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
이모가 영원 혹은 간직이라는 단어를 스스럼없이 사용하는 쪽이라면 엄마는 이익 혹은 계산이라는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거침없이 해대는 쪽이었다. 그렇지만 이익이 많아 계산할 것이 평생 넘치는 쪽은 단연 이모였다.
우리 집에서의 외식은, 물론 그것마저 일 년에 몇 차례 불과한 일이지만, 망설임 한 번 없이 단호하게 돼지갈빗집이었다. 고기 타는 여기가 식당 바깥까지 자욱하고, 맛 좋기로 소문났다는 어머니의 자랑처럼 방마다 사람들이 가득 찬 그곳에서는 먹는 일도 노동이었다.
나지막한 피아노음, 나지막한 대화, 나지막한 음성으로 손님을 응대하는 웨이터들, 나는 잠시 잘 관리되고 있는 대형 수족관 속에 들어앉아 있는 기분에 씹고 있는 고기 맛을 잃을 정도였다.
어떤 경우에는 천박함이 무명천처럼 고슬고슬할 때도 있는 법이었다.
젊어서는 그렇게도 넘치던 한숨과 탄식이 어느 순간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삶에의 모진 집착뿐이다. 내 어머니는 날마다 쓰러지고 날마다 새로 태어난다.
아껴서 좋은 것은 돈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돈보다 더 아껴야 할 것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말들이었다.
산에서 몇 밤을 지내고 서울로 돌아오면 며칠 동안 적응이 안돼. 돌아가고 싶어 지지. 산새 소리, 풀잎 눕는 소리, 계곡물에 바람 스치는 소리, 두고 온 그런 것들 생각 때문에 오래 마음이 심란해지지. 도시는 나를 불안하게 해. 어디에 있어도 내 자리가 아니어서 불편해.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 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너는 이 지긋지긋한 불행을 내게 양보한 대신 알짜만 가득한 행복을 넘겨받은 것이라고.
비유하자면 이모부는 결혼해서 지금까지 삼십 년이 가깝도록 단 한 번의 결행이나 연착 없이 정시에 도착하고 정시에 출발하는 기차 같은 사람이었다. 기차라면, 쇠바퀴를 굴려 굽이굽이 강가도 달리고, 덜컹덜컹 산자락도 달리는 기차라면, 폭설 후에는 결행도 하고 마주 오는 다른 기차를 피하느라 연착도 좀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게 믿고 있는 세상의 다른 부류들한테는 이해받기 힘들겠지만 하여간 이모부가 생각하는 기차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철이 든다는 것은 말하자면 내가 지닌 가능성과 타인이 지닌 가능성을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에 다름 아닌 것이었다.
쓰러지지 못한 대신 어머니가 해야 할 일은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극대화시키는 것이었다. 소소한 불행과 대항하여 싸우는 일보다 거대한 불행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일이 훨씬 견디기 쉽다는 것을 어머니는 이미 체득하고 있었다.
지난 몇 년 동안의 평화를 어떻게 견디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어머니는 이 불행을 해결하는 데 온갖 신명을 다 내고 있었다. 벽을 붙잡고 절규를 하며 울부짖던 어머니의 과장법은 이렇게 쓸모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사랑한다고 말했으므로 자기를 사랑할 것이고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으므로 자기와 결혼할 것이라고 그는 믿고 있었다.
쇼핑의 피곤함이 삶에서 겪어야 했던 가장 큰 피로였을 그 애의 작고 연약한 발가락과 분홍색으로 물든 동그란 발뒤꿈치, 유리조각처럼 섬세하게 튀어나온 복숭아뼈는 또 어쩌면 그리 어여쁜지, 나는 무심코 마당의 빨랫줄에 걸려있는 양말 두 짝을 바라보았다.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래도 어머니는 아침마다 건전지를 갈아 끼운 기계인간처럼 싱싱하게 일어나 온종일 뛰어다니다 저녁이면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일과를 버리지 않았다.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나는 다만 이것이 사랑인가, 하고 사랑을 묻다가 이것이 사랑이다,라고 스스로에게 답했을 뿐이다.
그러나 한없이 달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달리기만 할 줄 알고 멈출 줄은 모르는 자동차는 아무 쓸모도 없는 물건이듯이, 인생도 그런 것이었다.
오른발부터 내밀고 달려야 하는지 왼발 먼저 힘을 줘야 하는 것인지, 아니 어디를 움직여야 이 무거운 몸이 앞으로 나가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된 마라토너의 절망이 고스란히 내 것이었음을 김장우는 정녕 모를 것이었다.
사랑이란 그러므로 붉은 신호등이다. 켜지기만 하면 무조건 멈춰야 하는, 위험을 예고하면서 동시에 안전도 예고하는 붉은 신호등이 바로 사랑이다.
나는 특별하고 한적한 오솔길을 찾는 대신 많은 인생선배들이 걸어간 길을 택하기로 했다. 삶의 비밀은 그 보편적인 길에 더 많이 묻혀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으므로.
그래도, 사랑의 유지와 아무 상관이 없다 하더라도, 보다 나은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이 욕망을 멈출 수가 없다. 이것이 사랑이다.
세상의 숨겨진 진실들을 배울 기회가 전혀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그것은 마치 평생 똑같은 식단으로 밥을 먹어야 하는 식이요법 환자의 불행과 같은 것일 수 있었다.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이라는 중요한 교훈을 내가 가르쳐준 주리였다.
그러나 언젠가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보여줄 수 있는 날이 오긴 올 것이었다. 서로 사랑하므로 결혼한다면, 결혼으로 서로의 사랑이 물처럼 싱거워진다면.
그것이 이모가 그토록이나 못 견뎌했던 '무덤 속 같은 평온'이라 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엥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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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첫 책. 천천히 읽히길 바란다는 작가의 바람과는 달리, 야금야금 없어지는 것이 아쉬움에도 참을 수 없는 솜사탕처럼, 후루룩 읽어버렸다. 결혼이라는 중대한 결정 앞에서, 엄마와 이모의 삶을 저울에 재어보며, 사랑의 감정이란 무엇인지 탐색하며 스스로의 정답에 다가가는 진진의 마음이, 친한 친구의 고민 상담 마냥 흥미롭게 전해진다. 결혼적령기의, 결혼으로 인한 삶의 변화를 고민하는,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가 맞아버렸다고 한탄하게 될 미래의 누군가에게, 중요한 인사이트를 줄 수 있는 소설.