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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풀잎 Nov 21. 2023

[책리뷰] '인간다움'은 과연 무엇인가

가즈오 이시구로_<클라라와 태양>

어쩌다 보니 급하게 독서모임에 합류하게 되었는데

독서모임의 책이 노벨상 수상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이었다.



        클라라와 태양 저자 가즈오 이시구로 출판 민음사 발매 2021.03.29.






 




줄거리 및 리뷰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음)


<클라라와 태양>은 인간이 로봇을 가게에서 골라 구입할 수 있는 미래를 그린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의 공부와 정서를 도와줄 로봇을 구입하는데 그런 친구같은 존재인 로봇을 AF(artificial friend)라 부른다.

클라라는 가게의 쇼윈도에 서서 창밖 풍경을 관찰하면서 특히 태양의 움직임에 집중한다.

석양무렵 태양이 어디로 가는지가 궁금한 AF 클라라. 태양은 빌딩 숲 사이로 사라지기 때문에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가 항상 궁금했던 것이다.


클라라는 그 가게에 찾아온 한 소녀, 조시의 눈에 띄어 조시의 집으로 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조시의 엄마는 클라라에게 조시의 걸음걸이를 흉내내 볼 것을 요구하는데, 클라라는 매우 능숙하게 그 일을 해 내고 엄마는 마음에 들어하며 클라라를 집에 데리고 간다.


조시와 클라라는 절친한 친구처럼 지내지만 또 한편으로는 모든 일에 조시의 명령대로 행하는 주종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조시는 몸이 아픈 아이였고, 클라라의 가장 큰 역할은 조시의 몸 상태를 체크해서 응급한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조시가 아픈 이유가 유전자 조작을 통한 '향상' 때문이었고, 조시의 엄마는 조시의 언니를 그렇게 해서 잃어놓고도, 조시에게 또 그 유전자 조작을 시행한 사람이었다. 그러고 또 조시가 아프니 후회하면서, 죽을 조시를 대신할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하는데....


이 부분에서 얼마전 보았던 드라마 <유괴의 날>이 떠올랐다.



        유괴의 날 연출 박유영 출연 윤계상, 박성훈, 유나, 김신록, 김상호, 서재희, 강영석, 김동원

        방송2023, ENA


아이의 지능을 개발하기 위해 아이에게 주사를 놓고 실험을 진행하는 박사의 모습에서 인간의 지능에 대한 무모한 집착과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비인간성을 보았다. 유괴의 날에서는 '지능 개발'이라는 목표를 위해 실험을 하고 그 실험에 투자하는 이상한 어른들이 몇몇 나오지만 이는 일부에 불과하긴 하다. 하지만 <클라라와 태양>에서는 지능 개발을 위한 유전자 조작이 상용화 되어 오히려 그것을 하지 못한 (아마도 가난해서)  몇몇 사람들이 무시당하고, 자신의 본래 가진 지능을 폄하당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정말 아찔한 미래가 아닌가. 그런데다 그 부작용이 병에 걸려 어린 나이에 죽는 것이라면, 이 미래의 인물들의 무모함이 끔찍하기까지 하다.


또한 아이의 지능을 위해 부작용을 감수하고 향상을 선택한 조시의 엄마는, 아이의 닥쳐올 죽음을 자신이 감당할 자신이 없어 그 대체제를 준비하는 치밀함을 보여주는데 이 얼마나 이기적인 엄마인가.


인간은 이토록 냉정하고, 자기 중심적이며, 무서운 존재다.


그런데 한편, 차갑기만할 것 같은 로봇, '마음'이라는 게 없을 것 같은 로봇 클라라는 조시를 살리기 위해 '태양'이라는 거대한 우주에게 기도를 한다.


조시가 좋아지게 해 주세요. 거지 아저씨한테 한 것처럼요.



이 얼마나 인간적인가. 작가는 어쩌면 이렇게 우리가 '인간적'이라 생각하는 감정과 생각을 로봇에게 부여함으로서 진짜 인간의 비인간성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클라라는 이웃집 릭의 엄마 헬렌의 릭에 대한 애착과 사랑을 보면서 인간의 '마음'에 놀라움을 표현하기도 한다.


솔직히 말해서 릭과 관련한 헬렌 씨의 요청에
강한 진심이 담겨 있는 것 같아서 놀랐어요.
사람이 자신에게 외로움을 가져올 방법을 원한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전에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외로움을 선택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외로움을 피하려는 소망보다 더 강력한 힘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몰랐어요.



하지만 이 작품 전체에서 가장 인간적인 모습은 클라라가 갖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의 또다른 문제 제기는 로봇이 인간을 어디까지 카피 할 수 있는가에 있다.



이런 걸 묻고 싶어. 너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걸 믿니? 신체 기관을 말하는 건 아냐. 시적인 의미에서 하는 말이야. 인간의 마음. 그런 게 존재한다고 생각해?
사람을 특별하고 개별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
만약에 정말 그런게 있다면 말이야. 그렇다면 조시를 제대로 배우려면 조시의 습관이나 특징만 안다고 되는 게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 있는 걸 알아야 하지 않겠어? 조시의 마음을 배워야 하지 않아?


조시의 걸음걸이, 앉는 자세, 말투, 그리고 표현법 등을 익히라는 엄마의 말에 클라라는 열심히 하겠다고 대답한다. 할 수 있다고.

그러자 조시의 아빠 폴은 마음은 어떻게 배울 거냐고 묻는 것이다.


로봇이 아무리 개발되고, 디테일하게 인간과 동일한 모습으로 만들어진다고 해도 끝끝내 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인간의 마음 아닐까. 하는 질문.

그러면서 그는 한편으로 인간이 갖고 있는 것 중 과학이 복사해내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을 한다.


내가 카팔디를 미워하는 이유가,
마음 깊은 곳에 카팔디 말이 맞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
카팔디의 주장이 실은 옳다고. 내 딸만의 고유한 무언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현재 기술로 파악해 복사하고 전송할 수 없는 것은 없음을
과학이 확실하게 입증했다고.
사람들이 지금까지 수세기 동안 내내 서로 사랑하고 증오하며 함께 살았지만
모두 잘못된 가정에 근거해서 그랬던 거라고.
우리가 무지했기 때문에 일종의 미신 같은 것을 지니고 살아온 거지.


인간의 사랑과 증오같은 감정들, 인간의 마음들은 어쩌면 일종의 미신 같은 것이 아니겠냐며.

그런데 그 일종의 미신을 정작 갖고 있는 것은 클라라였다.


인간들은 갖고 있지 않은, '인간다움'을 가진 로봇 클라라.

과연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어제 정지우작가와 정아은작가가 함께하는 북토크에 줌으로 참석했었는데






거기에서 챗GPT가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묻는 질문이 있었다.

이에 대해 정지우 작가는 말했다.


'챗GPT는 그럴 듯한 글을 순식간에, 잘 써낸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남은 글쓰기 장르는 어쩌면 '에세이' 뿐일지도 모른다. 나의 이야기, 나만의 이야기이므로..'


그렇다. 나의 이야기,

가공되지 않고, 상상해서 쓴 것이 아닌, 유일한 이야기. 나만 알고 있는 이야기.

그것만이 챗GPT가 넘보지 못하는 장르가 아닐까.



그림도, 음악도, 글도 챗 GPT가 정교하게, 아름답게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

이런 시대에 로봇에겐 없고 우리에게만 있는 '마음'을 잘 지켜야겠다.

나만이 가진 내 이야기, 내 마음, 그것을 잘 지켜서

복제되지 못하는 '인간다움'을 지키는 인생이 되어야겠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이것이었다.


 침실 창문 옆에 부드러운 크림색 소파가 있어서 마음속으로 '단추 소파'라고 이름을 붙였다.
소파는 방 안쪽을 향해 놓여 있었지만 조시와 나는 그 위에 무릎으로 올라가 등받이 위에 팔을 얹고 하늘과 풀밭을 구경했다. 조시는 내가 해의 여행이 끝나는 장면을 보기를 좋아한다는 걸 알았고, 그래서 우리는 가능할 때마다 단추 소파에서 해가 쉬러 가는 모습을 보았다.




© federicorespini, 출처 Unsplash




그리고 엄마가 조시에게 그림을 그리라고 권하며 칭찬해주는 말 한마디.

이런게 '인간다움'아닐까.


네가 쓰는 색은 뭐랄까, 여름 저녁 연못 같아. 그런 비슷한 느낌이야. 너는 색을 아주 아름답게 써.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방식으로.




© nicknight, 출처 Unsplash



와 근데, 글감검색으로 '여름 저녁 연못'이라는 키워드로 사진을 검색하니 이런 사진이 뜨네.

뭔가 내가 생각한 느낌이랑 일치해서 소름돋았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후

 눈에 띄게 된 건지,

가을날 날이 좋아 더욱 밝게 빛나는 건지


우리집 창문으로 보이는

석양이 눈부시게 아름다워 연이틀 사진을 찍었다.







조시에게 그랬듯

태양이 우리에게도 밝게 빛을 비춰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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