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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솔25기] 옥순, 그 이름의 무게

왕관을 쓰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by 첫둘셋

나솔 9기 오락가락 눈물 광수덕에 나솔에 빙의한 지도 어언 n연차, '나는솔로'는 TV가 없는 우리 집에서 내가 유일하게 본방사수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최근에는 남편도 이 리얼버라이어티예능쇼의 시청에 합류하며 나솔시청이 우리 부부의 수요일 밤 루틴이 되었다.


나솔은 기수에 따라서 만족도가 많이 갈리는 편인데 이번 25기는 특별히 웰메이드 기수가 아닌가 싶다. 처음부터 끝까지 독주하거나 소외되는 출연자 없이, 모두가 고르게 서로의 관심을 받고 탐하고 있어 굉장히 균형감이 이루어지면서도, 모두가 진실된 마음으로 짝을 찾기 위해 임하고 있다는, 이른바 '진정성'이 느껴진달까? 마지막 최종선택을 앞두고 있는 지금까지도 이렇게 쫄깃하고 애가 탈 일인가 싶다. 내 남편은 도파민 중독자라 유튜브 영상은 무조건 2배속으로 보는데도, 25기 1배속 나솔은 한 번도 중도탈락 하지 않고 완주하고 있다.(물론 중간중간에 배드민턴 유튜브를 틀어놓긴 한다.) 이런 웰메이드 25기를 만들어주신 모든 제작진과 출연자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번 기수에 빛나는 옥순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다른 출연자들도 다 너무 훌륭해서 역대급 기수인 것도 맞지만, 나는 특별히 옥순님의 캐릭터가 너무 멋져서 감상을 써보고 싶다. 물론, 방송은 누군가의 편집을 거친 것이고, 의도된 영상이며, 내가 그 사람의 발끝이라도 알까 싶지만, 방송에 비친 모습만 보고 욕하는 것보다야 그것만 보고 칭찬하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 하여 적어보는 글이다.


처음 25기 옥순이 등장했을 때는 약간의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로 '옥순'이라는 이름에 맞지 않는 출연자가 나왔다는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옥순은 그 기수 최고의 '미인'을 뜻했다. 그 미인 또한 약간의 연예인상을 뜻하는 것으로 귀염상이나 고양이상보다는 방송 끝나면 인플루언서 할 것 같은 얼굴들의 미인들이 나왔다. 그러한 기준에서 이번 옥순은 연예인상의 미인은 아니었기에 이름을 잘못 준 것이 아니냐 하는 논란 아닌 논란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회차가 거듭될수록 나는 옥순의 이름에 걸맞은 '품격'을 가진 출연자가 나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내면의 아름다움은 외면의 아름다움에 가려지는 하찮은 것이라고 하지만, 내면의 아름다움으로 외면마저 덮어버리는 옥순의 품격을 돌아보자.


먼저 옥순에게는 고급스러움이 느껴진다. 왜일까 생각해 보았는데 그녀의 말투, 어조, 자세가 굉장히 차분하고 정제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말을 경청하고 대화를 이어가려 노력하고, 쉽사리 흥분하거나 언성을 높이지 않는다. 남의 마음을 쉽게 얻기 위한 우스운 플러팅이나 의미 없는 말장난을 이어가기보다는 상대방을 알아가려 노력하는데, 굉장히 상대를 존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또, 싫은 것을 즉각적으로 그 자리에서 표현한다. 영호와의 데이트에서, 영호가 지나친 자학개그를 하자 "나는 그런 거 반복되는 거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바로 제지시킨다. 하지만 다그치거나 가르치는 톤은 아니다. '너 자신을 조금 존중해 주면 좋겠다'는 의도를 담아 즉각적으로 단호하고 담백하게 얘기한다. 보통은 뒤에서 "저 자식 자존감 에바네."하고 씹고 말 것을, "얘는 자존감 바닥이구나"라고 무시하고 말 것을, 그 자리에서 상대가 너무 민망하지 않을 정도로 말해주는 것은 대단해 보였다. 영호가 진정으로 깨닫고 개선되길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달까.


광수와 있을 때의 모습도 매력적이었다. 우리야 방송으로 보는 입장이라서 광수가 얼마나 의료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인지 이미 알고 있다. 명석한 두뇌는 물론이고 어지간한 중심이 있지 않고서야 저런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후배들의 수많은 간증을 통해 알고 있으니 멋지고 대단해 보이지만, 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광수가 도통 입을 열지 않으니 그냥 괴짜 시골 의사라고만 알고 있을 터이다. 말투도 어리숙하고 지나치게 수줍은 데다 관심사가 이리저리 튀는 광수를 이성적 대상으로 보통은 여기지 않고 배제하기 마련이었다. 아, 도덕적 아름다움은 얼마나 외면의 아름다움에 가려지는가! 하지만 옥순은 찬찬히 광수를 바라봐 준다. (비록 괴짜이지만)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과 차분히 대화하며 진지하게 미래를 그려보는 옥순이 모습에 광수의 매력이 조금씩 이끌어내 져서 다행일 지경이었다. 옥순이라는 사람이 없었다면 광수의 '둘째 딸 이론'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을 테니 말이다.


영철과의 데이트에서 첫 연애가 언제였는지에 관한 대화에서 영철이 다소 예의 없게 "에이~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라고 본인의 경험을 일반화하며 (마치 그것이 정상이고 표준이라는 듯) 이야기하자 "여기에 있어요, 그런 사람."이라고 똑 부러지게 말하는 것도 멋졌다. 너무 많이 성내지도 않고, 반대로 너무 많이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그냥 이런 사람도 있어요,라고 말해주는 모습.


아, 그렇다. 그녀에게서는 중용이 느껴진다. 치우침이 없는 무게중심이 느껴진다. 값싼, 날것의 향기가 아닌 진하고 오래 숙성된 내공이 느껴진다. 재미와 흥미, 도파민을 좇는 자에게서는 볼 수 없는 진중함이 느껴진다. 이게 다 내가 가져보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이다.


정말로 다행인 것은 이런 옥순을 알아봐 주는 영호와 광수가 이번기수에 있었다는 점이다. 눈먼 자들만 가득해서 이 보석을 알아보지 못하고 돌멩이로 여기고 지나쳐버릴까 걱정했는데, 이런 진중하고 품위 있는 여자를 알아봐 주는 남자들이 있다는 점에서 이번 기수를 묶은 제작진은 감이 아직 안 죽었다. 나솔 아직 감 있다.


무튼 저런 멋진 언니도(실제로는 동생입니다.) 나솔에 나오는 것을 보면 사람을 만나는 일이 참 쉽지 않은 일이라고 느껴진다. 다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동반자를 만나고 싶어 나오는 프로그램인 만큼, 평소와는 다른 지질함, 혼란함, 욕망, 집착, 질투 등을 드러내기 마련인데, 우리의 연애도 누가 안 찍어놓아서 그랬지 찍었으면 60일 내내 욕먹고도 남을 판일 것이다. 그러니 일반일들 대상으로 너무 심한 발언은 하지 말고 모두도 우쭈쭈 하는 마음으로 봐주면 좋겠다. 그래서 최종커플은 누가 될까? 결혼 커플은 나올까? 모두들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 하는 마음으로 다들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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