰었고

속상함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교실로 돌아오자 그 친구가 뒷자리에 앉은 나를 돌아보며 부상으로 받은 노트 세트를 들고 말했다


"너 줄까?"


난 얼굴이 뻘개져서는 "됐어" 하고 고개를 돌렸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받고 싶은 건 노트 따위가 아니라

내 이름이 박힌 상장이라고!!


그날 집에 돌아오자마자,

카세트 플레이어에 장국영의 노래를 틀어놓고

침대에 엎드려 한참을 울었다.


그날의 나를 위로해 준 그의 노래.


오늘 오랜만에 그 노래를 들었더니

14살의 내가 겪은 억울함과 속상함이 불시에 되살아난다




그리고, 2003년 만우절.

그가 세상을 떠났다. 만우절 날 세상을 떠나서 아무도 믿지 않으려 했던 그의 죽음.


2003년 말 인도 여행을 떠나면서, 비행기 표를 끊을 때

태국 방콕을 경유할 것인가, 홍콩을 경유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했다.

망설임 없이 홍콩을 택했다.

그리고 40일 인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3박 4일간의 홍콩 스톱오버에서

그가 떠난 홍콩을 거닐었다.

슬프기도 하고 즐겁기도 했던 홍콩 여행이었다.




<아무튼, 장국영>을 읽으면서 나는,

최선을 다해 그를 사랑했고, 그를 직접 대면하여 사인을 받고,

그에게 선물한 종이 꽃다발을, 그가 들고 있는 사진을 지금도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저자 오유정 교수님이 부러웠다.



성덕,

성공한 덕후가 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누군가를 완전히 온 마음 다해 정성을 다해 좋아해 본 경험이다.

나 역시 꽤나 좋아했던 누군가가 있지만,

성덕이 되기에는 덕력이 부족했던 거 같다.

대개 중고등학교 시절에 한참 좋아하다가 대학생이 되면서 시들해졌던 것 같다.

대학생이 되면서 미래에 대한 고민과 걱정이 많았을까?

좋아하는 것, 혹은 사람에 최선을 다해 몰입하기에는 너무 바빴던 나의 대학시절.

그런 면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이 참 신나는 시절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시절 내가 사랑했던 그를, 그리고 나를

다시 기억해 낼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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