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기] 경기도 다낭시

베트남 처음 가본 사람의 충격 후기

by 첫둘셋

나는 2026년 전까지 베트남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그래도 꾸준히 해외여행을 다니는 사람인지라 베트남을 한 번도 안 가봤다고 하면 모두가 놀란다. 너는 분명 가봤을 줄 알았다며. 사실 베트남을 안 간 이유랄 것도 딱히 없는 것이, 베트남을 안 가려고 안 간 건 아니고, 다만 나와 함께 여행 가는 사람들의 취향에 베트남이 없었을 뿐이다. 휴양보다는 관광을 좋아하고, 패키지보다는 자유여행을 좋아하며, 3박 4일의 짧은 여행보다는 8박 9일 이상의 긴 여행을 좋아하는 나의 여행 선호도에 더해 함께 떠나는 상대방의 버킷리스트가 어우러져 결정되는 나의 여행지는 늘 조금 더 빡빡하고 도전적인 그런 것이었다.


그러다 가게 된 이번 여행은 같이 가는 언니의 어린 자녀 이슈로 주말을 낀 3박 5일, 요 근래 떠난 여행 중 가장 짧은 시간만이 허락되었다. 3박 5일을 가는데 비행기에서 너무 시간을 허비하는 것도 내키지 않고, 오직 휴양만을 원하는 리조트 물개도 하나 있는터라 여행 난이도를 최하로 잡고 시작하니 그제야 모두가 떠난다는 베트남이 눈에 들어오더라. 그래, 어차피 가는 베트남, 경기도의 칭호를 받은 다낭에 한번 가보자! 놀랍게도 같이 가는 4명 중 2명은 이미 냐짱을 다녀왔는데, 다낭은 안 가보았다 하여 다낭으로 결정. 얼마나 경기도인지 한번 보자는 마음으로, 과연 경기도라 불릴만한 자격이 있는지 살펴보러 가보자.


가자마자 충격적인 것은 '패스스트랙'이었다. 베트남 여행을 내가 굳이 블로그에 쓰지 않는 것은(대만 여행은 블로그에 기록했다.), 베트남 여행에 대한 정보는 진짜로 차고 넘친다. 구글맵, 인스타, 네이버카페 등등 등등, 그냥 모르고 가는 게 신기할 정도로. 그렇지만 패스스트랙에 관한 얘기를 그렇게 많이 들었는데도 감이 안 오더라. 그게 무슨 말인가. 공항을 빨리 탈출할 수 있는 권리를 산다니 그것이 도대체 무슨 말이란 말이냐! 이해가 안돼서 미리 예매하지 않고 왔는데, 좁아터진 공항 출국 줄을 보자마자 이해가 되었다. 한쪽에는 텅텅 빈 4줄 이상의 패스스트랙 전용 대기심사 줄이 있고, 다른 한쪽에서 미어터지는, 사람들이 부채꼴로 줄을 서있는, 아무런 질서도 규범도 존재하지 않는, 그저 두 눈 꼭 감고 묵묵히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사람들이 형벌처럼 서 있는 나머지 대기심사 줄이 있었다. 너무 믿기지가 않아서 일단은 맨 끄트머리에 줄을 섰는데, 30분을 줄을 섰음에도 30분 뒤에야 겨우 당도한 곳이 부채꼴의 맨 마지막 라인이었고, 여전히 내가 어느 심사 줄로 이어지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와중에 앞사람 뒷사람 옆사람 모두 한국인이라 여기저기에 질문을 쏟았지만, 질문만 무성할 뿐, 어느 누구도 그렇다 할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이게 몇 번 줄인가요? 얼마나 기다리셨나요? 여기 서있으면 나갈 수 있나요? 다음 비행기가 오면 또 이만큼 사람이 늘어나나요? 답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질문 파티의 현장.


우리에겐 3박 5일뿐이다. 각자의 가정을 버리고 온 소중한 시간에 이렇게 서서 짜증 내며 여행을 망칠 수 없다며 패스스트랙 현장구매에 나선다. 얼마냐 물으니 일인당 50만 동이라고 한다. 아니, 이런 공산주의자들이 자본맛을 제대로 보았나, 나 이제 막 다낭 땅 밟았는데 두당 50만 동을 갈취하려 하다니. 50만 동은 28000원이다. 그렇지만 이걸 내지 않으면 꼼짝없이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티익스프레스도 아닌데. 난 그저 다낭에 들어가고 싶을 뿐인데. 그래서 깎았다. 이게 깎이는 것도 웃겼다. 200만 동인데 내가 깎아달라니까 3+1로 150만 동을 부르더라. 카드 오케이? YES. 그렇게 우리는 바로 입장했다. 입국심사대에서 우리 얼굴도 안 봤다. 바로 면세점으로 가서 150만 동 카드결제하고 공항을 빠져나왔다. 공산주의자들, 나라의 안보는 손톱만큼도 관심 없는 공산당 놈들. 내가 만약에 마약거래상이면 어쩌려고 내 얼굴도 안 보고 나를 통과해 주나. 자본이 이렇게 무섭다. 어이가 없어서 허허 웃다가 그랩을 타고 호텔로 향했다.


그랩 기사는 우리에게 내일 일정을 물어봤다. 우리는 바나힐에 간다고 했다. 그랩 기사가 바나힐까지 왕복 80만 동에 해주겠다고 했다. 필요하면 연락하기로 하고 호텔에서 내렸다. 호텔 벨보이가 짐을 가져다줬다. 호텔 벨보이가 내일 뭐 하냐고 했다. 바나힐에 간다고 했다. 호텔 벨보이가 자기한테 연락하면 65만 동에 해주겠다고 했다. 근데 호텔 리셉션에 이야기하면 80만 동이니까 자기 카톡으로 연락하라고 했다. 호텔 벨보이의 뒷구멍에 동참하기로 했다. 65만 동에 바나힐에 다녀왔다. 재밌었다.


바나힐에서 안경을 잃어버렸다. 그 골든브리지인가 뭐에서 안경이 없어졌다. 안경이 잃어버릴 수 있는 항목에 포함되는 것인가 곰곰이 생각했다. 안경을 잃어버렸다고....? 이것은 도난이다. 케이블카 아래에 내려가서 분실물 신고서를 작성하고 왔다. 하지만 안경을 찾아준다 해도 내가 다시 안경을 찾으러 바나힐에 갈 수는 없을 것이다. 여행 첫 일정부터 나는 안경을 잃어버렸고, 그냥 덜 보이는 다낭여행을 했다.


다낭의 망고는 차원이 다르다. 세부에서도 먹어봤다. 가오슝에서도 먹어봤다. 방콕에서도 먹어봤을걸..? 그렇지만 다낭이 최고다. 차원이 달라 병은 이래서 생기는구나 생각했다. 망고 인심에 아주 기뻐 뒤집어졌다. 하얏트 리젠시에서 6시 반부터 10시까지 조식을 먹었다. 그냥 먹다 토할 것 같으면 화장실에 가서 똥을 쌌다. 똥이 매번 나왔다. 망고를 계속 한 접시씩 받아와서 먹었다. 이런 욕심 많은 모지렁이가 바로 나. 나야 나. 나야 나. 하얏트는 사람을 아주 대접을 잘해준다. 나는 아주 만족했다.


호이안에서 제일 재밌는 것은 코코넛배다. 코코넛배 안타는 사람들은 호이안을 다녀오지 않은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코코넛배 노 젓는 아저씨 좀 오버긴 한데 내가 더 오바였어서 괜찮았다. 나중에는 나한테 노 넘겨줘서 코코넛배 노도 저어봤다. 거기서 노래도 불러주고, 회전도 해주고,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다 같이 사진 찍고 아주 화합의 장이었다. 여기가 내겐 올림픽 개막식이다 이 말이야. 코코넛 배 두 번 탔으면 아마 목소리 안 나왔을 것 같다. 열정적으로 놀고 나니 아침에 조식 10시까지 먹었는데도, 4시에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그랩 잠바가 너무 가지고 싶었다. 옷가게 할머니가 50만 동을 부르더라. 20만 동 부르니 30만 동이랜다. 2개 사는 조건으로 26만 동에 데려왔다. 시세고 뭐고 모르겠지만, 그랩 잠바가 생겨서 행복했다. 입고 학교에 갔더니 다른 선생님이 놀라셨다. 베트남, 사랑해요.


낮에 소원배 할머니한테 소원배 티켓을 끊고, 코코넛배를 타고 돌아왔는데, 소원배 할머니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다시 찾아 거슬러 올라가는데 뒤에서 누가 "언니! 언니!"하고 부르더라. 보니까 소원배 할머니가 있었음. 소원배 할머니가 베트남어로 막 말하는데 대충 번역돼서 풀어보면, 내가 아까부터 언니 발견하고 언니 언니 하면서 쫓아왔는데 너 왜 자꾸 사진만 찍고 앞으로 가냐? 하는 것. 소원배 할머니랑 팔짱 끼고 미안해 못 들었어~ 이러고 무사히 배 탐.


자본주의에 찌든 공산주의 국가. 베트남이 낳고 한국인이 키운 자랑스러운 경기도. 단돈 10만 동에 정겨운 한국어가 오고 가는 마음을 나누는 도시. 한국보다 쌀국수가 더 맛있는 유일한 나라. 15만 원 도수치료보다 뭉친 어깨를 더 잘 풀어주는 물리치료사들의 도시. 너무 재밌어서 5월에 또 감. 이렇게 단기간에 재방한 나라는 처음임. 베트남, 왜 자꾸 가는지 이제 알았음. 경기도의 자격이 있다 자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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