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1학년 (1)
2019년 3월 4일,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었다.
올해 아이가 8살이 되자마자 나는 갑자기 마음이 분주했다. 아이가 학생이 된다는 생각을 하니 문득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남들은 학교 대비해야 한다고 일곱 살에는 보육보다는 교육에 중점을 두는 유치원에 보낸다고들 하던데, 나는 많은 고민 끝에 유치원 대신 어린이집을 선택했고 절약한 유치원비로 오후에 영어학원과 미술학원을 보냈다. 나름 어린이집에서도 학교 대비 한글교육도 하고 생활교육도 하는 것 같긴 했지만 막상 입학을 시킬 생각을 하니 걱정이 많아졌다. 유치원 보낸 아이들보다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 말이다. 그러나 사실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몰랐다.
2월은 빠르게 지나갔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준비보다는 지금까지의 유아기 생활에 대한 정리로 바빴다. 그렇게 어영부영 어린이집 졸업식을 하고 돌아서니 입학식을 앞두고 있었다. 어찌나 정신이 없었는지 입학식 전날 보니 준비한 거라곤 새 책가방과 실내화 주머니 밖에 없었다. 예비 소집일 날 학교로부터 받은 준비물 목록을 보고 급히 온 동네를 뛰어다녀야 했다. 사야 할 것들이 실내화와 크레파스, 색연필, 바구니, 파일 등 다양해서 마트에 가면 좋겠는데 그날따라 일요일인데도 남편이 차를 가지고 출근을 해서 차가 없었다. 마트에 갈 수 없어서 걸어갈 수 있는 곳 중 이 것들을 다 살만한 곳을 찾아갔다. 첫 번째로 내가 선택한 곳은 집에서 도보 20분 거리에 있는 ‘노브랜드’. 규모가 크진 않지만 마트나 마찬가지이니 다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실내화가 없었다. 그래서 그곳으로부터 10분을 더 가야 하는 다이소로 향했다. 나와 같은 엄마들이 많은지 입학식 전날 저녁 다이소에는 학부모로 보이는 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인지 학용품 종류가 몇 개 남아있지 않았다. 게다가 문제의 실내화가 없었다. 다른 준비물은 입학식 이후에 준비해도 된다고 했는데 실내화는 입학식 날 꼭 필요한 것이었다. 미리 사두지 않은 내가 한심했다. 아무래도 저녁에 남편이 오면 차를 타고 마트에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노브랜드와 다이소에서도 다 사지 못한 학용품을 사기 위해 지도 앱으로 가까운 문구점을 찾았다. 도보 15분 거리에 ‘알파문구’가 있었다. 그날따라 미세먼지 수치도 엄청 높았는데 계속 걸어 다니려니 아이도 나도 지쳤지만 그래도 언제 또 사겠나 싶어 열심히 걸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뜻밖의 수확을 했다. 실내화를 발견한 것이었다. 문구점에서 실내화를 판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학부모는 처음이라.
알파 문구의 입구에는 학교에서 준비하라고 했던 목록들, 즉 크레파스와 색연필 등 기본 문구류와 파일, 바구니, 청소도구 그리고 실내화가 박스에 담겨 나란히 놓여있었다. 선생님이 적어주신 규격까지 정확히 맞는 제품들이었다. 학교의 모든 준비물은 동네 문구점에서 맞춤 맞게 준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입학식 날 새 가방을 들고 학교 강당으로 향했다. 1학년 3반 팻말 앞에 아이를 세워 놓고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아이가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손을 흔들어주고, 웃어주고 하면서 아이의 뒤통수를 계속 쳐다봤다. 아이는 생각보다 의젓하게 잘 서 있었고,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교실로 잘 따라갔다. 나도 교실로 이동해 선생님과 인사하고 학교생활 안내를 받았다. 그러고 나서 선생님께서 아이들 한 명 한 명 번호대로 부르며 이름표를 걸어주고 입학 선물을 전달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내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아이는 당연하게도, 씩씩하게 나가서 이름표를 받아왔다. 어린이집에서 그렇게 잘 지내던 아이가 그저 이름 불리면 나가서 이름표를 받아오면 되는 일에 내 심장이 왜 그렇게 뛰는지 나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입학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선생님은 다음 날부터 아이들을 교문까지만 데려다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다른 엄마들 역시 그러지 못했다. 다들 교실 앞까지 아이를 데려다주고 자리에 앉아 외투를 의자에 걸고, 가방을 가방 걸이에 거는 것까지를 보고서야 자리를 뜰 수 있었다. 그다음 날에는 딸아이가 가방을 가방 걸이에 걸지 않고 의자에 걸어놓은 것을 보고 불러서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다행히 꾹 참았다. 그게 뭐 대수냐 싶다가도 신경이 쓰였다. 다행히 아이는 잠시 후 가방을 다시 가방 걸이에 옮겨 걸어놓았다. 그제 서야 나는 교실 앞을 나설 수 있었다.
처음 일주일 동안에는 하교할 때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 교문에 데려다주셨다. 첫날 일찍 가서 기다렸는데 20분을 기다렸다 만나서 둘째 날에는 좀 천천히 나갔다. 그랬더니 집을 나서자마자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다른 친구들 다 가고 우리 아이만 남았는데 선생님이 후문 쪽에 가봐야 한다며 아이를 데려갔다가 다시 정문으로 오겠다는 말씀이었다. 나는 금방 갈 터이니 아이에게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전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부리나케 뛰어갔다. 학교에 도착해보니 아이가 학교 정문을 꼭 붙잡고 얼음처럼 굳은 채 서 있었다. 그리고 나를 보자마자 두 주먹에 원망을 담아 내 몸을 때리며 안겼다. 채 2분이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아이에겐 20분 같았을 그 시간이 너무 미안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후, 등교할 때 내가 교실에 올라가고 싶어도 아무도 그러는 사람이 없어 그러지 못했다. 다만 아이가 교실을 잘 찾아가는지 보기 위해 멀찍이 떨어져 가기로 했다. 아이는 의외로 뒤도 한 번 안 돌아보고 교실로 들어갔다. 그래서 이제는 1층 현관에서 아이를 배웅한다. 하교할 때도 이제는 선생님 없이 친구들 손을 잡고 정문까지 걸어 나온다. 그렇게 아이는 혼자서 걷는 길을 조금씩, 조금씩 늘려가고 있다. 이제 좀 있으면 나는 집에 있고 혼자서 등교도 하고 하교도 하는 날이 오겠지. 그러면 나는 좀 더 편해질 것이다. 그런데 그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허전하다. 자립심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조금 천천히 갔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이제부터 천천히, 조금씩 그렇게 아이는 초등학생으로, 나는 학부모로 함께 커 갈 것이다. 어쩌면 학부모는 아이가 자립할 수 있게 멀찍이 서서 지켜봐야 하는 자리인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조금씩 천천히 알아가야겠다. 학부모는 처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