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치료] 크라운 후기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라

by 첫둘셋

서울에 살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은 믿을만한 치과를 찾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었다. 대학교 4학년때 임용고시를 준비하며 잠깐 이가 시려서 분당에 사는 이모가 추천해준 연세 어쩌고 치과를 갔었는데, 그곳에서는 나의 시린 이가 문제가 아니었다.

"여기 지금 교정 하신건가요? 아.. 교정을 하셨는데도 이가 틀어져 있네요. 잇몸은 상당히 내려와 있구요. 이대로라면 이가 다 무너져서 틀니를 해야 할지도 몰라요. 시린 이는 이거 하나 뿐이세요? 지금 육안상으로만 충치 5개정도 확인 되시거든요. 어떻게 해드릴까요?"

돈 없고 겁 많은 대학생이던 나는 오늘은 확인만 하겠다며 구체적인 치료 비용 견적을 요청했고, 연세 어쩌고 치과에서는 나에게 500만원 상당의 견적서를 뽑아주었다. 결국 임용고시가 끝날때까지 나는 어떠한 치아도 치료받지 못했고, 매일 밤 이빨이 몽창 뽑혀 사라지고마는 흉흉한 꿈에 시달리게 된다.


물론 서울에도 멋진 치과 의사선생님들이 많이 있었다. 지방에서 하던 교정치료가 거의 끝나가면서 서울로 치과를 옮기게 되었는데, 그때 나는 호텔 건물에도 치과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삐까번쩍이라고 하면 너무 시골쥐 같으니, 장엄하고 웅장한 호텔 로비를 지나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비슷한 느낌의-갈색과 황토색이 어우러진-대리석으로 사방천지를 마감해 둔 치과 입구가 나왔다. 거기에 앉아서 '이런 곳에는 호텔 손님만 오는 걸까?', '대리석을 깔았으면 기본 진료비도 더 비싼게 아닐까?', '호텔에 치과는 왜 필요한 것일까?'하는 생각들을 했더랬다. 다행히도 그리고 감사하게도 그들은 나에게 대리석 마감재 비용을 청구하지 않아서 매우 합리적인 가격으로 교정 장치를 유지할 수 있었고, 별 돈 안되는 '관리'뿐인 손님인 나에게도 과분하게 친절했다. 그리고 덕분에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호텔 로비에 설치된 거대한 트리와 함께 프사도 남길 수 있었다.


하지만 지방에 내려와서, 우리 집 앞에 치과를 갔을 때, 나는 정말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조금 지켜 보시게요."

이러이러해서 이러이러하고, 저러저러 저러저러하지만 결국 오늘은 잇몸 청소만 했으니 잘 지켜보시자. 의사선생님도 여자분이시고, 치위생사 선생님도 여자분이시고, 접수도 여자분이 보시는 여자여자한 이 치과에서는 서울의 여느 치과에서 볼 수 없던 느긋함이 있었다. 모두의 치아를 지켜보는, 모두의 치아를 닦아주는, 모두의 치아를 어루만져주는 멋진 언니들! 이 언니들은 더이상 내가 이빨이 몽창 빠져버리는 악몽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도록 나긋나긋하고 다정하게, 나의 치아를 지켜봐줄 것을 맹세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녀가 3년이나 지켜보던 나의 오른쪽 맨 뒤 아래치아에 금이 가고 만다. 매번 웃으며 지켜보자던 그녀는, 이를 더 빡빡 닦을 필요는 없다던 그녀는, 착색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걱정 말라던 그녀는, 한번씩 와서 잇몸치료만 하면 더 쓰실 수 있다고 나를 안심시키던 그녀는, 매우 단호하게 말했다.

"이제 크라운 하셔야 돼요."

불행이자 다행이었던 점은 내가 크라운을 2개 밖에 보유하고 있지 않은 탓에, 이것이 얼마나 비싸고, 얼마나 괴롭고, 얼마나 잔인한 의료과정인지 모두 잊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내게 여행이 끝나면 찾아오라 했지만, 이 지독한 과정을 몰랐던 나는 방학 내내 놀다가, 사실은 미루고 미루다가 출근을 하루 남기고서 겨우 그녀를 찾아간다.

"여행 끝나고 오시기로 했잖아요?"

헤헤. 왜 이렇게 보채, 언니.


1시간 반이 걸린다고 했다. 1시간 반이라. 치과 의자에 1시간 반을 누워있던 적이 있었나. 예전에 곱고 예쁘게 누워있던 사랑니를 제거할 때 그랬던 것 같다. 사실 저번 크라운 때도 그랬겠지.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 것을. 애 낳을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까먹고 둘째 낳아버린 나로서는 도저히 기억할 길이 없기는 하다.


크라운의 과정은 나의 금이 간 이를 잘 깎아서, 그 위에 도자기(?) 같은 가짜 이를 만들어서 씌우는, 그래서 나의 조금 남은 치아가 더이상 반갈죽이 되지 않도록 지켜주는 뭐 그런 치료이다. 일단 내 이를 갈아야겠지.


갈랄갈갈갈갈갈.

그를락락락락락.

거거거걱거걱거거거거거거걱.

쓰으읭의의의의의읭의의이.


"입 조금만 더 크게 벌리실게요."

달각, 달각.

입 안에서는 이게 여기서 나도 되는 소리인가 싶은 공사장 소리가 나고, 그보다 더 가까이에서 나의 턱관절 디스크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소리가 난다.


"턱에 힘 빼실게요."

턱에 힘은 어떻게 빼던 거였을까. 아니 그보다, 내가 턱에 힘을 주었던가. 입을 벌리고 있는데 턱에 힘은 어떻게 주고 있던 걸까.


"혀 움직이시면 다시 하셔야해요."

혀는 수의근이었나, 불수의근이었나. 혀는 내 의지로 움직이는게 맞나. 그런데 얘는 왜 이렇게 방황하나. 치료를 방해하고 싶지 않은데, 왜 자꾸 맛을 보나.


"마취 하셔도 조금 찌릿 하세요."

그러면 수면마취로 진행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마취는 잘 되었는데, 기계가 닿을 때마다 움찔 한다면 마취의 사전적 의미에 적합하지 않은 시술이지 않나.


"조금 아프셔도 조금만 참으세요."

아무 의미 없는 발화를 왜 계속 이어가시는 걸까. 내가 너무 찡그렸나. 너무 어른답지 못하게 아파했나. 이거 끝나고 아무래도 한의원 가서 침 맞고 와야할 것 같은데, 이게 조금 아픈 수준이 맞는 걸까.


"숨 쉬시면서 치료 받으실게요."

이비인후과 의사선생님이 축농증 있다고 할 때 치료 받을걸, 자꾸 목에 걸린 가래가 숨을 어떻게 쉬는건지 까먹게 만든다. 목구멍으로 고인 물이 다시 코로 넘어가서 나는 어느 구멍으로도 숨을 쉴 수 없는 사람이 되버린다. 얘네가 지금 여기서 만났는데, 저는 숨을 어떻게 쉬죠.


"물로 입 한번 헹구고 다시 하실게요."

시리다. 뼈가 시리다. 발가벗은 나의 어금니가 시리다. 방어막을 잃은 나의 신경은 이렇게나 예민하고 아찔하구나. 어디가 아프다고 느끼기 전에 뇌에서 바로 반응하는 듯한 '시린' 감각은 다른 통증과는 달리 참는다고 참아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냄새 조금 나요."

나면 안되는 냄새가 난다. 과학실에서 맡아본 것 같은 냄새. 이것은 필시 접착제의 일종일 것이다. 이름 모를 이 물질을 조금도 섭취하고 싶지 않지만, 이미 나의 호흡과 피부로 조금의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받아들이고 있다. 이대로 5분을 기다리지 못하면, 한번 더 해야 한다고 한다. 싫어. 진짜 싫어. 혀는 이미 화한 기운을 내뿜는 이름 모를 물질에 마비되어 얼얼한 감각만을 남기고, 목구멍은 필사적으로 그 어떤 것도 삼키지 않으려 물웅덩이의 평형을 유지하고자 한다.


AI가 다 해줄거라며. 거짓말쟁이들.

크라운도 수면마취로 안해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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